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사적지 자료실

교구 성지명     지역명     내용 검색

안동교구 > 우곡(홍유한 묘)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한국교회 최초 수덕자 홍유한 선생과 후손 순교자들의 안식처
지번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우곡리 151-2 
도로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시거리길 397
전화번호 (054)673-4152
팩스번호 (054)673-7094
홈페이지
관련기관 홍유한 피정집(청소년 수련원)    
관련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시거리길 397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신앙의 땅: 안동교구 우곡성지 - 홍유한과 풍산 홍씨 가문의 천주 신앙
이전글 솔뫼성지 · 당진시, 2021년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에 재방문 건의
다음글 서울 혜화동본당 설립 90주년 축하 미사 봉헌, 사진전 개막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12-04 조회수65 추천수0

[신앙의 땅] 안동교구 우곡성지 - 홍유한과 풍산 홍씨 가문의 천주 신앙

 

 

“1995년 9월1일 성지봉헌을 하였으나 고적하기 이를 데 없었던 성지에 2009년 5월29일 안동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아 순교 후 여러 곳에 계셔 찾지 못하던 홍병주(베드로), 홍영주(바오로) 성인 두 분과 순교후손 11분의 가묘를 농은 공의 발치(아랫 쪽)에 모셨고, 2014년 8월16일 프란치스코 교황님 방한 시복식으로 홍낙민(루카), 홍필주(필립보), 홍재영(프르다시오), 강완숙(골롬바), 심조이(바르나바) 다섯 분이 복자품에 오르시어 묘지석 호칭이 바뀌었다.”

 

봉화군 봉성면 시거리길 395번지 안동교구 우곡성지에 자리 잡은 농은 홍유한의 묘소와 그 후손 13위의 가묘가 안장 된 우곡성지. 2016년11월에 출판된 소책자 ‘우곡성지’ 발간사의 한 부분이다.

 

안동교구 안동교회사 연구소장 신대원 요셉 신부는 책 서문에서 “아침이 늦어서야 햇살이 계곡을 비추고 아직은 이른 시간에 벌써 석양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런 약속의 땅에 13위 순교자를 여기 모심으로서 명실 공히 이곳을 ‘거룩한 땅’ 성지로 선포하고 모든 믿는 이들에게 홍유한선생과 그 후손들의 신앙을 알리고 이곳을 순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책자를 발간했다. 비록 농은 선생은 세례를 받지 못하고 선종했지만 그분의 숭고한 신앙과 삶은 그분의 제자들과 후손들에게 흘러들어 전해졌고 땅에다 깊은 뿌리를 박고 튼튼한 고목으로 성장했다.”고 밝히고 있다.

 

우곡성지는 한국최초로 수덕자로 홀로 천주교 생활을 28년 동안 이어온 농은 홍유한과 그 후손들이 잠든 곳이고 홍유한이 실천한 칠극을 돌에 새겨 성당 입구에 세운 ‘칠극성당’이 있다.

 

 

칠극에서 체득한 온갖 덕행을 충실하게 실천

 

우곡성지 해설을 겸한 미사를 마치고 인사를 드리자 대뜸 야단부터 주시는 칠극성당 권용오 마티아 신부님. “안동교구 성지소개라면 우곡성지를 1순위로 알려야지 다 늦게 소개를 하느냐고…” 일단 1박2일 우곡성지 피정의 집에서 피정을 하고 충분한 묵상을 한 뒤에 공부를 하고 제대로 취재를 하라고 한다. 우곡성지에 대한 신부님의 무한애정과 자부심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시간을 내서 레지오 단원들과 다시 오겠다는 알량한 약속을 드리고 우곡성지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책자를 통해서 우곡성지의 주인공인 홍유한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먼저 세례를 받지 않은 농은 홍유한은 어떻게 가톨릭 적 수계생활을 했을까? 홍유한은 1726년에 때어나 한국천주교가 이 땅에 자리 잡기 전인 1785년 선종했다. 그는 스승인 성호 이익을 통해서 천주실의와 칠극 등 신앙서적을 접했고 천주실의를 신앙의 정신적 기반으로, 스페인 신부 판토하의 칠극을 삶의 실천으로 삼고 그때까지 공부하던 모든 서적을 버리고 기도와 명상을 하기 위해 조용한 곳을 찾아 옮기며 철저한 신앙생활을 했다고 한다.

 

북경이나 외국에 간일이나 선교사를 만나 적도 없이 신앙생활을 지속했고, 칠극에서 체득한 온갖 덕행을 충실하게 실천했다. 축제일 표나 기도서가 없었지만 매달 축일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7. 14, 21, 28일에는 모든 세속의 일을 중단하고 방안에 앉아 묵상과 천주실의 칠극 등 종교서적을 암송하며 거룩하게 지냈고, 금육 일을 몰라서 항상 맛있는 것을 멀리하고 절식과 절제로 자신을 다스렸다. 당시 엄격한 양반사회에서 명문가이자 훌륭한 집안의 후손임에도 말을 타고 먼 길을 가다가 길에서 노약자를 만나면 태우고 자신은 내려 걸었으며 아랫사람에게도 깍듯한 예를 갖추고 남을 부리기보다 몸소 힘든 일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신앙실천의 바탕이 된 칠극(스페인 예수회 신부 판토하가 쓴 칠극대전으로 7가지 죄악의 근원과 이를 극복하는 7가지 덕행) 1. 겸극오(겸손으로 오만함을 이겨냄) 2. 인극투(사랑으로 시기와 질투를 이겨냄) 3. 인극로(인내심으로 분노를 이겨냄) 4. 정극음(정결로 음욕을 이겨냄) 5. 사극린(베푸는 마음으로 인색함을 이겨냄) 6. 담극도(담박한 생활로 탐욕을 이겨냄) 7. 근극태(부지런함으로 게으름을 이겨냄) 실천에 철저한 생활이 오래되니 기력이 쇠진하고 몸에 고질병이 생겨 움직임도 힘들었으며 그리하여 60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 집안에서 4대에 걸쳐 13위 순교자 나와

 

그리스도 가르침을 몸과 생활로 실천한 홍유한은 비록 세례를 받지 못하고 홀로 신앙생활을 했지만 그와 함께 신앙서적을 공부하고 동일한 교리서로 연구하고 실천한 권철신을 비롯한 많은 동료와 제자들은 한국천주교회의 주역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신유?기해?병인박해를 거치며 그 집안에서 4대에 걸쳐 13위 순교자가 나왔는데 한국천주교에서 4대가 순교한 집안은 홍유한 문중과 김대건(안드레아) 문중 뿐 이라고 한다.

 

“천주교가 들어오기 10여 년 전 부터 자신이 믿는 하느님의 세상이 이루실 세상을 희망하면서 불같은 신심과 철저한 수덕에 일관된 삶을 살았으니 이것은 동서양 교회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희귀한 사실인 동시에 우리 조선 천주교회만이 가진 특색이고 자랑이다.”<영남 순교사, 김정구>

 

우곡성지 내에는 높다란 야외 십자가와 홍유한 동상, 묘소, 칠극성당, 십자가의 길, 칠극의 길, 농은 홍유한 후손 순교자 현양비 및 13위 순교자 묘역 등이 아름다운 산골짜기에 쉼터와 함께 공원 식으로 조성되어있으며 개인이나 단체 피정, 순례객들을 위한 피정의 집이 있다. (연락처 054-673-4152 권용오 마티아 신부)

 

우곡사랑 후원회 계좌 우체국 703439-02-249631 천주교안동교구 유지재단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2월호, 김안자 아네스(안동 Re. 명예기자)]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Total 0 ]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