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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메로(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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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오스카 로메로 (Oscar Romero)
축일 3월 2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대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산살바도르(San Salvador)
활동연도 1917-1980년
같은이름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책소개] 오스카 로메로: 민중의 고통에 함께하며 신앙 증거한 목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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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20 조회수369 추천수0

「오스카 로메로」, 민중의 고통에 함께하며 신앙 증거한 목자의 삶

 

 

케빈 클라크 지음/ 강대인 옮김/ 256쪽/ 1만4000원/ 가톨릭출판사

 

군부 독재에 맞서 사랑을 외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그의 행적을 담은 책 「오스카 로메로」가 출간됐다. 10월 14일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시성식을 기념해 나온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왜 그를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는지 이해를 돕는다. 엘살바도르의 참혹한 시대 상황을 살펴보면서, 로메로 대주교가 어떻게 자신의 삶으로써 복음을 증거 했는지 생생히 보여 준다.

 

“우리는 이 시대 민중의 고뇌와 희망에 함께합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고뇌와 희망에 연대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할 때에, 우리는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제7장 ‘사랑, 그리스도인의 복수’ 중에서)

 

로메로 대주교는 요즘 표현으로 ‘중도보수’ 위치에 선 성직자였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의 엘살바도르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사회 갈등이 고조돼 있었다. 부유층은 경제, 정치를 비롯한 사회 각 분야 권력을 장악했고, 부를 축적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며 폭력과 살해를 서슴지 않았다. 그런 시대상에서 로메로 대주교는 진보적 사제들을 경계하고 비판하면서, 그것이 교회 문화를 지키는 것이라 믿었다. 진보적 사제들이 운영하는 교육센터를 폐쇄하고, 정치를 이야기하는 사제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는 점점 더 참혹해지는 민중의 고통을 깨닫고, 절친한 사제가 비참한 죽음을 맞자 이를 계기로 회심한다. 로메로 대주교는 엘살바도르에 믿음과 정의를 세우기 위해 온갖 살해 위협과 중상모략, 동료 주교들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았다. 민중을 위한 용기 있는 변호자가 된 로메로 대주교는 결국 반대자들의 총탄에 순교한다.

 

저자는 로메로 대주교의 강론과 일기, 그의 형제들과 친구들 증언을 토대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이 책에 담긴 일화들은 한 사람의 회개가 어떻게 신앙을 증거 하는 순교로 이어지고, 한 나라에 희망의 표지가 되는지를 발견하게 해 준다. 또한 농민들과 땅바닥에 앉아 성경을 해석하며 그들에게서 지혜를 들었던 일, 토지 개혁을 위해 전국 성직자·수도자의 의견을 모았던 일, 신성모독을 당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군인들 앞으로 전진 했던 일 등은 그가 대주교로서 순교의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이 단 한 순간의 회심 때문만은 아님을 알려 준다. 자신의 신념을 지켜 나갔던 로메로 대주교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복음과 교회 가르침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길이 무엇인지 묵상하도록 한다. [가톨릭신문, 2018년 10월 21일, 우세민 기자]

 

 

군부 독재 맞서 사랑 외친 민중의 목자 오스카 로메로

 

 

오스카 로메로/ 케빈 클라크 지음/ 강대인 옮김/ 가톨릭출판사/ 1만 4000원

 

총탄이 빗발치는 어둠의 땅에도 ‘사랑의 꽃’은 피었다.

 

1970~1980년대 군부 독재의 탄압으로 얼룩졌던 남미 엘살바도르에 핀 그 꽃은 ‘민중의 목자’이자 ‘가난한 이들의 희망’ 오스카 로메로(1917~1980) 대주교다.

 

엘살바도르의 근현대사는 피로 얼룩졌다. 민중의 궐기와 군부의 탄압이 폭력사태로 치닫는 극한의 상황에서 로메로 대주교는 미사와 강론, 희생자를 찾아가는 사목으로 군부가 자행하는 불의에 맞서기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이 시대 민중의 고뇌와 희망에 함께합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뇌와 희망에 연대합니다.”

 

당시 엘살바도르는 암흑 그 자체였다. 군부는 정권에 항거하는 시민을 향해 무자비하게 총부리를 겨눴다. 광장과 거리에서 사람들은 총탄에 쓰러져갔다. 쓴소리를 서슴지 않던 젊은 사제들마저도 사제관에 들이닥친 괴한에 의해 살해됐다. ‘피의 그림자’는 교회 안으로 빠르게 드리워졌다. 군인들은 성당을 급습해 감실을 파괴하고, 성체를 훼손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 민중들과 군부 독재에 맞선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전진하십시오.” 정의의 등불로 나선 산살바도르 대교구장 로메로 대주교는 사람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로메로 대주교는 희생자 마을을 거룩하게 하고자 성체 행렬도 이어갔다. 총을 겨누는 군인들이 막아섰지만, 그는 “전진”을 외쳤다. 주보와 신문, 라디오를 통해서도 평화를 외쳤다. ‘정의’를 향한 로메로 대주교의 빛나는 행보는 그가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았다.

 

신간 「오스카 로메로」는 엘살바도르 군부 독재의 중심에서 ‘사랑의 승리’를 위해 싸우다 순교한 로메로 대주교의 생애를 펼친 책으로, 14일 로메로 대주교의 시성을 기념해 출간됐다. 당당히 “진짜 죄에 관여하지 않는 하느님 말씀, 이것이 무슨 복음입니까?” 하고 핍밥박는 시민들의 중심에 섰던 로메로 대주교의 빛나는 사목 활약상을 생생히 그려냈다.

 

엘살바도르의 정치ㆍ경제적 어려움은 로메로 대주교가 어린 시절부터 있어왔다. 부는 소수 지배계층에게만 집중됐고, 대부분 사람이 빈곤에 시달렸다. 보수 우익세력과 사회주의 진보세력 간의 충돌, 부정선거와 군부의 광기 어린 시민 학살은 20세기 엘살바도르 근현대사를 ‘암흑의 시대’로 물들였다. 모든 희생은 죄 없는 시민들이 감내해야 했다.

 

1977년 산살바도르 대교구장이 된 로메로 대주교는 민중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늘 신변 위협 속에 지내면서도 공동선과 정의를 향한 그의 목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그는 “가난한 이들이 있는 곳에 생명의 하느님이 계시다”고 설교했고, “교회는 하느님 백성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몸이 돼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 로메로 대주교의 초상화를 든 시민들이 14일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 거리에서 시성식을 지켜보고 있다.

 

 

교회와 시민들마저도 이념적으로 양분되는 상황에서도 그는 끔찍한 희생의 현장을 찾았다. 나뒹구는 시신 속에서 옛 친구를 발견하기도 하고, 실종되거나 살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순교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이라고 했던 그는 1980년 미사 도중 괴한의 총탄을 맞고 선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메로 대주교 시성식 다음 날인 15일 바티칸을 찾은 엘살바도르 신자 5000명 앞에서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자신의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한 목자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체화할 줄 아는 분이었다”며 성인을 추모했다. 성 로메로 대주교는 식민 탄압과 군부 독재로 얼룩진 라틴 아메리카 지역 모든 민족을 위한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더욱 빛나게 됐다. 엘살바도르인들에게 그는 ‘사랑의 영웅’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0월 28일,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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