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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노(6.1)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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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유스티노 (Justin)
성인 기본정보
축일 6월 1일
신분 교부, 순교자, 호교론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00/110?-165년

  •    성 유스티누스(Justinus, 또는 유스티노)는 100~110년 사이에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사마리아 지방에 세워진 로마제국의 도시인 플라비아 네아폴리스(Flavia Neapolis, 오늘날 팔레스타인 중부의 나블루스[Nablus])의 한 이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성장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자세로 꾸준히 탐구하는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스토아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피타고라스 철학 그리고 플라톤 철학에 연이어 몰두하였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이사레아(Caesarea)의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한 노인을 만나 인간의 모든 사상, 플라톤 사상에도 한계와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 그가 그리스도교에 심취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태도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성 유스티노는 130년경 에페수스(Ephesus)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구도자로서가 아니라 진리의 설파자, 신앙의 설교가로 길을 바꾸어 한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그는 평신도였으나 스승이며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이다.

       성 유스티노는 132~135년 사이에 에페수스에서 트리폰이라는 유다인과 종교에 관한 토론을 벌였는데, 그 내용을 토대로 155년에 “트리폰과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 the Jew)를 저술하였다. 그는 순회 교사로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가르치다가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Antonius Pius, 138~161년 재위)가 있는 로마에 도착해서 그곳에 머물며 자기 집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schola)를 세웠다. 성 유스티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황제와 집정관에게 항의하는 2편의 “호교론”(Prima Apologia, Secunda Apologia)을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호교론자이며 또 그리스도교에 대한 장문의 글을 남긴 최초의 평신도였다.

       어느 날 성 유스티노는 크레센스(Crescens)라는 견유학파에 속한 사람과 논쟁을 벌이다가 그의 사주로 인해 로마의 집정관인 유니우스 루스티쿠스(Junius Rusticus)에게 고발되어 다른 6명의 동료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이방 신전에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수많은 고문을 당한 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2세기 호교론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요 철학자이자 교부였다. 그의 축일은 옛 “로마 순교록”에서 4월 14일에 기념했으나 1969년 전례력 개정 이후 6월 1일로 옮겨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6월 1일 목록에서 철학자로서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참된 지혜를 발견하고 따랐던 성 유스티노와 그의 순교에 대해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고종희 저, 명화로 읽는 성인전(알고 싶고 닮고 싶은 가톨릭성인 63인) - '유스티노', 서울(한길사), 2014년, 380-383쪽.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유스티노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98-300쪽.
  • 페르디난트 홀뵉 저, 이숙희 역, 성체의 삶을 위한 성체와 성인들 - '유스티노 순교자 성인', 서울(성요셉출판사), 2000년, 27-39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유스티노',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795-6797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유스티노 순교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131-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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