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카이사리아 필리피 카이사리아 필리피(Caesareaphilippi)는 갈릴래아 호수 북쪽 60km 지점에 있다. 2,814m의 헤르몬 산 남쪽 기슭이다. 인근에는 초당 2만 리터 지하수가 솟는 동굴이 있다. 지진으로 동굴 아래 지하수가 흘러나온 것이라 한다. 요르단 강 수원(水原)중의 하나인 바니아스 샘이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요르단 강은 갈릴래아 호수를 지나 사해로 흘러든다. 카이사리아 필리피를 아랍인들은 바니아스(Banias)라 불렀다. 그리스어 파네아스(Paneas)가 변형된 것이다. 파네아스로 불렸던 것은 희랍인들이 이곳에 판신(God Pan)을 위한 신전을 지었기 때문이다. 판신은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목축과 다산(多産)의 신이다. 사람 얼굴에 하체는 종종 염소 모습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 행정상 지명도 바니아스다.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성경에만 등장하는 이름이 되었다. 구약시대의 이름은 바알 가드였다(여호 11,17). BC 1세기 말, 로마는 헤로데 대왕에게 바니아스 지역을 맡긴다. 헤로데는 감사의 뜻으로 로마신전을 짓고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바쳤다. 헤로데가 죽자 그의 아들 필리포스가 통치하게된다(루카 3.1). 갈릴래아를 통치하던 안티파스의 이복동생이며 헤로디아의 사위다. 그는 도시를 정비하고 이름을 바꾼다. 지중해 연안에 건설된 카이사리아와 구별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넣어 카이사리아 필리피라 한 것이다. 물론 마케도니아 필리피와는 완전히 다른 도시다. AD 54년 황제가 된 네로는 아그리파 2세에게 갈릴래아 지역 전체와 요르단 강 동쪽 데카폴리스 지방을 준다. 필리포스와 안티파스가 다스리던 땅이었다. 아그리파는 감사의 표시로 바니아스에 왕궁을 짓고 로마식으로 도시를 꾸몄다. 그리곤 이름을 네로아니스(Neroanis)라 고쳤다. 네로가 죽자 본 이름으로 돌아왔지만 아그리파가 지은 왕궁의 잔해는 지금도 남아 있다.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일찍부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형성된 곳이었다. 로마가 유다인 박해를 강화하자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이곳으로 숨어들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이곳 카이사리아 필리피에서 제자들의 신앙을 점검하신 적이 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던 것이다(마태 16,13). 하느님의 살아계신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당시 이곳으로 피난 왔던 초기교회 신자들의 신앙고백이었을 것이다. 시리아 땅이었지만 1967년 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이 장악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4년 9월 21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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