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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스토리(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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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요한 스토리 (John Story)
축일 6월 1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평신도, 순교자
활동지역 영국(UK)
활동연도 1504-1571년
같은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인 기본정보

   복자 요한네스 스토리(Joannes Story/Storey, 또는 요한 스토리)는 1504년 영국 잉글랜드 북동부 노섬벌랜드 (Northumberland)에서 아버지 니콜라스(Nicholas)와 어머니 솔즈베리(Salisbury)의 조앤 스토리(Joan Story)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되었고, 옥스퍼드(Oxford)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1535년 그곳 대학에서 민법 강사로 활동했다. 2년 후 그는 나중에 펨브로크 대학(Pembroke College)이 된 브로드게이츠 홀(Broadgates Hall)의 학장이 되었다. 1538년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이듬해에 학장직을 사임하고 런던으로 가서 변호사가 되었고, 조앤 와츠(Joan Watts)라는 여인과 결혼하였다.

   그는 일시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포기하고 국왕의 수장령(Oath of Supremacy)에 서명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1544년 국왕 헨리 8세(Henry VIII)가 복자 요한 스토리가 옥스퍼드 대학의 법학 흠정교수직(Regius Professor of civil law)에 오르는 것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1545년 솔즈베리 의회에 진출하면서 의원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1547년 헨리 8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6세(Edward VI)가 왕위를 계승한 후 1549년부터 영국 의회가 영국 국교회의 예배와 기도 등을 통일하기 위해 제정한 ‘예배 통일법’(Act of Uniformity)에 반대함으로써 3개월간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후 추방되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루뱅(Louvain)으로 가서 대학에서 활동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1553년 에드워드 6세가 요절한 후 헨리 8세와 그의 첫 번째 부인인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 튜더(Mary Tudor, 1553~1558년 재위)가 여왕으로 즉위하자 그해 8월 그는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의 흠정교수직에서 물러나 런던 교구의 상서국장(尙書局長)과 교회법원의 판사로 활동했다. 그리고 메리 여왕의 통치 중에 이단을 기소하는 정부 담당자 중 한 명으로도 활동했다. 1558년 헨리 8세와 앤 불린(Anne Boleyn)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58~1603년 재위) 여왕이 즉위한 후 그는 다시 의회로 돌아갔다. 1560년 5월 20일 그는 영국 국교회의 공적 예배에 참석하기를 거부하고 국교회에 대해 비판한 죄로 런던의 플리트 감옥(Fleet Prison)에 얼마간 갇혔다가 바로 풀려났다.

   1563년 그는 다시 체포되어 서더크(Southwark)의 마셜시(Marshalsea) 감옥에 갇혔으나 다행히 탈출에 성공해 플랑드르(Flandre) 지방으로 피신했다. 그는 그곳에서 당시 가톨릭교회의 보호자를 자처한 에스파냐의 국왕 펠리페 2세(Felipe II)의 연금 수혜자가 되었고, 추방된 가톨릭 신자들을 돕기 위해 왕이 조직한 자선 단체의 활동가로 활약했다. 하지만 1570년 관리들의 속임수에 빠져 체포된 후 런던으로 이송되어 런던탑에 갇혔다. 이는 프랑스 북부 플랑드르 지방으로 도망간 가톨릭 망명자에 대해 더는 에스파냐가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복자 요한 스토리는 1569년 여왕에게 반대하여 일어났던 북부 저항 세력을 지지한 이유 등으로 반역죄로 기소되었고, 1571년 5월 2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6월 1일 런던의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복자 요한 스토리는 1886년 12월 29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6월 1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복자 요한 스토리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1일 목록에서 법학 전문가로 교황에게 충실한 복자 요한 스토리가 가톨릭 신앙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고 영국 런던의 타이번에서 교수형을 당해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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