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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도비코(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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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루도비코 (Louis)
축일 8월 2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 3회원
활동지역 프랑스(France)
활동연도 1214-1270년
같은이름 누수,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성인 기본정보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또는 루도비코)는 프랑스 왕 루이 8세와 카스티야(Castilla)의 블랑쉬(Blanche)의 아들로 1214년 파리(Paris)에서 서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푸아시(Poissy)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1226년 그의 아버지가 서거했을 때 그의 나이는 12세에 불과했으므로 어머니가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아들의 왕권을 노리는 샹파뉴(Champagne)의 티보 4세(Thibaud IV)를 비롯하여 야심 많은 귀족과 대항했고, 어떤 때에는 전쟁도 불사하였다.

   그는 1234년 5월에 프로방스(Provence)의 공작 레이먼드의 딸인 마르가리타(Margarita)와 결혼하여 열한 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들을 훌륭하고 경건하게 교육하였다. 결혼한 해에 그는 왕권을 물려받고 통치자가 되었고, 어머니인 블랑쉬는 고문관으로서 아들을 도왔다. 그는 1242~1243년에 일어난 남프랑스 반란을 진압했고, 잉글랜드(England)의 헨리 3세(Henry III)를 타유부르(Taillebourg) 전투에서 격퇴하고, 프랑스 서부의 푸아투(Poitou)를 손에 넣는 등 국가의 권력을 점점 확대하였다. 1248년 그는 십자군을 지휘하여 출정하였으나 1249년에 이집트 북부의 다미에타(Damietta)에서 포로가 되어 사라센인들의 손에서 곤욕을 치렀다. 그 후 그는 석방되어 이스라엘 성지로 가서 1254년까지 머물다가 어머니의 선종 소식을 듣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플랑드르(Flandre)와의 평화를 이룩하고 리모주(Limoges)와 카오르(Cahors) 등 수많은 지역을 평정하였다.

   성 루도비코는 천성적으로 신심이 깊었고, 또 실제로 이상적인 수도자 생활을 꿈꿨었다. 그래서 그는 정의로운 정치를 펼치며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렸고, 왕으로부터 농부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권리를 옹호하여 성왕(聖王)으로 불렸다. 동시에 그는 예리하고 강인한 군주였으며, 동시에 평화를 사랑하는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불경한 태도나 말을 한 사실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맏아들에게 한 유언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그대로 설명하고 지켜나가도록 부탁할 정도였다. 1270년 그는 재차 십자군을 일으켰다가 8월 25일 튀니스(Tunis)에서 당시 그의 군대를 휩쓸었던 전염병인 이질에 걸려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프랑스로 옮겨져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 성당을 비롯해 여러 곳의 성당에 모셔져 공경을 받고 있다.

   성 루도비코는 한마디로 가장 이상적인 중세의 그리스도인 왕이었다. 그의 통치 기간에 프랑스는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 그의 신심은 스스로 작은 형제회의 3회원이 됨으로써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그는 작은 형제회 제3회의 남자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1297년 교황 보니파시오 8세(Bonifatius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선종 때에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주님, 저는 이제 당신의 집에 들어가렵니다.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하리이다. 당신의 이름에 영광을 드리나이다.” 그리고 오후 3시경에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말을 한 후 숨을 거두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프랑스 왕실의 문장인 백합 문장을 들고 있거나 예루살렘 성지에서 가져온 성물인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들거나 머리에 쓴 모습으로 주로 그려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쓰셨던 가시관은 성 루도비코가 사라센 사람들에게 노예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석방을 위해 많은 도움을 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동로마 황제가 선물한 것이다. 평소 신심이 깊었던 그는 수천 명의 신자와 함께 맨발로 먼 길까지 마중 나와 손수 가시관을 모시고 행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시관과 십자가 보목(寶木) 등을 모시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파리에 생트샤펠(Sainte-Chapelle) 왕실 성당을 1248년에 완공했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8월 25일 목록에서 그에 대해 전해 주었다. 개정 “로마 순교록”은 특히 성 루도비코가 평화로운 시기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수호를 위해 벌어진 전쟁 중에도 변함없는 믿음으로 정의와 가난한 이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으며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도 힘썼다고 했다. 또한 주님께서 쓰신 가시관과 십자가 보목을 모시기 위해 힘쓰고 튀니스 근처에서 전염병에 걸려 선종했다고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루도비코 9세 왕 증거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192-195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4권 - '루도비코',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7년, 2235-2237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루도비코', 서울(성바오로), 2002년, 216-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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