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자료실

구분 성인명     축일 신분 지역명 검색
마리아(8.15)

마리아(8.15)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마리아 (Mary)
축일 8월 15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예수의 어머니
활동지역
활동연도 +1세기
같은이름 메리, 미르얌, 미리암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그리스도교 성화에 등장하는 과일들
이전글 성인 이름에 담긴 뜻: 발프리도(Walfridus)
다음글 명화와 성인: 가르멜산의 성모에게 스카풀라를 받은 성 시몬 스톡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13 조회수365 추천수0
[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그리스도교 성화에 등장하는 과일들 (1)

 

 

사과, 버찌, 무화과(왼쪽부터).

 

우리가 흔히 성화(聖畵)라고 말하는 교회 미술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 눈에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열매들이며 꽃들이 소도구로 나와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 열매로는 사과, 버찌, 무화과, 포도, 석류 등이 있다. 화가들은 그림을 통하여 자신이 전하고 싶은 특별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는데, 특정한 소도구가 이 목적을 위해 큰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교 미술의 전통에서 화폭에 담긴 열매들은 그 나름의 의미 또는 상징성을 가진다.

 

 

사과

 

사과는 여전히 우리에게 친숙한 대표 과일 중 하나다. 뿐만 아니라 사과에 얽힌 동화나 일화 또한 우리와 친밀하다. 가령, 백설 공주 이야기나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에 얽힌 일화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사과는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와 아주 밀접한 과일로 자리매김해 왔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사과나무 아래의 성모자.

 

 

사과는 많은 종교 전승들에서 신비스런 열매 또는 금단의 열매로 소개된다. 그리고 마법, 젊음, 아름다움, 행복, 불사불멸을 상징한다. 영국의 켈트족은 아서 왕을 비롯한 영웅들이 신비의 섬 아발론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린다고 믿었는데, 아발론이라는 이름은 ‘사과의 땅’ 또는 ‘사과의 섬’을 뜻한다. 북유럽의 신화에 따르면, 신(神)들의 나라 아스가르드에는 봄과 청춘을 관장하는 여신 이두나가 가꾸는 과수원이 있고, 신들은 이 과수원에서 생산되는 사과를 날마다 먹음으로써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이 신화나 설화들에서 사과를 이야기할 때면 한 가지 조심스러워지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17세기에 들어서 ‘사과’를 뜻하는 영어 단어 애플(apple)이 외지에서 유럽으로 들어온 뭇 열매들을 가리키는 일반 용어로도 쓰였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식물의 열매며 줄기에 병으로 생긴 혹을 가리키는 데도 이 단어가 쓰였다. 가령, 토마토가 유럽에서는 ‘사랑스런 사과’라고, 오이가 ‘땅의 사과’라고, 오렌지가 ‘황금 사과’ 또는 ‘중국 사과’라고 불렸다. 열대 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로 우리나라 전역의 들판이나 길가에 자라는 한해살이풀인 독말풀조차도 유럽에서는 ‘가시 사과’라고 불렸다.

 

그리고 사과는 그리스도교회에서도 일찍부터 널리 사용되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라틴어에서 ‘사과’를 뜻하는 단어와 ‘악’을 뜻하는 단어가 똑같이 말룸(malum)이다. 어쩌면 이런 연고가 교회 안에서 널리 쓰여 온 라틴어 성경(불가타)에서 태초의 에덴동산에 있던 금단의 열매 지선악과가 사과로 해석되는 데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또한 영웅 헤라클레스가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 가서 정원 한가운데에 있는 생명나무에 열린 황금 사과를 따오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그리스 신화에서 영향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사람의 목의 한 부위인 후두(喉頭, 소리를 내고 이물질이 기도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한다)가 ‘아담의 사과’라 불리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아담이 금단의 과일을 삼키려고 서두르다가 그것이 목에 걸리는 바람에 이 부위가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었다는 속설과 연관된다.

 

후스 반 클레브의 성모자.

 

 

어쨌거나 구약성경 창세기에 금단의 열매 이름이 적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리스도교의 전승은 아담과 하와가 먹어서는 안 되는 ‘사과’를 따서 먹었다고 말한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열매는 사과가 되었고, 그 결과로서 사과는 지식, 불멸, 유혹, 인류의 타락과 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된 것이다. 그런데 사과는 어떤 인물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그 상징성이 전혀 달라진다.

 

화가가 에덴동산을 그림으로 표현할 때 사과가 아담의 손에 들려 있으면, 이 사과는 죄를 나타낸다. 반면에 예수님의 손에 들려 있는 사과는 구원을 상징하고, 그리하여 예수님은 생명을 가져오시는 제2의 아담임을 나타낸다. 이 차이는 그리스도교회 안에서 상징의 의미가 변천되어 왔음을 반영한다. 이를테면 사과가 구약성경에서는 인류의 타락을 의미하고, 신약성경에서는 죄로부터의 구속을 상징한다.

