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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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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프란치스코 (Francis)
축일 4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은수자, 설립자
활동지역 파올라(Paola)
활동연도 1416-1507년
같은이름 방지거,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성인 기본정보

   성 프란치스쿠스(Franciscus, 또는 프란치스코)는 1416년 3월 27일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 지방 코센차(Cosenza)의 파올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산마르코(San Marco)에서 프란치스코 회원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13살 때에 산마르코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1년 동안 생활하면서 기도와 금욕과 겸손의 삶을 배웠다. 이는 그가 아기였을 때 한쪽 눈에 병이 나서 실명의 위험에 처하자 그의 부모가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10월 4일)에게 전구를 청하며 했던 약속을 이행한 것이었다. 그 후 부모와 함께 로마와 아시시를 순례한 후, 15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영지인 파올라 교외에서 홀로 지내다가 바닷가의 한 동굴에서 6년 동안 기도와 금욕을 실천하며 은거 생활을 전념했다.

   1435년 두 사람이 그를 찾아와 함께 생활하게 되자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코는 작은 건물과 경당을 지어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공동체에 동참하는 이들이 계속 늘면서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했고, 1454년경 코센차 교구의 대주교에게 허락을 받아 새로운 수도원 건물과 성당을 건축했다. 그들의 생활 규칙은 매우 엄격했는데, 극도의 청빈과 금욕을 실천하면서 겸손을 중요하게 여겼다.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코가 설립한 수도회는 1474년 교황 식스토 4세(Sixtus IV)로부터 ‘성 프란치스코의 은수자회’로 설립 허가를 받았고, 그 후 교황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VI)에게 수도회 설립을 승인받으며 그 이름을 ‘가장 작은 이들의 수도회’(Ordo Minimorum, The Order of Minims)로 변경했다. 그는 칼라브리아와 시칠리아(Sicilia)에 수도원을 세웠고, 수녀회와 제3회도 설립했다.

   그의 생활이 거룩하고 엄격했던 만큼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적인 영향 또한 지대했다. 그는 특히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또한 예언의 은사를 받아 1480년 이탈리아 남동부의 오트란토(Otranto)가 튀르키예에게 점령당할 것과 나폴리(Napoli) 왕에 의해 탈환될 것을 예언했다. 그리고 전설에 따르면, 시칠리아에 갈 때 뱃사공이 항해를 거부하자 자신의 망토를 깔고 한쪽 끝을 돛 삼아 동료들과 함께 메시나 해협(Strait of Messina)을 가로질러 항해하기도 했고,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조카를 소생시켜 어머니에게 돌려주기도 했다. 이런 예언의 은사와 여러 기적으로 인해 그의 명성은 프랑스 전역으로까지 퍼져나갔다. 1483년 임종을 준비하던 프랑스의 국왕 루이 11세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꼭 한 번 보기를 청했다. 루이 11세 왕은 성 프란치스코만이 자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비록 온전히 치유되지는 못했지만, 루이 11세 왕은 큰 위로를 받고 만족해하며 임종을 맞았다. 국왕의 아들로 왕위를 이은 샤를 8세는 성 프란치스코를 흠모해 계속 머물러 줄 것을 요청했고, 그의 친구가 되어 프랑스의 여러 곳에 수도원을 지어주었다.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코는 생애의 후반기 25년을 프랑스의 플레시(Plessis) 수도원에서 지냈는데, 마지막 3개월 동안은 투르(Tours)에서 고독하게 지내면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는 파스카 성목요일에 회원들에게 사랑의 실천과 엄격한 생활을 당부한 후, 다음날 총장 대리를 선출하고 영성체를 한 다음 요한 복음의 주님의 수난기를 들으며 1507년 4월 2일 조용히 선종하였다. 그 후 그의 유해는 그가 설립한 수도회의 여러 수도원에 나뉘어 묻혔고, 1519년 5월 1일 교황 레오 10세(Leo 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1943년 3월 27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해상 여행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이는 그가 행한 많은 기적이 바다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2일 목록에서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와 프랑스 플레시에서 활동한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코에 대해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코 증거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463-466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 '프란치스코, 파울라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6년, 9058-9056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파올라의 성프란치스코 은수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83-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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