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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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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펠릭스 (Felix)
축일 1월 1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증거자
활동지역 놀라(Nola)
활동연도 +3/4세기
같은이름 펠리체
성인 기본정보

   성 펠릭스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Napoli) 교외의 놀라에서 시리아 출신 로마 군인이던 헤르미아스(Hermias)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부친이 사망한 후 거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놀라의 주교인 성 막시모(Maximus, 2월 7일)에게 사제품을 받고 그의 보좌로 활동하였다. 250년에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의 박해가 일어났을 때 다행히 성 막시모 주교는 사막으로 피신했으나 그는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혔다. 그런데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가서 주교를 도와주라고 하자 그의 몸을 감고 있던 사슬이 풀리고 감옥 문이 열려 주교에게 갈 수 있었다. 성 펠릭스가 성 막시모 주교를 찾아갔을 때 주교는 추위와 배고픔으로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성 펠릭스는 기적적으로 제철도 아닌데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그 즙으로 성 막시모를 소생시킨 다음 그를 도시로 모셔와 돌보도록 했다. 그 뒤로도 박해자들이 성 펠릭스를 다시 잡으려고 했으나 그의 은신처에 거미가 집을 지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여 무사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성 펠릭스는 6개월 동안 마른 우물 속에 숨어 지내다가 이듬해에 박해가 끝난 뒤에 다시 사제의 직무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곧이어 성 막시모 주교가 선종하자 신자들은 성 펠릭스가 주교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배 사제를 주교품에 올리도록 신자들을 설득하고 박해 중에 몰수당한 재산을 다시 돌려받는 것도 거절하고 약간의 땅을 손수 가꾸며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생활하다가 260년 1월 14일 평화롭게 선종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선종 연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는 순교하지는 않았으나 평생 박해와 고통을 견뎌냈기에 ‘피 흘리지 않은 순교자’로 공경받기도 한다. 성 펠릭스를 기념하여 봉헌된 성당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은 놀라에 있고, 그곳에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5세기 초에 놀라의 주교가 된 성 바울리노(Paulinus, 6월 22일)는 자신이 존경하던 성 펠릭스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지어 성경 내용의 벽화로 내부를 장식하였다. 성 바울리노는 많은 순례자가 성 펠릭스를 순례하고자 찾아왔다고 증언하며 그에 대해 많은 시와 편지를 썼는데, 이것들이 성 펠릭스의 전기를 만드는 기초 자료가 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1월 14일 목록에서 그에 대해 기록하였다. 특히 개정 “로마 순교록”은 놀라의 성 바울리노의 기록에 근거해 박해 중에 감옥에서 극심한 고문을 당했으나 박해가 끝난 후 가난한 삶을 살다가 선종한 ‘굴복하지 않는 신앙의 증거자’였다고 언급하며, 선종 시기를 3세기 또는 4세기로 보았다.♣

참고자료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 펠릭스', 서울(일파소), 2023년, 158-160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1권 - '펠릭스, 놀라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5년, 8903-89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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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펠릭스(1.14 ...] 놀라의 성 펠릭스 주호식 2010/02/20 58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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