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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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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아우구스티노 (Augustine)
축일 5월 2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선교사, 대주교
활동지역 캔터베리(Canterbury)
활동연도 +604/605년
같은이름 아오스딩, 아우구스띠노, 아우구스띠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 오스틴
성인 기본정보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또는 아우구스티노)의 가문이나 청소년 시절 혹은 교육과정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다만 그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 9월 3일)와 친분이 있었고, 로마 첼리오 언덕에 있던 베네딕토회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수도승이었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다. 595년 그는 이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이듬해에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 1세로부터 앵글로색슨족을 복음화시키라는 사명을 받고 40명의 수도자와 함께 영국으로 파견되었다. 역사가인 성 베다(Beda, 5월 25일) 신부에 의하면 그는 이미 영국에 도착하기 전에 주교로 승품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아를(Arles)의 대주교에게 주교품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597년 봄에 프랑크 왕국의 도움으로 영국 켄트(Kent) 왕국 해안가에 있는 타넷 섬(Thanet Is.)에 도착했다. 그는 이미 영국에 진출해 있던 선교사들과 켄트의 왕인 성 에텔베르트(Ethelbert, 2월 24일)의 환영을 받았다.

   당시 영국 교회는 2세기에 복음이 전해진 후 그리스도교가 거의 사라져 다시 선교를 시작해야 할 형편이었다. 영국은 2세기 말 로마 제국 시대에 복음이 전해져 교계제도가 설정되고 314년 프랑스 아를(Arles)에서 열린 교회 회의에 요크(York) · 런던(London) · 링컨(Lincoln)의 주교가 참석할 정도 성장했었다. 그러나 407년 로마군이 철수한 뒤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스코틀랜드(Scotland) 원주민의 후손인 픽트족(Picts), 영국을 침략한 게르만족인 앵글족(Angles) · 색슨족(Saxons) · 주트족(Jutes)에 의해 영국 서부 지역이나 대륙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영국 땅에 일곱 왕국이 형성되면서 이교도에 의해 교회가 파괴되고 성직자들도 추방되어 다시 선교해야 할 지경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노와 동료 선교사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라틴 교회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아일랜드 선교사들도 진출해 선교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아일랜드 교회와 로마 교회의 관습에 많은 차이가 있어서 함께 선교하는 데는 장애가 많았다. 게다가 분열된 왕국 간의 전쟁은 선교 활동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 아우구스티노는 켄트의 수도인 캔터베리에 주교좌를 정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다행히 영국의 여러 왕국이 같은 종족끼리 연합체를 형성하고 그 대표로 켄트 왕국의 성 에텔베르트 왕을 뽑았는데, 그는 갈리아 출신 그리스도교 신자인 베르타(Berta) 공주와 혼인한 상태라 선교사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설교와 활동은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다. 수많은 개종자가 탄생했고 그의 설교와 모범을 보고 성 에텔베르트 왕과 신하들이 597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601년에 교황으로부터 2차 선교단과 전례 용품 · 서적 등을 지원받고 로마에 있던 성인 유해도 모시게 되었다. 그리고 독립된 대교구를 설립하도록 대주교로 승품되어 팔리움(Pallium)을 받았다. 12개의 교구를 지닌 두 개의 관구를 설립하라는 교황의 뜻대로 그는 가장 문명화된 캔터베리에 주교좌성당을 세우고 초대 대주교에 올랐다. 그리고 도시 외곽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수도원을 설립했는데, 이 수도원이 유럽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베네딕토회 수도원이다. 또한 로체스터(Rochester) 교구를 설정하고 성 유스토(Justus, 11월 10일)를 주교로 임명했고, 런던에도 교구를 설립해 성 멜리토(Mellitus, 4월 24일)를 주교로 임명해 색슨족에 대한 복음화를 맡겼다.

   그러면서 성 아우구스티노와 라틴계 선교사들은 앵글로색슨족을 선교하는 데 있어서 켄트 주교들의 도움을 받고자 했으나 그들은 정복자인 앵글로색슨족의 개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일랜드 수도자들에 의해 복음화된 그들은 익숙한 켈트(Celtic) 지방 전례와 관습을 고수해 라틴 전례를 수용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라틴 전례의 책임자라면 켈트 전례의 근거지는 스코틀랜드의 이오나(Iona) 수도원 출신으로 린디스판(Lindisfarne)의 초대 주교인 성 아이다노(Aidanus, 8월 31일)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라틴 전례와 켈트 전례의 일치를 위해 노력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는 후임자로 성 라우렌시오(Laurentius, 2월 2일) 주교를 임명하고 604년 또는 605년 5월 26일 선종하여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수도원에 묻혔다. 그는 캔터베리의 초대 대주교이자 ‘영국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은 사후에 열매를 맺어 664년 휘트비(Whitby) 시노드에서 영국 교회가 로마 전례를 따르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씨앗이 되었다. 오스틴(Austin)으로도 불리는 성 아우구스티노는 오래전부터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옛 “로마 순교록”은 정교회나 영국 성공회와 같은 5월 26일 목록에서 그에 대해 언급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선종 다음 날인 5월 27일을 전례 기념일로 지낸다고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63-65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8권 - '아우구스티노, 캔터베리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1년, 5698-5700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캔터베리의 성아우구스티누스 주교', 서울(성바오로), 2002년, 128-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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