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자료실

구분 성인명     축일 신분 지역명 검색
바실리오(대)(1.2)

바실리오(대)(1.2)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바실리오(대) (Basil the Great)
축일 1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지역
활동연도 329-379년
같은이름 바실리우스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명화와 성인: 교부학자 성 대 바실리오
이전글 히지노 교황: 영지주의 맞서 논쟁으로 이단 규정
다음글 성인 이름에 담긴 뜻: 율리오(Julius), 율리아(Julia)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08 조회수58 추천수0

[명화와 성인] 교부학자 성 대 바실리오

 

 

프란시스코 데 에레라, <교리를 기술하는 대 바실리오>, 1637년, 캔버스에 유채, 243x194cm, 루브르 박물관.

 

 

동방 교회 4대 교부 중 첫째로 손꼽히는 성 대 바실리오(Basilius, 328경~379)는 터키에 있는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리아에서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성인의 가족은 교회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문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성인이고, 조부는 순교자이며, 10남매 중 여섯째인 성인을 포함해서 주교가 세 명인 데다 세 명의 성인이 배출되었다. 이러한 가정의 한 사람이었으므로 성인은 어려서부터 선량한 감화를 받고 경건하게 자랐으며, 수사학을 가르치던 아버지에게 주로 일반학문을 배웠고, 종교의 지식은 어머니에게 배웠다. 고향의 학교를 졸업한 성인은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가서 수사학 등을 배운 후, 그리스 아테네에 가서 유학했다. 후에 나지안의 주교 성 그레고리오를 알게 되어 친분을 맺고 서로 격려하며 학문 습득과 인격 수련에 노력했다.

 

다년간 공부한 성 바실리오는 고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수사학을 가르쳤다. 성인의 학문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다투어가며 그의 산하에 모여들게 되었고 그의 명성은 삽시간에 부근 일대에 퍼졌다. 그러나 성인은 27살이 되던 해 세례를 받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기로 했다. 그리고 수도연구를 위해 이집트, 팔레스티나, 메소포타미아 등의 사막으로 은수자들을 방문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같이 성스러운 생활을 했다.

 

귀중한 체험으로 수도생활의 신성함을 깨달은 성인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은수자의 생활을 소개하고 장려하며 본격적인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또한 성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에게 남겨진 모든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호활동에 사용했다. 특히 성인은 학문 연구로 가톨릭교회 정통교리를 바로 세우는 데 노력했으며, 견실한 신학으로 삼위일체 교리를 반대하는 이단에 맞서 싸웠고, 이를 단죄하는데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성인은 수도 공동체 생활과 운영 지침을 담은 많은 저서를 남겼다. 성인은 하느님께 더 잘 집중하려면 어느 정도 세상에서 물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공동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으며, 은둔 생활보다는 공동체 생활을 중시한 규칙서를 썼다. 오늘날까지도 성 바실리오 규칙에 담긴 공동생활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이후 동·서방 수도생활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세비야 출신의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데 에레라(Francisco de Herrera, 1585경~1654)의 작품에서처럼, 주교 복장을 한 성 바실리오는 그의 머리 위에 비둘기가 상징하는 성령의 영감에 따라 그는 수도원의 규칙을 쓰고 있다. 성인은 그가 영향을 끼친 수도원 창설자들에 둘러싸여있다. 대부분 사람이 펜이나 책을 들고 성인을 강렬하게 바라보고 있다. 각각의 수도원에 성 바실리오의 규칙서가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성인의 왼쪽에는 주교복을 입은 성 아우구스티노가, 오른쪽에는 흰색 수도복을 입은 성 베네딕토(베네딕도회)가 열심히 규칙서를 따라 적고 있다. 맨 뒷줄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프란치스코회), 성 베르나르(시토회), 성 도미니코(도미니코회), 성 베르톨도(가르멜회)가 보인다. 맨 앞줄에는 성 베드로 놀라스코(자비의 동정 마리아회)와 마타의 성 요한(삼위일체 수도회)도 성 바실리오의 가르침을 따라 적고 있다.

 

성인은 365년에 사제가 되었고, 370년에 체사레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성 바실리오는 이름 앞에 ‘대’(大)가 붙은 정도로 위대한 교회교부로서, 그리고 대주교로서 교회를 위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느님의 말씀을 일러 준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히브 13,7)

 

축일 : 1월 2일

상징 : 주교복장, 책, 성령의 비둘기

 

[2018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인천주보 3면,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s://www.wga.hu/art/h/herrera/franci_e/st_basil.jpg)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Total 0 ]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