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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무명 순교자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현양동산
지번주소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1486(바다의 별 청소년 수련원 내) 
도로주소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 고비고개로741번길 107
전화번호 (032)932-6354
팩스번호 (032)932-6307
홈페이지 http://ilmanwe.or.kr/
관련기관 바다의 별 청소년 수련원    
관련주소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 고비고개로741번길 107
성인자료실
제목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 순교자의 십자가 길 13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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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19 조회수1107 추천수0 첨부파일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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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한국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의 순교자의 십자가 길 모습입니다. 위로의 문을 지나면서 한국 교회사의 중요한 15가지 사건을 묵상할 수 있도록 매 처마다 순교자의 삶과 교회사의 발자취를 묵상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습니다. 2013년 3월에 찍은 사진입니다.

  

작품 해설

  

일만위 순교자들의 순교와 증거로 말미암아 마침내 신앙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가 마침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는 구원이라는 열매가 맺어졌듯이 순교자들의 피는 신앙의 자유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포도송이 열매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주님과 순교자들의 피로 맺은 열매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13처 신앙의 자유 획득과 제물포 본당 설립

  

조선은 고종의 문호 개방 정책에 따라 1876년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굳게 닫았던 쇄국의 문을 열고 개항을 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천주교회도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100여년의 교난을 견디어 온 교회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1882년에 이르러서였다. 이 해에 교회는 서울에 한한학교(韓漢學校)를 공식적으로 설립하여 운영하였는데 정부가 이를 묵인해 줌으로써 종교적인 자유도 묵인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1886년 한불조약 이후 비로소 수단(사제복)을 입을 수 있었고, 개항지 내에서 선교사로서보다는 외국인의 자격으로서 여권만 지니고 있다면 어디든 자유로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인 신자들에게는 이 조약으로도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인 신자들과 외국 선교사들의 종교적 자유가 보장된 것은 1895년 조선 교구의 책임자였던 뮈텔 주교(Mutel, 閔德孝, 1854-1933)와 고종과의 만남 이후였다. 그리고 법률적으로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것은 1899년의 교민조약과 1904년의 선교조약 체결 이후부터였다.

  

이런 시대의 격변으로 말미암아 제물포(濟物浦)라는 작은 어촌에 불과하던 인천이 근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얻게 된다. 인천은 지형적으로 서울의 관문이자 외국 무역의 거점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외국 세력들이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1875년 일본이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을 강제로 체결케 하고, 이 조약의 결과로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었다. 그러면서 속속 각국의 거류지가 인천에 생겨나게 되었다.

  

조선 7대 교구장 블랑(Blanc) 주교는 수도의 관문이요 개항지인 제물포에 본당을 설립키로 하고, 빌렘 신부(Nicolas Joseph M. Wilhelm, 洪錫九, 1860-1938)를 제물포 본당 초대 주임 신부로 임명하였다. 홍 신부는 1889년 7월 1일에 부임하여, 1890년 현 답동 본당이 자리한 언덕에 3,212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성당을 건축하였고, 1897년 7월 4일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신축 성당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로서 인천에 천주교회가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잠시 묵상합니다.)

(주모경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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