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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34: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예레 1,10)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09 조회수3,772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34)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예레 1,10)


헌 계약은 깨고 새 계약 맺으려는 하느님



미켈란젤로 작, 예레미야, 시스티나 성당 천정화.


예루살렘의 멸망을 40년 앞두고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십니다. 무엇을 하라고 그를 부르실까요? 멸망은 왜 선포하라고 하실까요?

예레미야의 활동은 회개를 설교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므나쎄와 아몬이 통치하던 시대에 만연했던 우상 숭배로,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신명 6,5)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했고, 신랑이신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첫 사랑을 저버렸기에 재앙이 닥칩니다(예레 2,2-3). 이 때문에 예레미야는 멸망을 예고합니다.

요나 생각이 납니다. 멸망을 선포하면 멸망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회개하고 돌아와 멸망을 피하게 하려고 심판을 선고하는 것일까요? 예레미야의 경우, 처음에는 회개의 여지가 있습니다. 예레미야서 36장에서는 예레미야가 바룩을 시켜 자신의 말을 기록하게 하는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행여 유다 집안이 내가 그들에게 온갖 재앙을 내리기로 하였다는 말을 듣고 저마다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나도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겠다”(36,6)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점까지, 하느님은 당신 백성이 마음을 돌이켜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어느 순간까지입니다. 예레미야서 안에는 어떤 분기점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기원전 604년의 카르케미스 전투였던 것 같습니다. 바빌론과 이집트가 전쟁하여 바빌론이 승리를 거두면서, 국제 정세가 명확해집니다. 이제부터 예레미야는 임박한 파멸만을 예고합니다.

예레미야서 18-19장에는 비슷한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18장에서 예레미야는 옹기장이 집에 갑니다. 옹기장이는 그릇을 빚으면서, 모양이 마음에 들게 나오지 않으면 반죽을 다시 빚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변화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19장에서 예레미야는 사람들 앞에서 질그릇을 깨뜨립니다. 이미 구워진 질그릇은 다시 빚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옹기장이 손에 든 반죽으로 비유되는 시기는 이제 다 지나갔고, 이제는 이미 질그릇이 구워졌습니다. 다시 빚을 수는 없습니다. 그대로 쓰거나, 아니면 깨뜨리거나. 하느님은 깨뜨리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에게도, 이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당신께서 들어 주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빌론에 굴복하는 것만이 국가의 완전한 멸망을 피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은 멸망할 수 없다고 외치는 거짓 예언자들에게 맞서, 유다가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고 그 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은 멸망하게 되리라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처음부터(예레 1장)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포한 말씀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심판을 선포하시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지 지켜보고 계십니다(1,12). 하지만 그 말씀이 그렇게 금방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조롱하고 박해합니다. 멸망을 선포해 놓았는데 멸망은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가 거짓 예언자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야 할까요? 그런데 그 말씀이 이루어지려면 예루살렘이 멸망해야 합니다. 그가 그 멸망을 바랐을까요? 백성이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을 때 예레미야는 이러한 갈등에 빠집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거부를 당할 때 예언자도 거부를 당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예레미야는 바룩에게 그의 말을 받아 적게 했습니다(예레 36장). 바룩이 그 두루마리를 들고 나가 사람들 앞에서 읽고, 그 두루마리는 여호야킴에게까지 전해집니다. 하지만 여호야킴은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여후디가 서너 단을 읽을 때마다, 임금은 서기관의 칼로 그것을 베어 화롯불에 던졌다”(36,23). 바룩이 받아 적은 두루마리는 그렇게 사라집니다. 유다의 임금이 하느님의 말씀을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룩이 예레미야에게 돌아왔을 때, 예레미야는 그에게 다시 말씀을 받아 적게 합니다. 불타 없어진 두루마리 대신 또 하나의 두루마리를 만들게 하고,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말씀은 보존됩니다. 예루살렘이 불에 탄 뒤에도, 예레미야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지금까지도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의 손으로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이 두루마리의 모습은 예레미야를 닮았습니다. 두루마리가 불태워질 때 예레미야도 박해를 받습니다. 그것 역시 그의 예언자 소명의 일부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거부당할 때, 예언자의 몫은 그 말씀과 함께 거부를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서가 심판과 파멸만을 선포하고 끝나지는 않습니다.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는” 것만이 아니라 “세우고 심는 것” 역시 그의 사명이었습니다(1,10 참조). 특히 예레미야서 31장 31-34절에서는 하느님께서 새 계약을 약속하십니다. “뽑고 허무는” 것은 “세우고 심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불충했고,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맺었던 계약을 깨뜨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 사람들 마음 안에 법을 새겨 주시며 그들과 새 계약을 맺어 주실 것입니다. 그 계약의 주도권은 온전히 하느님께 있어, 다시는 깨질 수 없습니다. 그 계약은 다른 어떤 조건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께서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31,34)는 것을 기초로 맺어지고 지켜집니다. 죄로 멸망한 이스라엘에게 용서를 베푸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시 하느님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멸망은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8월 9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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