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을 해주세요.

로그인
닫기
축일 :
구분 :
이름 :
지명 :
프로토(9.11) 기본정보
img01
성인 프로토 (Protus)
성인 기본정보
축일 9월 11일
신분 시종,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3세기

  •    성 프로투스(또는 프로토)와 성 히야친토(Hyacinthus)의 생애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지만, 4세기의 순교자 명단과 초기 성무 집전서와 나폴리의 전례력 등에 두 성인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350년경에 기록된 “로마 순교자 증언록”(Depositio Martyrum)에서도 두 순교자가 로마의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에 있는 대성전에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들의 무덤은 4세기에 산사태로 매몰되었는데, 교황 성 다마소 1세(Damasus I, 12월 11일)가 이를 다시 보수한 후 성인들의 묘비명(墓碑銘)을 기록했고 그중 일부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1845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두 순교자가 합장되었음을 확인했는데, 순교자의 유해는 작은 묘실에 재의 형태로 안치되어 있었고, “순교자 히야친토 9월 11일에 묻히다”, “순교자 프로토의 묘”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성 프로토의 유해는 팔라티노(Palatino)의 성 살바토레(San Salvatore) 성당으로 옮겨졌고, 성 히야친토의 유해는 1849년 포교성성(布敎聖省, 현 인류복음화성성)의 경당으로 옮겨 모셨다.

       그리고 “성녀 에우제니아의 수난기”(Passio S. Eugeniae)에 따르면, 형제 사이인 성 프로토와 성 히야친토는 이집트의 총독이었던 성 필립보(Philippus, 9월 13일)의 딸 성녀 에우제니아(Eugenia, 12월 25일)의 환관이자 시종으로 그녀를 따라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갔다. 그들은 성녀 에우제니아와 함께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주교인 헬레누스(Helenus)에게 세례를 받고 열성적으로 성경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성녀 에우제니아가 결혼을 피해 동정을 지킬 수 있도록 남장을 하고 남자 수도원에 입회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들 또한 이집트의 은수자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성 필립보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서 순교한 뒤에 성녀 에우제니아를 따라 로마로 갔다. 그곳에서 성녀 에우제니아에 의해 바실라(Basilla)에게 파견되어 그녀를 설득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도록 했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이 9월 11일 목록에서 전해주는 바에 따르면, 성녀 에우제니아의 시종이었던 성 프로토와 성 히야친토는 257년에 시작된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253~260년 재위)와 갈리에누스(Gallienus, 253~268년 재위)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로마 신전에 희생제물을 바치도록 보내졌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제물 봉헌을 거부하며 신앙을 지켰고, 오히려 그들의 기도로 신전의 신상이 먼지로 변하자 심한 매를 맞고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그들의 유해는 고대 로마의 살라리아 가도에 있는 바실라 공동묘지에 묻혔고, 교황 성 다마소 1세가 그들을 기념해 묘비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런데 약 15세기 후에 그곳에서 성 히야친토의 무덤과 불에 타 재의 형태로 남은 유해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화형으로 순교했다고 보기도 한다.♣

참고자료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 프로토와 히아친토', 서울(일파소), 2023년, 778-781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 '프로토와 히야친토',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6년, 9132-91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