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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복음/말씀 > 일반기사
가톨릭평화신문 2018.08.0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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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연중 제19주일(요한 6,41-51)
내 가능성의 크기는?

▲ 조명연 신부(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전담)


자기소개 자리에서 "저는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말하자, 다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강의 때 모습이나, 평상시 제 모습을 보면 절대로 내성적이지 않다는 거지요. 저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보다 혼자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을 더 좋아합니다. 강의를 많이 하지만, 지금도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외향적인 사람이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이 완전히 반대인 경우가 있습니다. 겉모습과 한 부분만 보기 때문이지요. 조금 더 깊숙이 바라보면 다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어느 한 부분만 바라보고 내리는 판단을 내려놓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요한 6,41)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유대인들은 수군거립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요한 6,42)

단순히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별로 대단하지 못한 분으로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를 선포하시고, 이에 대한 표징으로 많은 기적을 보여주셨음에도 자신들의 판단만으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인간적인 기준만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영적으로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정관념은 자신의 성장을 저해합니다. 꿈을 갖고 있지 않은 요즘 청소년과 청년들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성장 가능성이 멈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는 내내 성장기입니다. 노년기에도 새로운 일을 하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많은 사람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현재 자신을 바라보면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성장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때문이지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인들 역시 고정관념을 갖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을 사는 우리는 어떨까요?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 사랑이신 주님을 받아들이고 참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제1 독서에 등장하는 엘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천사가 준 빵과 물을 먹고서 힘을 얻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되지요. 하느님을 통해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제 주님의 몸을 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가 돼야 합니다. 단순히 세상의 기준을 내세우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기준을 따를 수 있는 참된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은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이는 인간적인 고정관념을 내세우면서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사는 삶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고서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할까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 가능성의 크기도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