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음악자료실

제목 '청년성가집'출판의 문제점 (2-1)
작성자김종헌 쪽지 캡슐 작성일1999-07-12 조회수2,622 추천수10

연재에 들어가기 전에

 

글쓴이: 김종헌 신부

 

본인은 '청년성가집' 출판의 문제점 (I)에서 수록된 성가들의 음악적인 분석을 통하여

1. 수록된 창작곡이 음악적으로 미숙하다고 했으며 2. 전례용이기 보다 연주를 의식하고 작곡된 노래이다. 그리고 신자들이 부르기에는 어렵다.  3. 교회는 미사 때에 사용할 음악은 전통적인 성가와 현대적인 성가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가르치는데 이 성가집에는 현대적인(?) 혹은 듣기에 따라서는 대중가요 풍의 한 가지 음악 형식만으로 된 것을 수록하여 균형을 잃었다.  4. 가사의 문제점을 다루었다.  

 

먼저 확실히 하고싶은 것은 글의 제목이 말하듯이 이 글은 청년성가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교회의 허가를 받아 출판된 기존 성가집에 대한 분석은 이 글의 주제 밖이고 쓸 기회가 있을 때 꼭 다룰 것이니 자꾸 비교하지 말아 주기 바란다. 그 다음으로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과 본인의 의견을 혼동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은 2,000 년의 역사를 통해 내려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의 3의 경우, 전통적인 성가와 현대적인 성가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이고 이 성가집에서는 이의 균형을 잃었다는 것은 본인의 생각이다.  따라서 교회 문헌을 본인이 잘못 이해하였거나 잘못 적용하였다면 이에 대한 문헌 제시를 통해서 반박할 수 있지만, 그런 논거도 없이 자기의 느낌만으로 반박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마음이 상하는 일도 있겠지만 이런 교회의 가르침 (성가게시판 포함)은 한국 교회에 어쩌면 처음으로 소개되느니 만큼 교회음악을 하려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신자들은 배움의 자세를 가지는 것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번에 쓴 글에 대한 몇몇 반응을 보면서 느낀 점은 우리 신자들이 전례 혹은 미사를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음악적인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며, 특별히 이 성가집의 출판에 관계했던 사람들이나 성가집의 출현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본인의 비판이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여러 반응들을 살펴보았지만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이건 어떤 노래를 미사 중에 사용하면 좋은가 나쁜가 혹은 유행가풍이니 전통 성가니 하면서 글을 이어갈 처지가 아닌 것 같다.

 

여러분에게 소박한 질문 몇 가지를 하고 싶다.  전례(전례는 미사 이외에도 성무일도와 7성사의 거행을 포함한다) 아니 전례란 용어는 너무 신학적인 것 같고 괜히 알아듣기 어려운 듯하니 '미사'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하자 (이하 이 글에서는 미사와 전례를 거의 같이 이해해도 됨).  미사란 무엇인가?  미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기도한다. 누구에게 기도하는가? 무엇을 기도하는가? 우리가 미사 때 무엇으로 기도하는가? 여러 가지 대답이 있겠지만 '기도(문)'와 '성가'로써 기도한다.  아마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은 위의 질문에 대해 신학적인 대답은 아니더라도 '그래 알 것 같아...'  하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만약 우리가 전례 혹은 미사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어설프게 나마 답할 수 있다면 전례에 사용하는 기도나 성가의 내용에 대해서는 토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단, 어떤 형식의 음악 (전통 성가 혹은 현대적인 성가)을 사용하면 좋은가 하는 음악적인 문제는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서로 좋은 것을 찾는 토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미사 전례 때에 사용하는 기도나 성가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이 성가집의 반응에서 보듯 토론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미사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고 하면서도 이 미사에서 사용하는 기도인 전례음악은 단순히 신자들의 모임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이해의 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어떻게 된 것인가? 몇 분의 글에서 그나마 성가가 기도라는 표현을 한 사람은 단 한 분밖에 없었다.  미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를 못하든지 아니면 이왕 만든 노래들이고 책으로 출판하려는 것이니 억지를 부려서라도 미사 때 사용하고 싶다는 것인지 속마음을 알 수가 없다.  실지로 노래의 내용이야 어떻든 성당 안에서 부르면 성가라는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자들이 점점 늘어가는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1. 하느님의 백성은 찬미 공동체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공동으로 모이는 일이 허다하다.  부모의 제사를 위해 가족이 모이고 운동 경기의 관람을 위해 운동장이나 체육관에 모이고, 가수의 공연을 보기 위해 공연장에 모인다. 그러면 누가 교회에 모이는가?  세례받은 신자들이 교회에 모이는 것이 아닌가?  이 대답에도 문제는 있다.  왜냐하면 신자들은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도 모이고 (성서연구), 단체로 기도하기 위해서도 모이며(기도모임),  친목을 위해서도 교회에서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또 우리는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또 단체로 우리 안에 계시는 그분께 언제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고 찬미를 드릴 수 있다.  다시 말한다면 미사 전례에 참석하지 않고서도 하느님께 기도하고 찬미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교회에 모여 신자들은 미사 전례를 거행하는가?  주일 미사 안 가면 대죄가 되고 고백성사를 봐야 하기 때문에 미사에 가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 이유는 바로 미사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파스카의 신비 (인간 구원)를 거행하게 되는데 바로 이 "전례의식이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성교회의 행위인 까닭에, 가장 우월적인 거룩한 행위이며, 그 효과에 있어서 성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도 이와 같은 자리 및 비중을 차지할 수는 없기 때문" (전례헌장 10항) 에 우리는 모이는 것이다.  세례받은 신자들끼리만 모여 하느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 분의 지체인 신자들이 함께(교회가 되어) 하느님께 최고의 예배 행위를 드리기 위해 우리는 미사 때에 모이는 것이다.    물론 전례 행위의 주체는 하느님의 백성인 공동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이름으로 공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하느님께 예배 행위를 드리도록 우리를 모으시는 분 역시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은 교회가 기도하고 노래할 때 언제나 거기에 계신다. 그러기에 감사기도 제3양식에서 "아버지의 백성을 끊임없이 모으시어 해돋이에서 해넘이까지 깨끗한 제물을 드리게 하시나이다"라고 사제는 기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구원사업 (파스카의 신비)의 임무를 교회에 맡기셨고, 당신의 신비체인 교회가 거행하는 전례를 통하여 지금도 그 구원사업을 계속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인간을 성화시키는 이 거룩한 전례를 수행하는 데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당신 교회와 함께 계신다.  그러기에 공의회 문헌은 전례를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수행으로 간주한다" (전례헌장 7항)고 하는 것이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통용되던 천주교 요리문답 제1조에서는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느뇨?" 하고 물으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났느니라" 고 대답한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 헌장 1항의 전례의 목적이나,  112조에서 말하는 전례음악의 목적이, '하느님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의 성화를 위한 것'이라고 하여 표현만 약간 다를 뿐 똑 같은 대답을 들려주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간택된 백성, 왕다운 사제, 거룩한 국민,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 (베드로 전 2, 9; 2, 4-5 참조) 이 된다.  따라서 우리들은 당연히 전례에 참여하여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전례 헌장 14항).  또 우리는 이런 경신행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이 거룩해지는데 이것은 전례 행위에서 나오는 은혜 때문이다. 우리가 거룩하고 되려고 전례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거룩해 짐으로써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기 위해 모이고 이 행위를 통해 우리가 거룩해 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례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선물에 대해 우리 자신을 열고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거룩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성가의 내용은 찬미와 감사

