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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 수리산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최경환 성인이 살던 병목처럼 잘록한 골짜기
지번주소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 9동 1151-2 
도로주소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병목안로 408
전화번호 (031)449-2842
팩스번호 (031)449-2845
홈페이지 http://www.surisan.kr
전자메일 surisan-hl@casuwon.or.kr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성지순례길 - 수도권 지역: 수리산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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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19 조회수183 추천수2

[성지순례길 - 수도권 지역] 수리산 성지(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병목안로 408)


- 최경환 성인 묘소.


낙엽이 지는 날, 병목안 마을에 들어섭니다. 골짜기의 생김새가 병목처럼 잘록하게 좁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답니다. 2km 남짓한 길을 따라 올라가는 양옆으로 산들이 이어져 있어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어울리는군요.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든 산을 끼고 걷다 보니 어느새 수원교구의 수리산 성지에 도착합니다. 신앙 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만한 깊은 산골이네요. 땅이 척박하여 담배를 키워 내다 팔아서 담배촌이라고 불렸던 까닭도 알만하고요. 순례자 성당 위쪽에 복원한 최경환 성인 고택을 돌아본 뒤, 그 맞은편 개울에 놓인 경환교 다리를 건넙니다. ‘최경환 성인 묘소 0.17km’라는 표지를 따라 산비탈을 오르며 성인의 삶을 반추해봅니다.

수리산 뒤뜸이 교우촌은 1837년경에 형성되었습니다. 당시 공소 회장이던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복녀 이성례 마리아는 충청도 홍주의 양반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혼인하였지요.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가산을 포기하고 고향을 떠나 한양의 벙거지골로 이주하였다가 다시 강원도 금성과 경기도 부평을 거쳐 이곳에 정착하였던 겁니다. 1836년에는 장남인 최양업 토마스가 모방 신부에게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김대건, 최방제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을 갔고요. 1839년 기해박해가 터지자 7월 31일에 포졸들이 이곳에 들이닥쳐 40여 명의 교우가 모두 한양 포도청으로 압송되었습니다. 35세의 최경환 회장이 앞장서서 더위에 시달리며 먼 길을 걷는 교우들을 독려하였지요. 옥에 갇힌 그는 태장 340대와 곤장 110대를 맞았고, 최후로 치도곤 50대를 맞고 9월 12일에 순교하였습니다.

이성례 마리아 역시 아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낸 대역 죄인이라는 이유로 젖먹이를 비롯한 자식들과 함께 투옥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젖먹이가 굶어 죽자 남은 자식 넷을 살리기 위하여 배교하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하지만 이내 포도청으로 되돌아가 자진하여 투옥되었습니다. 어린 자식들이 옥에 찾아와 울먹였지만 마음을 바꾸지 않았지요. 결국 그녀는 1840년 1월 31일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당하였습니다. 시구문 밖에 버려진 그녀의 시신은 찾지 못하였고요. 그래서 지금 이곳에 묘가 하나만 있는 겁니다. 그 후 최경환 프란치스코는 1984년에 시성되었고, 이성례 마리아는 2014년에 시복되었지요.

성인 묘소 위쪽에 있는 성모상 앞의 노란 국화 화분이 소담스럽습니다. 문득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대제학과 예조판서를 지낸 이정보의 시조가 떠오르네요.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난다/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가을날의 서리 속에서 소나무나 대나무 못지않은 절개를 뿜어내는 국화가 성인과 복녀의 삶을 닮았군요. 남이 알아주지 않는 산골에서 신념을 지키고자 하였던 분들, 하나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고자 하였던 분들의 의연한 모습을 말입니다.

[2017년 11월 19일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서울주보 5면, 김문태 힐라리오(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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