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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복음/말씀 > 일반기사
2020.02.19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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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27)성경 독서의 시간
자유 시간을 따로 떼어 봉헌하라
▲ 허성준 신부



성경 독서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고정된 시간이다. 성경은 시간이 남을 때 아무 때나 재빨리 읽어도 좋은 책이 아니다. 그렇게 할 경우 집중해서 읽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하느님 말씀 안의 깊은 의미를 파악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읽고 듣기 위해서는 여유롭고 넉넉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복잡한 일이나 사람들과의 빈번한 관계로부터 자유롭고 편한 시간이어야 쉽게 집중해서 성경을 읽고 들을 수 있다.

바쁘게 현대를 살아가면서 진정 성경 독서에 짧은 시간조차 할애하지 못하고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암브로시오 성인의 충고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왜 당신은 성경을 읽기 위해 자유로운 시간을 그분께 봉헌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와 대화하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당신은 그분을 찾지도, 그분께 귀 기울이지도 않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그분께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많은 수도승 교부들은 수도생활 안에서의 성경 독서를 위한 고정된 시간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사실 초기 이집트 은수자들은 성경 독서를 위해 따로 고정된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성경을 읽고 반추함으로써 늘 하느님 말씀의 현존 안에서 살았다.

그러나 서방 수도승들은 하루 중에 고정된 성경 독서를 위한 시간의 필요성을 직시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독서를 위해 따로 떼어진 자유로운 시간(seposita tempora)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우리가 육체의 음식을 먹듯이 수도자들은 그러한 독서 시간에 영혼의 양식을 먹었다.

베네딕도 성인 역시 규칙서에서 구체적으로 렉시오 디비나를 위한 고정된 시간을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자 할 때 아무 시간이나 남는 시간에 성경을 대충 읽는 것보다는 어느 고정된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꾸준히 성경 독서를 해 나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한 시간을 "하느님께 봉헌된 시간"으로 간주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전념해야 한다. 그런 여유로운 시간 안에서 비로소 성경의 말씀을 온 존재로 읽고 경청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성독을 위한 고정된 시간은 우리에게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정확히 얼마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가, 또 언제 행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각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옛집에 가면 그 기둥에 다음과 같은 주자의 말이 쓰여 있다. "반일정좌 반일독서(半日靜坐 半日讀書)" 즉 하루의 반은 고요히 앉아 자신과 만나고, 나머지 반은 책을 읽어 옛 성현과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비록 우리는 주자의 권고에 따라 하루의 반을 성경 독서를 하는데 할애하지는 못할망정, 매일 최소한 30분을 새벽 시간이나 혹은 다른 시간에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어 나갈 수 있다면 매우 바람직할 것 같다.

필자의 견해로는, 가능하다면 아침에 그날 미사의 독서와 복음 말씀 중에서 하루 동안 계속 되씹고 암송하게 될 성경 구절을 찾는 성경 독서의 시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왜냐하면, 독서가 묵상에 사용할 자료를 찾는 시간이며 또한 교회는 전례적으로 그날그날 미사의 독서와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새롭게 말씀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