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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복음/말씀 > 복음생각/생활
가톨릭평화신문 2018.12.05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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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43) 독서, 들어갈수록 자유로운 감옥




"10년 이상 감옥 생활을 버티게 한 건 책을 읽는 습관"이었다고 고백한 어느 칼럼니스트의 말이 생각난다. 감옥에는 자유가 제한돼 있다. 차갑고 어둡고 폐쇄된 공간이다. 하지만 감옥에서 책을 읽으면 수많은 인물과 자유로운 세상을 만난다. 책을 읽을 때 우리의 뇌는 직접 책 속 세상을 체험하는 것처럼 반응한다. 상상만 해도 실제로 뇌는 움직인다. 비좁은 감옥에서 책을 읽어도 광활한 우주공간을 만날 수 있는 이유다.

어쩌면 감옥이라서 더 독서에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으니까. 나 역시 기차 안에서 책을 읽으면 집중이 더 잘 된다. 기차라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책 자체도 감옥이다. 스마트폰 기기처럼 여기저기 훑어 다닐 수 없다. 책은 순서를 따라 인내하고 집중하며 읽어야 한다. 다른 생각을 하거나 이야기하면서 사고의 밀도가 높은 책을 읽기가 어렵다. 침묵과 몰입으로 책 속에 갇혀야만 더 큰 자유를 맛볼 수 있다.

꼭 종이책이어야 할까? 하고 묻는 사람도 있다. 책을 하나의 지식 덩어리로만 본다면 전자책은 가격도 싸고 가볍고 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글을 읽을 수 있어 좋다. 스마트기기 안에 도서관을 차려도 될 정도니까. 그러나 책 읽기는 단순히 정보나 지식을 꺼내오는 차원과는 다르다. 종이책은 시각과 촉각과 연결되어 마음과 몸으로 전달된다. 종이를 만지작거릴 때 느껴지는 손맛, 넘어가는 소리와 향 가득한 냄새, 책갈피 사이에서 흘러넘치는 여유 그리고 책의 무게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고뇌.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만족감이 있다. 때로는 줄도 긋고 접기도 하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마음에 여유를 즐긴다. 무엇이든 친해지려면 자주 대면하고 시간을 보내야 하는 법이다. 천천히 자주 곱씹으며 마주하는 책은 확실히 스마트폰으로 읽는 전자책과는 다르다.

빠르고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스마트폰, 스크린 터치만 하면 넘어가는 전자책은 깊고 천천히 음미할 여백이 별로 없다. 미국의 디지털 사상가인 니콜라스카는 "스마트폰은 유리감옥"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노예처럼 자신을 가둔다. 스마트폰 기기로 책을 읽을 때는 유혹이 많다. 스마트폰 기기는 마치 대형 백화점과 같아 쇼윈도 앞에 서성이고 기웃거리게 되면서 산만함을 부추긴다. 하지만 종이책은 높은 담 안에 갇힌 것 같지만 깊은 사색과 성찰로 더 큰 자유를 맛보게 한다.

훑어보기가 대세인 요즘, 독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점점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지 못하고, 깊은 통찰력과 지혜를 주는 숭고한 예술을 감상하기도 어렵다. 가끔은 바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먹지 못해서 아닐까. 스마트폰 기기는 마음먹지 않아도 저절로 손이 가지만 책은 마음먹고 의지를 갖춰야 한다. 습관이 되기까지. 사실 책 읽기가 즐거워 습관이 되기보다 습관이 되어야 즐겁다.

살다 보면 수많은 감옥을 만난다. 고통과 분노 그리고 지루함과 심심함이라는 감옥. 그럴 때 쉽게 스마트폰 기기 속으로 숨고 싶다. 그러다가 깊숙이 들어가면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다. 화려한 세상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꼼짝할 수 없는 유리감옥일 수도 있다.

그러니 잠시 호흡을 고르고 책으로 들어가야겠다. 들어갈수록 자유로워지는 감옥으로.



성찰하기

7 책 읽기에는 왕도가 없어요. 그냥 습관이 되어야겠지요.

8 습관이 되려면 무엇보다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9 매일 책을 읽기로 마음을 먹어요. 10분이라도 좋아요.

바쁠수록 멈춰요. 마음이 분주해 책 읽기가 어려우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적극적 선택이니까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