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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닐라(5.31)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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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베드로닐라 (Petronilla)
성인 기본정보
축일 5월 31일
신분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로마(Roma)
활동연도 +251년경

  •    3세기경 로마의 동정 순교자인 성녀 페트로닐라(또는 베드로닐라)에 관한 순교 행전이 없어서 정확히 언제 어떻게 순교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베드로 행전”, “필립보 행전”, 6세기에 작성된 행전, 그리고 기타 그노시스주의적인 작품에 따르면, 성녀 베드로닐라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의 딸이라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녀 베드로닐라가 자연사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네레오와 아킬레오의 수난기”(Passio SS. Nerei et Achillei)의 기록 때문인 듯하다. 이 수난기에 따르면, 성녀 베드로닐라는 사도 성 베드로의 딸로서 로마 귀족 플라쿠스(Flaccus)의 청혼을 거절한 후 3일 동안 단식하고 기도하던 중 죽음을 맞이했는데, 임종 전에 그리스도의 성체를 영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녀의 무덤은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Flavia Domitilla, 5월 12일) 지하 묘지에 있는 성 네레오(Nereus)와 성 아킬레오(Achilleus)의 무덤 곁에 있다고 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동정 순교자인 성녀 베드로닐라의 무덤이 로마의 아르데아티나 가도(Via Ardeatina) 가도에 있는 성녀 도미틸라의 지하 묘지에 있다고만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7세기경의 작품인 “여행기”(Itineraria)에 의하면, 아르데아티나 가도에 있는 성녀 도미틸라의 지하 묘지에 390~395년경에 세워진 대성당이 있었는데, 4세기경 성당 벽에 그린 벽화에 한 여인이 죽은 자를 천국으로 안내해 들어가는 장면과 ‘순교자 베드로닐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이러한 증언은 발굴 작업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교황 성 시리치오(Siricius, 384~399년 재위)의 재임 기간에 그녀의 무덤 위에 대성당이 세워졌으며, 525~526년에는 교황 요한 1세(Joannes I)의 지시로 성녀 도미틸라의 지하 묘지에 있는 대성당이 복원되었다고 한다. 8세기경 성녀 베드로닐라를 사도 베드로의 딸로 확신한 프랑크 왕국 피핀 3세의 요청으로 그녀의 유해가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 묘지로 이장되었다. 현재 성녀 베드로닐라의 제대는 사도 성 베드로 좌(座) 오른편의 둥근 천장 아래에 있다. 성녀 베드로닐라의 유해가 옮겨진 후 프랑스의 왕들은 이곳을 자신들의 경당(Capella regum Francorum)으로 여겼으며, 피핀으로 인해 적어도 16세기까지는 프랑스의 수호 성녀로 공경을 받았다.

       성녀 베드로닐라의 순교 사실은 의문시되지만,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었다는 견해는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녀에 대한 공경 예식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시에나(Siena)와 독일 등에서도 거행되고 있다. 성녀 베드로닐라는 영국 중세 후기 유리화와 그림 등에 종종 사도 성 베드로에게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열쇠 꾸러미나 빗자루를 든 모습으로 등장하고, 상본에서는 종려나무 가지와 책을 들고 서 있는 작은 소녀로 묘사되고 있다.♣

참고자료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녀 페트로닐라', 서울(일파소), 2023년, 460-461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5권 - '베드로닐라',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7년, 3311-3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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