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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생활/문화/ > 일반기사
2020.05.2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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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붓으로 일상 속 하느님 은총 담아내
27일~6월 2일 갤러리 1898에서 명상그림전 여는 하삼두 화백







"제 그림은 하느님께 드리는 일일보고입니다. 하느님이 오늘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셨는데, 오늘의 그림이 어제와 닮았으면 하느님께 야단맞을 것 같아요."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매일 붓을 들었다. 30년 가까이 수묵화를 그렸다. 매일 주어진 몫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에게는 삶이 곧 그림이고, 그림이 곧 신앙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그리는지는 항상 달랐지만, 하느님 말씀을 품어야 비로소 보이는 장면을 그렸다.


 

▲ 하삼두 작 엄마와 아기.


 

본지 박재찬 신부의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연재물에 토마스 머튼의 전 생애를 수묵화로 입히고 있는 하삼두(스테파노, 63) 화백이 명상그림전을 연다. 27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다. 부제는 해 뜨면 노래하고 비 오면 듣지요다. 일상의 복음 살기를 주제로 담아낸 수묵 담채화 40여 점을 건다.
 

하루를 미사로 시작하는 그에게 스치는 모든 풍경은 묵상이 되고 그림이 된다. 물을 품은 옅은 먹이 화선지에 번지며 구름이 피어난다. 젖은 붓으로 휘갈긴 자리에 돌무더기가 쌓이고, 그 틈새에 꽃이 핀다. 그 옆을 묵주를 쥔 아내가 걸어간다. 시간차를 두고 그려나간 먹의 겹침이 산등성이의 세월에 깊이를 더한다.
 

덧칠과 수정 작업은 없다. 빗나가면 빗나간 대로 둔다. 자기 자신을 맡기고 비우는 작업이다. 그는 "시련과 실수마저도 하느님의 안배로 주어지는 신비"라면서 "이 신비에 귀를 기울이는 맡김의 화두를 지향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래선지 그의 작품은 명상으로 이끈다.
 

작품에는 성경의 시편 말씀이 많다. 전통 문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사 발문을 대신해 시편 말씀을 곁들였다. 작품이 곧 말씀을 살아내려는 노력과 기도의 결과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밀양 삼랑진에 작업실을 둔 하 화백은 "시골에서 살다 보니까 자연이 내 작품의 주된 모티브"라며, "하느님이 자연과 세상을 이렇게 점령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하느님께서 창조 섭리를 구현하는 현장이 자연이지요. 그림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시골에서 꽃은 이렇게 핀단다. 경작지 없는 자갈밭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자갈밭을 일궈낸 후에 곡식을 심어. 그런데 하느님이 비를 안 내려주시면 수확을 못 해. 세상도 같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 후에 하느님의 비 같은 은총이 보태져야 결실이 온단다."
 

하 화백은 "코로나19의 유행 속에서 의료진들의 헌신에 화답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며 "그 결과로 시련은 곧 하느님의 손길임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서둘러 보여주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고진석(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신부는 전시 초대 글에서 "하느님 말씀에서 길어올린 명징한 지혜로 이룩된 이 작품들이 험난한 인생길에 지친 나그네의 이마에 맺힌 구슬땀을 식혀줄 바람 한 줄기, 세파에 시달리는 길손들의 마른 목을 축여줄 물 한 모금이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하 화백은 경남 남해 출생으로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20차례가 넘는 개인전을 열었다. 명상그림집 「지금 여기」,「그렇게 말을 걸어올 때까지」를 펴냈으며, 사목, 가톨릭 비타꼰, 계간 분도 등 교회 잡지와 주보 등에 그림을 연재해왔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성 클라라수도회 장성수도원에서 봉쇄 수도자들을 위해 그림 교실을 열고 있다. 다가오는 10월에는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한국의 자연을 주제로 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전시를 연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