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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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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67) 나는보리
소리를 잃고 싶은 소녀, 보리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필리 2,15)
 

영화 나는보리(Bori, 2018)는 열한 살 소녀 코다(농인 부모를 둔 자녀) 보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리는 아빠, 엄마, 동생 정우와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유일한 비장애인으로서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자주 느낀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다른 가족들과 같이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날마다 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세운 영화가 많지 않아 수화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불편할지 모른다. 가족의 대화 대부분은 수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한글 자막을 통해서 그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다.
 

보리의 가족은 단순한 몸짓처럼 보이는 수화로 소통하고 서로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기쁨을 나눈다. 보리는 가족의 수화를 알아듣고 의사전달을 할 수 있지만 정작 세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알아채지 못한다. 여기에서 보리의 소외감이 시작된다.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과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자신의 존재가 못마땅해 소리 잃어버림을 통해서 가족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우연한 사건을 통해 그 소원은 이루어지는 듯하고 그 과정에서 보리는 가족 안에서 자신의 몫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한가족이지만 부모님이나 정우가 살아야 할 삶의 방식과 보리의 그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장애와 비장애를 잇는 보리의 역할을 통해 짜장면이나 피자, 치킨 배달시키기와 같은 일상적인 즐거움을 넘어 가족의 꿈을 이루어 가는데 고유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부르심과 삶의 자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가치를 부여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더 나아가 천지 창조 때부터 우리 각자를 부르시고 특별한 삶으로 초대하시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응답을 통해 완덕의 길을 걷도록 이끄신다.
 

우리는 모두 신앙의 모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난다.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비슷한 외모를 지니지만, 어느 순간 각자가 살아야 할 삶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한다. 하느님의 특별한 초대로 그 다름을 인식할 때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특별함이 된다.
 

타인과의 인간적인 비교가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특별함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영적인 행복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고유한 삶의 자리에서 그분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살아갈 때 그 행복은 우리 안에 자리한다.
 

세상의 시선으로 이상적인 누군가와 닮아가려고 끊임없이 소유를 추구하고 외모를 꾸밀 때 우리는 타인의 모방품에 지나지 않는 존재가 된다. 오히려 창조의 신비 안에서 나의 고유함을 인식하고 삶의 자리에 충실함을 더해갈 때 하느님의 특별한 존재가 될 것이다.

5월 21일 개봉

▲ 조용준 신부 성바오로수도회 가톨릭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