신자들이 전례에 함께 모이는 목적은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도록 교육하고 연구하며, 우리 신자들 간의 사랑과 친목을 증진시키고, 어려운 친구를 돕는 등 이웃에게 자선을 행하고, 사회정의를 말하고, 민중을 계몽시키기 위해서거나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등등의 우리 자신의 일들을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해야 한다. 많은 분들이 여기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것 같다.  신자들 간의 사랑과 화목을 증진시키는 등, 위에 지적한 여러 가지 일들은 전례의 결과로 생길 수 있는 것이지 이것을 위해, 이런 것을 목적으로 우리가 미사에 모이는 것은 아니다.  신자들은 성령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즉 찬미와 감사를 드리기 위해 모인다.  그래서 전례에 모인 신자 공동체는 바로 찬미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 찬미 공동체는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되고 그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기도와 성가를 부른다.  그런데 이 기도와 성가의 내용은 모든 하느님의 백성을 대신하여 전례에 참석한 회중들이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기억함으로써 생기는 찬미와 감사로 특징지어진다. 그리고 이 전례적인 기도는 교회의 공적인 규정을 따르게 되어 있다 (교회법 834, 2항).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례 안에 사용하는 모든 기도와 성가의 내용은 찬미와 감사이며 가톨릭 교회의 교의(敎義)와 어긋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거듭 말한다. 기도의 내용은 찬미와 감사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전례 때에 사용하는 성가를 단순히 노래로 생각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미사 중에 어떤 내용의 가사를 가진 노래든지 사용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으로 바치는 기도라는 것을 안다면 아무런 가사의 노래나 전례 안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이런 전례 때 사용하는 음악은 그 내용에 있어서나 형식에 있어 어떤 제약을 받게 마련인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유는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 공동체가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전례에 사용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행동, 동작, 기도, 노래나 성가의 가사는 감사와 찬미의 내용을 담아야 하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우리의 찬미와 감사가 이루어지는 미사 구조의 각 부분이 요구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약을 받기 마련이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루겠다)

 

 

아래에 소개하는 詩는 이 성가집의 '일반성가'에 분류되어 수록된 몇 개의 가사이다. 이 성가집은 일반성가, 창미사곡, 찬양곡 및 축가로 나누어 노래를 분류하고있는 만큼 아래의 詩는 미사 때에 사용하기 위하여 쓴 것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크게 소리내어 읽어보시면 어떨까 싶다.

 

       제목: 이유

 

           생각해 봐 그것은 시작이야

           우리가 아파하던 그것이야.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또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세상 우리를 갈라놓은 세상 속에서 싸워야 해

           찾아 줘 내 마음을

           사랑 우리가 알고있는 그것이야.

 

       제목: 함께 가요

 

           함께 가요 오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와 함께라면 이 세상이 행복해요

 

           (중략)

 

           그대여 삶이 힘드나요. 혼자라는 생각인가요

           당신 곁에 내가 있잖아요.

           그대여 내가 힘이 들 때 그대에게 말할께요

           그렇게 서로 의지할 수 있도록 기도해요

 

 

       제목: 우리 안에 사랑이

 

           그 동안 우리 서로 너무나 떨어져

           때로는 원망 속에 살았지만

           이제는 우리함께 서로의 아픔달래며 위로하는 사랑을 해요.

 

           (중략)

 

           우리 이제 노래해요. 서로에게 들려주는 사랑 노래를

           우리 이제 노래해요. 우리 안에 사랑이 넘치도록.

 

 

    N.B. '청년성가집'출판의 (2-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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