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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한국 최대의 성인과 복자 탄생지
지번주소 서울시 중구 의주로 2가 16-4(서소문 역사공원 내) 
도로주소 서울시 중구 칠패로 5
전화번호 (02)3147-2401 , (02)3147-2402
팩스번호 (02)3147-2406
홈페이지 http://www.yakhyeon.or.kr
관련기관 중림동약현 성당    (02)362-1891
관련주소 서울시 중구 청파로 447-1(중림동)
문화정보 사적 제252호(중림동약현 성당)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서울대교구 서소문 역사공원: 최다 성인과 복자를 배출한 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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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12 조회수127 추천수0

[함께 걷기] 서울대교구 서소문 역사공원


최다 성인과 복자를 배출한 순교성지

 

 

“눈물을 흘리며 씨뿌리는 자, 기뻐하며 거두어들이리라.”(시 126.5)

 

서울특별시 중구 칠패로 5번지에 위치한 ‘서소문 역사공원’(구 서소문 성지)은 2019년 6월1일 개장한 천주교 성지로서 단일 장소에서 최다(最多) 성인과 복자를 배출한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이다. 이곳에서 순교한 성인은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하여 기해박해(1839년) 41위, 병인박해(1866년) 3위로 총 44위이며, 복자는 강완숙 골롬바를 비롯하여 신유박해(1801년) 25위, 기묘박해(1891년) 2위로 총 27위이며, 순교자는 이승훈 베도로를 비롯한 30위이다. 천주교의 입장에서 보면 ‘서소문 순교성지’로 이름 지어져야 하지만, ‘칠패시장’ ‘시구문’ 등 역사의 질곡이 지워지는 것을 반대하는 여론을 반영하여 ‘서소문 역사공원’으로 개장된 것이다.

 

서소문 밖은 형조 및 의금부와 가까워 부대시참(不待時斬)의 집행에 편리하였고,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칠패시장과도 인접하여 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소였다. 또한 조선시대 형장은 일반적으로 물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서소문 밖에는 한강의 지류인 만초천이 흐르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시대 국가 공식 참형지(斬刑地)가 되었다. 이는 사직단 서쪽에 처형장을 두어야 한다는 ‘예기’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었다,

 

성지에 들어서면 광장에 우뚝 솟은 순교자 현양탑을 볼 수 있다. 성 베네딕도회 조광호 신부(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장)가 설계를 맡은 이 탑은 박해 당시 대표적 형틀인 ‘칼’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15m 높이의 주탑을 중심으로 3개의 화강암 탑이 배치돼 있다. 기단 위에는 유리로 막아 물이 흐르도록 했다. 죽음의 상징인 칼과 생명의 상징인 물을 대비시킨 것으로 멀리서 보면 탑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가의 바닥은 철도 침목을 패턴화했다.

 

중앙탑 전면에는 박해의 현장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을 붙였고, 앞뒤에 각각 “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마태오복음 5.6)과 “나는 부활이요 생명입니다”(요한복음 11.25∼26)라는 성구를 새겼다. 칼 윗부분 원형 구멍에서 가운데까지 흘러내리는 7개의 금빛 선은 죽음을 통한 하느님의 승리와 7성사(聖事)를 상징한다.

 

또한 좌우의 탑 앞에는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기묘박해 때 순교한 44위의 순교성인과 27위의 복자, 그리고 30위의 순교자 명단을 새겨놓았다. 뒷면에는 예수가 죽은 라자로를 일으켜 세우는 성경 대목을 인용, 예수와 라자로의 형상을 양각해 부활의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산책로가 조성된 ‘역사공원’에 ‘노숙자 예수’상

 

‘역사공원’의 이름에 걸맞게 지상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길가의 벤치에 누워있는 청동조각상이 있었다. ‘노숙자 예수’라는 작품으로 티모시 스말츠라는 조각가가 만든 것이다. 서울역의 노숙자처럼 이불을 얼굴까지 푹 뒤집어쓴 모양으로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발에는 십자가에 못 박혔던 흔적(오상)이 있는데, 그 발아래 한 사람이 앉을 공간이 있었다.

 

일부의 크리스천들은 이 작품이 성스러운 예수님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전시를 거부하기도 하였는데,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며 공생활을 하신 예수님을 잘 형상화한 것으로 칭찬하면서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가 인정되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에 다시 성지에 가면 예수님의 발등에 생긴 못 자국을 어루만져 보아야겠다.

 

야외제대를 지나 위치한 처형장의 망나니들이 참수를 하고 칼을 씻었다는 ‘뚜께우물’은 뚜껑이 자물쇠로 잠김 채 그 깊이나 수량을 알 수 없었다.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은 지하를 파서 지하공간만을 이용하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와 안에는 많은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103위 순교성인’, ‘103위 성인을 위무함’, ‘두 번째 하늘길’, ‘발아’, ‘순교자의 칼’, ‘순교자의 길’, ‘순교자의 칼’, ‘의심 없는 믿음’,‘ 서 있는 사람들’ 등 순교의 고통과 영광을 형상화한 작품들이었다.(https://www.seosomun.org/index.do#5thPage 참조)

 

박물관과 도서관에는 많은 역사적 사료들과 함께 신앙인들의 정신적 성숙을 돕는 도서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주님께 힘을 얻어 순례길에 오른 사람 복되어라.(시 84.5)

 

순교자들을 찾아 떠나는 순례는 신에 대한 흠숭의 의미뿐 아니라, 회개하는 행위로, 혹은 성인에 대한 존경의 행위로, 혹은 영적인 은혜를 받기 위한 행위로, 혹은 은혜에 감사하기 위한 행위로 행해지는 자기성화의 과정이어야 한다.

 

“야훼여, 내 마음은 교만하지 않으며 내 눈 높은 데를 보지 않사옵니다. 나 거창한 길을 좇지 아니하고 주제넘게 놀라운 일을 꿈꾸지도 않사옵니다. 차라리 내 마음 차분히 가라앉혀, 젖 떨어진 어린 아기, 어미 품에 안긴 듯이 내 마음 평온합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야훼께 두어라.”(시 131장)라고 순례자의 노래를 부르는 다윗을 닮아야 할 것이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순교를 목숨을 바치는 ‘피의 순교’ 즉 ‘적색순교’와 피를 흘리지는 않지만, 철저한 금욕주의를 지켜나가는 사막의 은수자들처럼 순교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것 즉 ‘백색순교’, 그리고 전 생애 동안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며, 신앙을 증거하고 자기 자신을 투신하는 것 즉 ‘녹색순교’로 나누었다.

 

박해로 인한 ‘피의 순교’가 불가능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삶의 전반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며, 신앙을 증거하고 자기 자신을 투신하는 것, 즉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사는 것’이 바로 “녹색순교”라는 것이다.

 

시편은 순례의 열매를 “씨를 담아 들고 울며 나가는 자, 곡식단을 안고서 노랫소리 흥겹게 들어오리라.”(시 126.6)로 노래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1월호, 육근웅 베다(동서울 레지아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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