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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리나(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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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가타리나 (Catherine)
축일 4월 29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 교회학자, 신비가
활동지역 시에나(Siena)
활동연도 1347-1380년
같은이름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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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24 조회수2305 추천수0

[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상) 아기 예수에게서 결혼반지 받는 성녀

 

 

- 코레조, ‘카타리나의 신비의 결혼식’, 1526-27, 패널에 유채, 105×102 cm, 파리, 루브르.

 

 

지난 주에 소개한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와 동명이인으로 시에나 출신의 카타리나(1347-1380)가 있는데 두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각각의 이름 앞에 출생지를 붙인다. 시에나의 카타리나는 1347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아름다운 도시 시에나에서 부유한 가죽 염색업자의 스물 네 번 째 딸로 태어났다. 

 

카타리나의 생애는 그녀의 전기 작가인 카푸아의 라이몬드라는 성인이 성녀의 구술을 기록한 전기가 있고, 성녀 스스로 ‘대화’라는 제목의 책을 썼으며, 그 밖에도 성녀가 쓴 40여 통의 서한이 남아 있어 연구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가 풍부하다. 

 

카타리나는 6살 때 한 도미니코회 교회에서 성인들에게 둘러 싸여 옥좌(玉座)에 앉아 있는 예수님으로부터 축성을 받는 신비를 체험하였으며, 이 사건 이후 평생 주님을 위해 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의 부모는 딸이 나이가 차자 결혼을 시키려했으나 카타리나는 일부러 머리를 짧게 자르는 등 여성적 매력을 숨겼다고 한다. 1362년 사랑하는 언니가 사망한 후 기도와 참회의 삶을 살기 시작했으며, 막내 동생마저 사망하자 그 때부터 빵과 날채소, 물만을 섭취하는 금욕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 같은 생활은 33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한다. 

 

18세 때에 도미니코 제3회에 가입했다. 이 수녀회는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고 가정에서 지내면서 복음을 실천하였는데 그녀는 집안에서 최소한의 대화만 나누고 모든 시간을 기도에 바쳤으며 3년간의 기도생활을 마치고 1370년 마침내 집 밖으로 나왔다. 20세에 카타리나의 영적 성장은 이미 높은 단계에 이르렀으며, 이 무렵 그리스도와 신비의 결혼식을 맺었다고 회고하였다. 카타리나를 그린 그림 중에는 아기 예수가 성녀에게 결혼 반지를 끼워주는 장면이 많이 있는데 바로 이 신비의 체험을 그린 것이다. 

 

대부분이 과부들로 구성되어 있던 도미니코 제3회는 빈민층에 대한 봉사가 주 업무였다. 

 

카타리나는 병자들을 보살폈고, 가난한 자들과 과부들을 돌봤다. 특히 1370년의 대 기근과 1374년의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던 시기에는 육체가 쇠진할 정도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카타리나가 간호사들의 수호성인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녀는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식사 양을 줄여갔으며, 반면 주변에서 염려할 정도로 영성체를 자주 하였다고 한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금욕생활이다. 

 

카타리나는 설교로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으며 주변에 추종자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설교는 사제의 고유권한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당시에 한 여성의 설교를 듣기 위해 많은 군중이 몰려들었다고 하니 카타리나의 영적 능력과 지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레조(안토니오 알레그리)의 이 그림은 카타리나의 영적 체험인 ‘그리스도와의 신비의 결혼식’을 그리고 있다. 그림 왼쪽에는 성모님이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아기 예수는 카타리나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 있다. 뒤쪽의 화살촉을 들고 있는 사람은 성 세바스티아누스다. 코레조는 구릉 위의 도시인 파르마 출신의 르네상스 시대 화가인데 로마에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작품을 공부한 후 이 두 거장의 작품을 결합시킨 절충 스타일을 탄생시켜 당대 최고의 거장으로 인정받았으며, 달콤하고, 우아하며, 부드러운 그의 그림은 바로크 미술의 탄생에도 기여했다. [가톨릭신문, 2009년 6월 14일, 고종희(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www.wga.hu/art/c/correggi/various/mystic_m.jpg)

 

 

[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하) 교회 쇄신 추구… 분열 막으려 노력

 

 

- <오상을 받는 성녀 카타리나>, 208×156cm, 1513-15, 시에나 국립 미술관.

