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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내성가정성지 성 이문우 요한 순교 제178주년 기념 현양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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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10 조회수115 추천수0

단내성가정성지 ‘성 이문우 요한 순교 제178주년 기념 현양미사’


“성인의 삶과 죽음 되새기며 성덕 본받겠습니다”

 

 

2월 1일 단내성가정성지 소성당에서 최재필 신부가 ‘성 이문우 요한 순교 제178주년 기념 현양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단내성가정성지(전담 최재필 신부)는 2월 1일 성지 소성당에서 ‘성 이문우 요한 순교 제178주년 기념 현양미사’를 봉헌했다.

 

최재필 신부가 주례한 이날 미사는 1840년 2월 1일 서울 당고개에서 순교한 이문우 성인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경기도 이천에 자리한 성지는 이곳에서 태어난 순교자인 이문우 성인을 현양하고 있다.

 

이날 미사 강론은 교회사 학자이기도 한 원로사목자 김학렬 신부가 맡았다. 김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이문우 요한 성인은 녹암 권철신(암브로시오)의 외증손”이라면서 “성인이 순교하기 60여 년 전 천진암에서 우리나라의 천주교회가 창립됐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천주교회는 ‘신앙 공동체’인 천진암 강학으로부터 시작됐다”고 강조하면서 “천진암 강학에서 이벽 요한 세례자 성조가 지어 부른 ‘천주공경가’에 대해 그 제자들이 ‘십계명가’로 화답했다”고 덧붙였다.

 

- 단내성가정성지 전경.

 

 

이어 김 신부는 “육화(肉化)와 교환(交換)의 신비로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시어 인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삶을 살자”고 신자들에게 순교자의 모범을 따르길 당부했다.

 

이날 현양미사에 참례한 김금순(로사·61·성남대리구 곤지암본당)씨는 “곤지암본당의 주보이시기도 한 성 이문우 요한의 성덕을 본받아 성가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얻기 위해 매주 이곳 성지를 순례한다”고 밝혔다.

 

단내는 성 이문우 요한을 비롯해, 성 이호영 베드로(1803∼1838), 성녀 이소사 아가타(1784∼1839), 성녀 조증이 바르바라(1782∼1839), 성 남이관 세바스티아노(1780∼1839) 등 다섯 성인을 현양하는 성지다. 단내성지 야외 광장 우측면을 감싸고 있는 오방이산 끝자락에는 이곳에서 태어나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정은 바오로와 그의 재종손 정양묵 베드로 순교자의 묘소가 있다.

 

심순화 작가의 ‘이문우 성인’.

 

 

이문우 성인은?

 

이문우(요한) 성인은 깊은 효심으로 양모를 봉양하고, 복사로서 선교사로 파견된 신부들을 보필하는 삶을 살던 순교자다.

 

성인은 이천의 ‘동산밑’이라는 마을의 양반 신자 집안에서 태어나 신앙생활을 해나갔다. 성인은 독신으로 하느님을 따르는 삶을 원했지만, 지극한 효심에 모친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결혼했다. 하지만 아내와 두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다시 혼인하지 않고 수덕생활을 실천했다.

 

특히 박해로 자유롭게 선교활동을 하기 어려운 성직자의 손과 발이 됐다. 모방 신부를 비롯해 주교와 신부들을 보좌하고, 피신해 있는 선교사들에게 박해상황과 신자들의 생활 등을 전했다. 옥에 갇힌 신자를 돌보고, 순교자의 시신을 거둬 장사를 지내는 데에도 앞장섰다.

 

박해로 붙잡힌 성인은 “천주께서 특별한 은혜로 나를 부르시니 어찌 그분의 부르시는 소리에 대답을 아니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포도청으로 끌려갔다. 

 

성인은 심문을 받았지만 오히려 포도대장에게 “임금님의 명령에 복종하려면 만물의 조물주이신 하느님을 배반해야 할 것이니 죽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면서 “이미 오래 전에 생각한 것이니 더 이상 권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며 신앙을 지켰다.

 

마침내 성인은 1840년 2월 1일 서울 당고개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8년 2월 11일, 이승훈 기자, 성기화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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