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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2.2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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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9) 일일시호일
형식적 틀 아닌 마음의 흐름 즐기는 다도

▲ 영화 일일시호일 스틸컷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삶이 행복한가.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매일매일 좋은 날)의 주인공 노리코와 사촌 미치코의 삶을 들여다보며 인생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취업이 되지 않아서 졸업 후 출판사 프리랜서 작가로 살아가는 노리코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한 대로 야무지게 실천하며 뜻한 대로 대기업에 입사한 미치코의 모습이 자주 대비되며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절기에 따른 변화를 노리코의 삶의 여정에 대입시키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다도 수업을 시작한 노리코는 하지의 장맛비와 가을비 소리의 차이를 느끼고 입동(立冬)에는 찬물과 더운물의 미세한 소리의 차이를 알아가면서 자연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낀다.
 

다도를 하면서 자신의 내면 변화를 바라보는 노리코는 성숙해진다. 추위도, 더위도 그 자체로 하루하루가 좋은 날이다. 겨울의 모진 추위를 극복해야 입춘의 기쁨을 맛보듯 매년 반복되는 절기이지만 한순간 한순간이 생의 단 한 번이어서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일기일회(一期一會)의 교훈을 준다.
 

이 영화를 보며 잊고 있었던 나의 일본 유학시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녹차의 맛을 알게 되면서 잠시 다도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수학 공식을 외우듯 다도 절차를 열심히 노트에 적는 데만 열중했다. 그 결과 다도 분위기를 느끼고 익숙해지기보다 고급 문화를 배워봤다는 겉치레로 끝났다. 그러면서도 수업이 끝날 무렵 선생님께서 준비한 화과자와 말차를 맛보는 시간만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다도는 어렵고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차를 통해 인생을 배우는 노리코를 보며 제대로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다도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라는 다케다 선생님의 말씀은 다도를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시간을 들여 익숙해져야 비로소 몸과 손이 저절로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절제된 움직임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내는 심오한 모습과 자연을 담아내는 이미지에 심취하게 된다. 어떤 경지에 이르면 그 모습은 물 흐르듯 유연하고, 힘주지 않아도 정갈하다. 다도를 통해 노리코의 성숙해지고 풍요로워지는 변화를 우리도 함께 느끼게 된다. 다도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칙에 형식적인 틀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소리를 듣고 족자 붓글씨와 찻그릇을 감상하면서 차 문화를 즐기는 것이라고 영화는 알려준다.
 

새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듯 사회 변화와 혼돈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다도(茶道)를 대신해 하느님께 평화를 빌며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해야겠다.

▲ 이경숙 비비안나 가톨릭영화제 조직위원장 겸 가톨릭영화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