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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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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호세아 (Hosea)
축일 10월 1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8세기BC
같은이름 오세아, 오지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호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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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19 조회수188 추천수0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호세아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호세 10,12)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14,2)

 

호세아(주님께서 구원하신다)는 기원전 740-725년 사이에 활동한 것으로 보입니다(호세1,1). 그가 북 이스라엘 왕국의 지명들(사마리아, 길갈, 베텔)과 북 왕국의 전승들(탈출, 모세, 야곱)은 말하지만, 남 유다 왕국과 관련된 것들(다윗, 예루살렘 등)은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떠돌이 생활(신명 10,19; 26,5)에서 벗어나 농경문화를 받아들이며 가나안 땅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나안의 종교들과 마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알(주인)이라는 신을 중심으로 하는 다신교입니다. 땅을 비옥하게 하고 자손을 번성하게 해주고 가축을 많게 해준다는 바알은 비를 내려주는 신, 폭풍우를 불러오는 신이라 불렸고 천둥소리는 그의 목소리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는 건기와 우기의 계절변화에 따라 주기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고 회자되었습니다. 수송아지와 번개가 그 상징이었고 높은 곳에 그 제단이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곁에는 아세라 같은 풍요와 다산의 여신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에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비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비를 제때 내려주고 풍요롭게 해준다는 말, 그래서 신들을 위한 축제를 열어 제물을 바치고, 신들의 행위를 따라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은 아주 큰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때 ‘하느님을 위한 에프라임의 파수꾼’(9,8) 호세아가 등장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비판하며, 하느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했습니다. 그의 말 곳곳에서 우상숭배에 대한 언급을 발견합니다. ‘축제와 초하룻날과 안식일’(2,13) ‘바알들의 축제일’(2,15) ‘금과 은으로 만든 신상’(8,4) ‘사마리아의 송아지’(8,5.6) ‘제 몸에 상처를 내고’(7,14; 참조 1열왕 18,28) ‘헛것’(7,16) ‘하느님을 떠난 불륜’(9,1) ‘벳 아웬의 송아지’(9,5-6) ‘기념기둥들, 제단들’(10,1.2), ‘바알들, 우상들’(11,2) ‘신상과 우상은 장인의 작품일 뿐’(13,2) ‘사람들이 입 맞추는 송아지들’(13,2). 그는 이러한 말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죄악-우상숭배를 고발했습니다. 우상숭배만이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느님의 도우심이 아니라 정치 군사적인 힘에 의지해 나라를 지키고자 했습니다(7,8-16). 이는 하느님과의 계약에 대한 위반이며, 하느님의 ‘가르침을 거역’하는 행위입니다(8,1).

 

호세아는 이러한 우상숭배와 계약의 위배가 생겨난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느님을 아는 예지’(4,1)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지가 없어’ 사제들이 하느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고(4,6), 백성들은 큰 나무들 아래에서 신탁을 얻으려하고 산당에서 제물을 바치고 분향하며 이교적인 제의에 빠져들어 우상숭배자들을 따라하고 있었습니다(4,12-14). 게다가 우상의 신전에 사는 창녀들과 잠자리를 하면 신과 교감할 수 있다는 가나안의 유혹에 빠져 비윤리적인 행위까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호세아는 ‘창녀기’(4,12;5,4)라고 부르며 비판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느님은 자조 섞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십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6,4; 참조 4,16; 8,5; 11,8; 13,14) 하느님은 예언자의 입을 통해 ‘이스라엘을 벌하겠다.’ 하시며 회개하여 당신께 돌아오라고 호소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의 마지막 말씀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11,9)이십니다. 자녀를 양육하고 키우는 어머니처럼(11,1.3.5), 아니 그보다 훨씬 큰 사랑으로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받아들이시고 용서하십니다. 주님은 마침내 당신의 분노를 푸시고 이스라엘을 사랑해주실 것입니다(14,5).

 

호세아는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말로써만이 아니라, 자신의 결혼 생활을 통해서 드러냈습니다. 그는 주님의 명에 따라 고메르라는 창녀와 결혼해 이남일녀를 두었습니다(1,2-9). 그런데 그의 아내는 자신에게 ‘곡식과 햇포도주와 햇기름을 주고, 금과 은을 불려주는’(2,10) 남편의 사랑을 잊고, 옛 삶으로 돌아가 ‘귀걸이와 목걸이로 단장한 채 애인들을 쫓아갔고’(2,15) 불륜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다시 예언자에게 집을 나간 여자를 사랑해주라고 명하십니다(3,1). 예언자는 값을 지불하고 여인을 되사옵니다(3,2). 그러나 바로 집안으로 들여오지 않습니다. 회복의 시간 - 정화의 시간이 필요합니다(3,3). 그것은 광야 -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그분께만 의지하는 곳에서 벌어집니다(2,16-17).

 

이렇게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창세기에서 탈출기까지, 호세 2,20 / 창세 1,20-25.30; 호세 11,1; 호세 12,4-5.13 / 창세 25-35장)을 잊고 ‘창녀’같이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끝 간 데 없이 사랑하시는 연민의 하느님(호세 11,8)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저 십계명의 첫 구절을 다시금 상기시켰습니다(호세 13,4 “나는 이집트 땅에서부터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는 나 말고 다른 신을 알아서는 안 된다. 나밖에 다른 구원자는 없다.” 참조 탈출 20,1)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 예언자는 어리석다, 미쳤다.’(9,7)라고 했고, 그의 길을 막고(9,7) 그에 대한 적대심으로 하느님까지 대했습니다(9,8). 그래도 그는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며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했습니다. 사랑은 반대 받는다고 물러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단지 말로써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행동이 수반될 때 살아있는 선포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로마 5,8 참조), 이를 깨달아 아는 자, “하느님을 아는 예지”(호세 6,6)를 가진 자는 기꺼이 삶으로 이 사랑을 보여줄 것입니다.

 

[2019년 3월 17일 사순 제2주일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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