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 피노트는 프랑스의 앙제(Angers) 출신으로 교구사제였다. 그는 한 두 본당의 보좌신부를 거치는 동안에 병자들에 대한 지극한 정성으로 존경받는 사제로 통하였고, 1788년에는 루루 베코네(Louroux-Beconnais) 성당의 주임사제로 활약했는데, 그의 뛰어난 열성과 신심은 많은 영적인 결실을 맺었다. 1790년 루이 16세에 의하여 반포된 소위 '성직자의 시민헌법'은 가톨릭의 체제를 뿌리부터 흔든 악법이었기 때문에 많은 성직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물론 노엘 신부도 끝까지 반대하였다. 그는 앙제 법원에서 2년간의 자격박탈을 강요당하였으나 비밀리에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윽고 방데(Vendee) 지방의 봉기가 어느 정도 성공했을 때 그는 공식적인 활동을 재개하며 항거하기 시작했으나 재차 체포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1926년 10월 21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그는 나탈리스 피노트(Natalis Pinot) 또는 나탈레 피노트(Natale Pinot)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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