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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파시오(6.19)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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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보니파시오 (Boniface)
성인 기본정보
축일 6월 19일
신분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쿠에르푸르트(Querfurt)
활동연도 974-1009년

  •    독일 작센(Sachsen) 지방 쿠에르푸르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브루노(Bruno)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6살이 되자 교육을 위해 마그데부르크(Magdeburg)의 주교좌 학교로 보내졌고, 훌륭한 교육을 받아 젊은 나이에 사제품을 받고 오토 3세(Otto III) 황제의 궁중으로 들어가 궁중 사제가 되었다. 그는 황제의 대관식 수행원으로 로마에 갔다가 슬라브(Slave)의 사도요 프로이센(Preussen)의 사도로 활동하던 프라하(Prague)의 성 아달베르투스(Adalbertus, 4월 23일)를 만났다. 그의 선교 활동에 크게 감동한 브루노는 성 아달베르투스가 수도승이 된 수도원에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998년, 성 아달베르투스가 순교한 다음 해에 그는 라벤나(Ravenna) 인근에 오토 3세가 세운 성 베네딕투스 수도원에 입회했다. 보니파티우스를 수도명으로 정한 그는 그곳에서 성 로무알두스(Romualdus, 6월 19일)의 제자가 되어 엄격한 금욕을 실천하며 수련을 받았다.

       1003년 성 보니파티우스는 교황 실베스테르 2세(Sylvester II)의 임명을 받고 동유럽 선교의 책임자가 되어 이듬해에 로마를 떠났다. 그는 동료 수도승들이 순교한 소식을 듣고 독일 지역으로 향했다. 나중에 그는 선교 대주교로 임명되었고, 마가르족들에게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키예프(Kiev)까지 가서 그곳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는 프로이센 사람들에 대한 복음화 사업을 꾸준히 수행하다가 18명의 동료와 함께 키에프 공국과 리투아니아 국경 근처에서 러시아인들에게 학살당해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그 후 그들은 모두 순교자로 공경받았다. 폴란드의 브라운스베르크(Braunsberg)는 브루노의 순교 이후 생긴 이름이라 한다. 성 보니파티우스는 보통 ‘쿠에르푸르트의 브루노’ 또는 ‘제2의 프로이센의 사도’로 불린다. “로마 순교록”은 6월 19일에 그의 순교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정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0월 15일에 기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