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산책 구약] 호세아서, 요엘서
사랑과 재앙의 체험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다 예언자란 말씀뿐 아니라 삶으로 하느님을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사랑의 예언자’ 호세아는 이를 훌륭하게 보여줍니다. 호세아서는 크게 호세아의 혼인 생활을 전하는 첫 부분(호세 1-3장)과 그 밖의 신탁(호세 4-14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 두 부분은 문학적 · 신학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호세아 예언자의 삶은 평탄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기원전 8세기 후반기에 북왕국에서 활동한 그는, 나라가 타락하고 정의가 무너지는 상황을 겪었고(호세 4,1-2; 6,10 등), 신앙을 바로 세우고자 무척 애썼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공하지 못 했고, 게다가 아내의 불륜이라는 개인적 아픔도 겪어야 했습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메르는 그냥 부정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바알 신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신전 창녀였습니다. 타인에게는 풍요와 매력의 상징이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남편에게는 절망적 존재였던 것이지요. 이런 호세아에게 하느님은 인간적 감정을 초월하는 해결책을 제시하십니다. “너는 … 간음을 저지르는 여자를 사랑해 주어라.”(호세 3,1; 1,2 참조) 호세아를 통해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너무도 대담하고도 지극하여, 인간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사랑의 하느님은 우리 ‘철없는 백성’(호세 4,14)을 조건 없이,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호세 14,5) 하느님은 우리 인간의 죄에 분노와 절망과 폭력으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호세아서를 통해 우리는 한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엘서는 호세아보다 훨씬 후대의 예언서이고 분량도 짧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재앙이라는 훨씬 큰 스케일을 다루며, ‘주님의 날’을 보여주는 중요한 책입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풀무치, 메뚜기, 누리 황충 등이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요엘 1,4), 큰 가뭄까지 닥쳤습니다.(요엘 1,10) 이런 거듭된 자연 재앙의 결과로 ‘정녕 사람들에게서 기쁨이 말라 버렸’(요엘 1,12)고 짐승들도 신음합니다.(요엘 1,18) 절망과 비탄 속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가 되어(요엘 2,16) 깊이 참회합니다.(요엘 2,12) 그들의 정성이 통했는지,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어(요엘 2,18) 결국 재난을 멈추십니다. 이제 땅과 사람과 짐승은 새 기쁨을 노래합니다.(요엘 2,21-24) 요엘서의 백미는 재앙의 체험을 통해 ‘주님의 날’을 깊이 성찰한다는 점입니다. 그날은 끔찍한 재앙처럼 너무도 무서운 날이며, 예고 없이 닥칠 것입니다.(요엘 2,11) 하지만 깊이 참회하면 모두 구원받을 것입니다.(요엘 3,5) 여기서 나아가, 예언자는 지금부터 이미 그 참회를 시작해야 한다고, 곧 ‘주님의 날’은 이미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종말론적 성찰에 이릅니다. 요엘서는 거듭된 인재(人災)를 깊이 반성하지 못하고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 합니다. [2014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교황주일) 서울주보 4면, 주원준 박사(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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