 

 

“내가 너를 사랑하였듯이, 너도 타인을 사랑하라. 내가 조건 없이 너를 사랑했듯이 너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조건 없이 타인을 사랑하라. 너는 나에게 보답하려 하지 말고 오직 타인에게 이 사랑을 주어라.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사랑하라. 너의 정신적, 육체적 이익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나의 영광과 이름으로 그들을 사랑하라.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성녀 카타리나의 저서 ‘대화’편에 나오는 말씀으로 그리스도가 카타리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보통 사람과 성녀의 차이점은 이 단순한 말씀을 실천에 옮기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언제 타인을 조건없이 사랑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저울질을 하기 일쑤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은 자식에게만 줄 뿐이다. 그런데 성녀 카타리나는 예수님과 같은 나이인 33세로 사망할 때까지 이 말씀을 실천에 옮기며 살았다. 

 

성녀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에게 보낸 서한을 보면 그녀는 또한 교회의 부패와 잘못을 질타하는 냉정한 비판자이기도 했다. 

 

“교회는 스스로 선택한 가난과 보잘 것 없는 어린양의 거울이어야 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부를 나누어 주어야 하건만,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러기는커녕 세상의 사치와 야망, 그리고 허망 속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세속인들보다 천배는 더 나쁜 것입니다.” 

 

일개 수녀가 교황님께 이처럼 직설적으로 교회를 질타하였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1374년 카타리나 성녀는 당시에 치열했던 교회의 분열을 막기 위해 피사를 방문했으며 거기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과 똑 같은 오상(五傷)을 받았다고 하는데,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상처를 숨기며 지내다가 죽음이 가까이 와서야 타인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당시 교회는 교황파와 대립 교황파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는데 카타리나는 늘 정통 교황파에 서서 교황의 정통성 확보에 이바지했고, 1309년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으로 교황청이 옮겨진 후 친히 그곳을 찾아가 교황님을 알현하여 1376년 교황청이 로마로 다시 돌아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교회의 분열을 종식시키는 데에도 기여했다고 한다. 

 

교회가 한창 분열의 혼란을 겪고 있던 1380년 경 카타리나는 먹고 마시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며 서서히 죽음의 길로 접어들었고, 그해 2월 29일 33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카타리나가 글을 배운 것은 선종 3년 전에 불과하며, 그녀의 저서 ‘대화’와 40여 편의 서한은 그녀의 정신적 동지였던 성 라이몬디의 구술(口述)에 의한 것이다. 

 

‘오상을 받는 성녀 카타리나’는 성녀와 동향 출신인 시에나의 화가 베카푸미가 그린 것으로 흰 색의 도미니크회 수도복을 입은 성녀 카타리나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두 팔을 벌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상으로부터 오상을 받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실내는 정확한 원근법에 의해 그려졌으며 아치 밖으로는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 이어지고 있고, 아치 바로 위에는 성 모자(母子)가 구름 사이에 떠 있다. 앞에 서 있는 두 사람 중 왼쪽에 흰 수도복을 입고 책을 들고 있는 이는 성 베네딕토이고 오른쪽에서 붉은 옷을 입고 책을 펼쳐 읽고 있는 이는 성 제롬이다. 성 제롬의 발치에 사자를 그린 것은 성인이 사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빼준 후 사자가 평생 성인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성 제롬의 붉은 옷에서 알 수 있듯이 베카푸미는 강렬하며 비현실적인 색채를 구사할 줄 알았던 당대 최고의 화가였다. 작품의 주인공도, 그림을 그린 화가도 둘 다 시에나 사람이고, 작품이 소장된 곳도 시에나의 미술관이니 시에나가 역사적으로 예술적으로 얼마나 풍요로운 도시인지 상상할 수 있겠다. [가톨릭신문, 2009년 6월 21일, 고종희(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www.wga.hu/art/b/beccafum/4stigma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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