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목록

구분 성인명     축일 신분 지역명 검색
요한 로버츠(12.10)

요한 로버츠(12.10)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요한 로버츠 (John Roberts)
축일 12월 1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영국(UK)
활동연도 1577?-1610년
같은이름 로버트,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인 기본정보

   성 요한네스 로버츠(Joannes Roberts, 또는 요한 로버츠)는 1577년경 영국 웨일스 북서부의 산악지역인 스노도니아(Snowdonia)의 귀네드(Gwynedd)에 있는 트로스피니드(Trawsfynydd)라는 작은 마을에서 요한(John)과 안나 로버츠(Anna Roberts)의 아들로 태어났다.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는 웨일스인으로 고대 영국 왕족의 후손이었다. 그는 지역 교회에서 프로테스탄트 신자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어느 나이 많은 수도승에게 교육을 받았는데, 그 수도승은 1537년 헨리 8세(Henry VIII) 왕이 강제로 수도원을 해산하기 전까지는 돌겔리(Dolgellau) 외곽에 있던 치머 수도원(Cymer Abbey)에서 생활했었다. 그 덕분에 성 요한 로버츠는 프로테스탄트 신자지만 가톨릭에 대한 호감을 느끼며 성장했다. 그는 1595년에 옥스퍼드(Oxford)의 성 요한 대학(St. John’s College)에서 수학한 후 런던에 있는 법학원인 퍼니벌스 인(Furnival’s Inn)으로 가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유럽 대륙을 여행하던 중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해 법학과 이전의 신앙을 뒤로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1598년에 그는 에스파냐로 가서 바야돌리드(Valladolid)에 있는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승의 삶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고향인 웨일스의 해안가 산악지역 이름을 따서 메리오네스(Merioneth)의 요한 형제로 불렸다. 그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의 수도원으로 가서 수련기를 마치고 1600년 말에 첫서원을 했다. 이어 나머지 과정을 모두 마친 그는 사제품을 받고 1602년 12월 말 동료와 함께 영국 선교를 위해 출발했다. 영국 정부 스파이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603년 4월 영국에 무사히 입국했다. 그는 또한 에스파냐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속한 영국 수도승들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런던(London)에 도착하여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체포되어 5월 13일 강제로 추방당했다. 그는 프랑스 북부의 두에(Douai)로 갔다가 다시 잉글랜드로 재입국을 시도했다. 그는 런던에서 페스트 희생자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1604년에 네 명의 지원자와 함께 에스파냐를 향해 출항하다가 다시 체포되었다. 다행히 그는 사제 신분이 드러나지 않아 풀려난 후 다시 추방되었다. 하지만 그는 즉시 잉글랜드로 되돌아왔다. 1605년 11월 5일 ‘화약 음모 사건’(Gunpowder Plot)에 연루된 토마스 퍼시(Thomas Percy)의 첫 번째 아내인 퍼시 부인 집을 수색하던 한 판사가 그를 발견하면서 또다시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에 있는 게이트하우스(Gatehouse) 감옥에 갇혀 몇 달 동안 조사를 받고 화약 음모 사건과는 무관함이 밝혀졌지만 1606년 7월 다시 추방되었다. 14개월 정도 두에에 머무는 동안 그는 다양한 경로로 에스파냐의 수도원에 입회한 성 베네딕토회의 영국인 수도승들을 위한 최초의 수도원을 설립했는데, 이것이 성 그레고리오 수도원의 시작이었다.

   성 요한 로버츠는 1607년 10월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그러나 12월에 체포되어 웨스트민스터의 게이트하우스 감옥에 갇혔는데, 몇 달 후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 후 1년 정도 런던에 머물다가 1609년 5월에 또 체포되어 뉴게이트 감옥으로 갔다. 그는 이번에는 처형의 위기에 처했지만, 프랑스 대사가 대신 벌금을 제공해주어 추방형으로 감형되었다. 그는 다시 에스파냐와 두에를 방문했다가 잉글랜드로 돌아왔고, 1610년 12월 2일 어느 집에서 미사를 봉헌하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체포되어 제의를 입은 채 뉴게이트 감옥으로 끌려갔다. 여러 번의 체포와 추방 그리고 재입국과 선교활동을 반복하던 그는 결국 1610년 12월 10일 잉글랜드에서 가톨릭 사제가 미사와 성사를 집전하는 것이 금지된 국법을 어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런던의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복자 토마스 소머스(Thomas Somers) 신부와 함께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런던에서 페스트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열정적으로 사목했던 그는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 사형 집행인이 마지막에 처형자의 심장을 들고 “반역자의 심장을 바라보아라!” 하고 외치면 사람들은 보통 “국왕 만세!”로 응답했는데, 이날은 아무도 응답하지 않고 죽음의 정적만이 흘렀다고 한다.

   성 요한 로버츠 신부의 시복은 1886년 12월 4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선포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한 날인 12월 10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한편 웨일스 지방에서는 5월 4일 외에도 기존의 10월 25일을 ‘웨일스의 6위 순교성인’을 기념하는 별도의 축일로 유지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2월 10일 목록에서 1591년 성 에드문도 제닝스(Edmundus Gennings) 신부를 비롯해 여러 신부와 신자들이 순교하고 나서 19년이 지난 1610년 런던의 타이번에서 성 베네딕토회의 신부인 성 요한 로버츠와 복자 토마스 소머스 신부가 제임스 1세 치하에서 가톨릭 사제직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고 16명의 범죄자와 함께 같은 교수대에서 처형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사진/그림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