 

또한 성경의 번역본에 따라 어떤 판본에서는 ‘합환채’를 뜻하는 히브리어 두다임(dudaim, 창세 30,14 참조)이 ‘사랑의 사과’로 번역되기도 했다(이것은 유럽에 ‘사랑스런 사과’로 소개되었다는 토마토와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구약성경 몇몇 곳에서는 사과가 좋은 의미로 사용된 예를 볼 수 있다. 우리말로 ‘당신(그분의) 눈동자’ 또는 ‘네 눈동자’로 번역된 구절이 영어로는 ‘the apple of your eye’로 옮겨지기도 하는데(신명 32,10; 시편 17,8; 잠언 7,2; 즈카 2,12), 이때는 가치 높게 평가되는 대상이나 인물을 가리킨다. 잠언 25장 1절에서는 “알맞게 표현된 말은 은 쟁반에 담긴 황금 사과와 같다.”고 말한다. 요엘서 1장 12절에도 사과나무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사과나무가 시들어 버린 것이 크나큰 손실을 뜻한다. 아가에서는 사과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또는 성적인 맥락에서 사용된다.

 

한편, 이스라엘 사람들은 새해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를 맞이하면 ‘새해가 좋고(사과) 달콤한(꿀) 것’임을 상기하기 위해 사과를 꿀에 찍어서 먹는다.

 

 

버찌(체리)

 

요즘에는 우리말 이름인 버찌보다도 체리라는 서양 이름으로 불리는 이 과일은 맛이 감미로운 과일이다. 따라서 버찌는 상냥한 성격, 선행을 한 뒤에 느끼는 흐뭇하고 달콤한 기분, 천국 또는 낙원의 감미로움을 상징한다. 그리고 버찌 나무는 죽음과 소생 또는 새로운 일깨움을 나타낸다. 교회 미술에서는 흔히 아기 예수님이 버찌를 손에 쥐신 모습으로 묘사된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에덴 동산과 인류 타락.

 

 

무화과

 

무화과나무는 신약성경에서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두고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 맺는 일이 없을 것이다.”(마태 21,19)라고 저주하신 데서 연유한다. 그리고 무화과의 잎은 교회 미술에서 흔히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은 사실을 알아차리고 몸을 가릴 때 사용한 나뭇잎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무화과나무와 열매는 대체로 사악함(죄 많음)을 가리킨다. 또한 더러는 사과나무를 대신해서 지선악과 나무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씨앗이 많다는 점에서 육체적 욕망과 번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2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그리스도교 성화에 등장하는 과일들 (2) 포도, 석류

 

 

포도

 

초대 교회 때 그리스도인들의 지하 무덤이던 카타콤바에는 포도를 수확하는 천사들을 새긴 조각도 있고, 포도송이를 입에 문 비둘기를 그린 그림도 있다. 이는 포도가 교회 안에서 일찍부터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사실 포도는 교회 미술 작품들에 소도구로 등장하는 과일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인류가 포도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근동 지방에서는 6000~8000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도의 알갱이 표면에 자연적으로 생기는 미생물의 일종이 포도를 발효시켜 알코올음료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포도주를 생산한 것도 그에 못지않게 오래된 일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접경지역인 조지아 일대에서 발견된 고고학의 증거는 인류가 8000년 전에 이미 포도주를 생산했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아르메니아에서 발견된 포도주 양조시설은 6000년 전쯤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렇게 인류는 일찍부터 포도를 재배하여 과일로 먹기도 하고 술을 빚어 마시기도 했다. 위의 두 지역을 포함한 중근동 지방은 일찍이 좋은 포도와 포도주의 생산지로 알려졌고, 특히 이란 남서부의 쉬라즈는 9세기까지 최고 품질의 포도주의 생산지로 알려져 있었다(프랑스의 유명한 ‘시라 포도주’는 이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라고 한다). 포도는 점차 그리스, 페니키아, 로마 등지로, 유럽의 다른 지역들로 퍼져 나갔다. 또한 아프리카 북부와 북아메리카까지 퍼져 나갔고, 우리나라에도 선교사로 온 서양인 사제에 의해 전해졌다.

 

이렇게 인류에게 친숙해진 포도는 그리스 사람들과 로마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과일이 되었다. 저들의 신화에 나오는 농경의 신 디오니시우스가 흔히 포도나무 잎으로 머리를 장식한 모습으로 그림에 표현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포도가 처음 나오는 것은 노아 때다. 창세기는 노아가 포도를 가꾸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창세 9,20 참조). 그런가 하면 신명기는 유다인들이 축제 기간에 포도주를 마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잠언과 이사야서는 포도주(술)와 관련해서 절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교훈들을 여러 차례 말한다.

