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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얀센(1.15)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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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아놀드 얀센 (Arnold Jansen)
성인 기본정보
축일 1월 15일
신분 신부,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837-1909년

  •    성 아놀드 얀센은 독일 라인(Rhine)강 저지대의 국경 부근에 있는 고흐(Goch)라는 작은 도시에서 11남매 중 하나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소에 대한 꿈을 키운 그는 고향 인근 게스돈크(Gaesdonck)의 가톨릭 학교에서 수학한 후 뮌스터(Munster)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본(Bonn)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1861년 8월 15일 뮌스터 교구의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12년 동안 독일 북서부의 보홀트(Bocholt) 시에 있는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자연과학과 수학을 가르쳤다. 학교에서 예수 성심에 대한 지극한 신심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교구의 ‘기도의 사도직’ 책임자로 임명되어 활동하면서 다른 종파의 그리스도인들과의 교회 일치 운동에 눈을 뜨게 되었다. 1873년 교직을 떠난 뒤 그는 “예수 성심의 작은 메신저”라는 선교잡지를 창간해 선교사들의 활동을 전하면서 더 많은 신자가 선교 활동에 관심을 갖고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 무렵 비스마르크 재상에 의해 독일 전역에서 문화 투쟁이 벌어지자, 성 얀센 신부는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와 하느님을 향한 올바른 신앙이 온 세상에 퍼져야 한다는 신념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교회가 정부로부터 조직적인 탄압을 당하면서 많은 사제와 수도자가 추방되고 주교가 투옥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추방당한 사제와 수도자들이 해외 선교로 눈을 돌렸지만, 그 준비 과정이 쉽지가 않았다. 성 아놀드 얀센은 그들을 돕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란 사실을 깨닫고 체계적인 선교사 양성을 위한 신학원을 설립을 본격화했다. 다만 독일에서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네덜란드의 슈타일(Steyl)로 가서 1875년 9월 8일 ‘성 미카엘 선교 신학교’(St. Michael’s Mission Seminary)를 설립하였다. 이 신학교는 세계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말씀의 선교 수도회’(Societas Verbi Divini, 신언회)의 모태가 되었다. 말씀의 선교 수도회(神言會)는 세계 선교를 활발히 펼치던 1901년 1월 25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승인을 받았다.

       한편 성 얀센 신부는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을 돕기 위해 선교잡지를 다시 발간하여 배포하고, 1889년 12월 8일에는 ‘성령 선교 수녀회’(Congregatio Missionalis Servarum Spiritus Sancti)를 설립하여 말씀의 선교 수도회와 협력하도록 했다. 그리고 1896년 12월 8일 기도로 선교에 참여하는 관상 봉쇄 수녀회인 ‘성체조배의 성령 선교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성 얀센 신부는 1909년 1월 15일 슈타일의 수도원에서 71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그는 말씀의 선교 수도회의 첫 선교사였던 성 요셉 프라이나데메츠(Joseph Freinademetz, 1월 28일) 신부와 함께 1975년 1월 1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3년 10월 5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함께 성인품에 올랐다.

참고자료
  • 남기은 편, 영성의 향기 - 수도회 창립자들의 영성, 서울(성바오로), 1998년, 35-37쪽.
  • 요셉 봐이스마이어 외 저, 전헌호 역, 교회 영성을 빛낸 수도회 창설자: 근세후기와 현대교회 - '아놀드 얀센과 스타일러 전교회', 서울(가톨릭출판사), 2002년, 75-100쪽.
  • 한국교회사연구소 엮음, 송영웅 옮김, 오늘 성인(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한 성인들) - ‘성 아놀드 얀센’,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14년, 44-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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