 

카라바죠의 성 요한 세례자.

 

 

이렇게 일찍부터 인류와 가까워진 포도는 그리스도교회에도, 특히 가톨릭교회에도 아주 각별한 과일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행하신 기적이 맹물을 포도주로 바꾼 일인데(요한 2,1-12 참조), 이로써 그분이 인간을 초월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신 메시아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생애의 마지막 식사를 제자들과 함께 드시면서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셨는데, 그날 이후로 제자들은 당신을 기억하여 이 예식을 계속 행하라는 그분의 유언(루카 22,19 참조)을 받들어 오늘까지 성찬 전례를 거행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포도와 포도주가 각별한 것은, 포도를 으깨어 만든 술이 그리스도의 피를 뜻한다는, 실제로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한다는 ‘성변화’ 교의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없애기 위해 피 흘리셨음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전례에서 포도주를 사용한다. 그리고 이 포도주는 알코올음료 섭취를 기피하는 일부 개신교 교파들이 편의상 사용하는 무알코올 포도즙이 아니라 첨가물 없이 포도만을 빚어 만든 술(교회법 924조 3항 참조)이다. 이는 성경의 근거에 따르는 것이고 또한 교회 초기에 이미 정해진 전승을 따르는 것이다.

 

이밖에도 포도는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일꾼들이 수확물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포도나무 줄기와 가지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을 따르는 이들의 살아 있는 일치를 나타낸다(요한 15,1-6 참조). 그런가 하면 교회 미술 작품에서는 포도나무의 잎이 요한 세례자를 나타낸다.

 

 

석류

 

씨가 많아서 ‘작은 알갱이 사과’라고도 불리는 석류는 인류가 가장 일찍부터(약 6000년 전) 재배하기 시작한 과일들 중 하나다. 페르시아(이란)가 원산지인 석류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지역에서 재배되며, 우리나라에서는 남부 지방에서 자란다. 요즘 건강식품으로 높은 명성과 인기를 누리는 이 과일은 오래전부터 교회 미술 작품들에도 특징 있는 소도구로서 자주 등장해 왔다. 그만큼 석류의 상징성이 의미 깊다고 할 수 있다.

 

석류는 씨가 많은 과일인바, 과육 속의 씨들은 하나의 보편교회를 이루는 수많은 신앙인들을 가리키고 이 씨들을 감싸 담는 과일은 교회를 나타낸다. 나아가 하나인 교회 안에 석류의 씨처럼 많은 우리 모두를 받아들이는 가톨릭교회의 내면적인 일치와 그러한 교회를 벗어나지 않는 충실성을 상징한다.

 

석류(좌)와 보티첼리의 성모자와 석류(부분화).

 

 

또 로마 신화에서 생식과 다산, 4계절 중의 봄 그리고 부활(재생)을 관장하는 여신 프로세르피나(그리스 신화의 페르세포네)가 석류로 표상된다는 점이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 또는 영원한 삶을 나타내는 상징성으로 이어졌다. 프로세르피나 여신이 해마다 봄이면 이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신화의 이야기와 석류 열매가 무르익으면 껍질이 터지며 씨가 밖으로 노출되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시어 무덤 밖으로 나오시는 것을 연상한 교회의 이해가 맞물린 것이다.

 

성모자를 그린 교회 미술 작품들에서는 성모님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님이 석류를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때는 그 모양과 색깔 때문에 석류가 예수님의 성심을 나타낸다. 그리고 석류는 성령 강림 대축일 이후의 주일들에 성당을 장식하는 데 흔히 쓰인다.

 

한편 석류는 유다교에서도 매우 높이 평가되었다. 그래선지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 석류가 등장한다. 가령 대사제 아론의 겉옷 자락에 석류와 금방울을 달아 아론이 성소에서 의식을 거행하다가 죽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하느님의 지시(탈출 28,33 참조),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모세가 파견한 정찰대원들이 다른 과일들과 함께 석류를 따온 이야기(민수 13,23 참조), 솔로몬 궁전의 청동 기둥들에 석류를 달아 놓은 이야기(1열왕 7,18 참조), 연인인 남자의 볼이 석류 조각 같다고 하는 사랑 노래(아가 4,3 참조) 등이 있다. 유다교 전승에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먹은 과일이 석류였다고도 하고, 석류의 씨가 613개인데 이는 바로 율법의 계명의 숫자라고 하는 것이 흥미롭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3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Total 0 ]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