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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56: 내 아들아, 아버지의 교훈을 들어라(잠언 1,8)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30 조회수4,740 추천수2

[안소근 수녀와 함께 떠나는 구약 여행] (56) “내 아들아, 아버지의 교훈을 들어라”(잠언 1,8)


하느님 지혜로 이끄는 성공 비결서, 잠언



루카 조르다노 작, ‘솔로몬의 꿈’, 1693년, 스페인 마드리드미술관 소장.


고전적 지혜. 구약 성경의 지혜 문학 가운데 가장 오래된 책인 「잠언」은 대대로 전해진 오랜 가르침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가르침들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의 잠언집을 한 사람이 수집한 것도 아니지만, 한 사람이 모았다 해도 잠언들은 어느 한순간에 쓴 글들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가르침들입니다. 속담이나 격언들에 대해서 처음 그 말을 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잠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언 1장 1절에서는 “이스라엘 임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막상 뒷부분으로 가면 “현인들의 말씀”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부분도 있고(22,17; 24,23), “유다 임금 히즈키야의 신하들이 수집한 것”(25,1)으로 되어 있는 부분도 있으며, 심지어 외국인의 이름으로 된 “마싸 사람 야케의 아들 아구르의 말”(30,1)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책 전체의 표제를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하는 것은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지혜를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외에도 「코헬렛」과 「지혜서」가 솔로몬을 저자로 내세우고 있고, 「아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들 가운데 실제로 솔로몬이 쓴 책은 없습니다. (잠언의 경우 혹시 정말 솔로몬 시대의 잠언이 여기에까지 전해진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다윗이 처음 왕조를 세우고 영토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정하는 등의 일들에 바빴다면 솔로몬 시대는 이제 어느 정도 틀이 잡힌 나라에서 문화와 경제가 발전한 시대였기에, 그리고 솔로몬 자신도 지혜로운 사람으로 유명했기에 이 책들이 솔로몬의 권위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잠언의 내용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인생의 지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내용이 다양하다 보니 좀더 세속적이어서 “인생의 성공 비결”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 겸손한 사람과 오만한 사람 등을 대비시키면서 바른 인생길을 알려주는 가르침들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들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인과응보’의 원칙입니다. 잠언은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원칙을 믿는 고전적인 지혜를 대변합니다. “착한 이는 주님에게서 총애를 받고 교활한 자는 단죄를 받는다”(잠언 12,2). 이와 유사한 잠언들이 매우 많습니다. 흥부 놀부식의 가르침들입니다. 더구나 그 복과 벌은 모두 현세에서 이루어집니다. 초기의 지혜 문학에서는 아직 내세에 대한 희망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습니까? 더구나 현세에서, 그 원칙이 정확하게 성립됩니까? 꼭 그렇지는 않지요. 욥이 이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욥은 바로 잠언에 표현되어 있는 전통적인 가르침이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고, 그래서 지혜 문학에서 잠언보다 더 늦은 시기의 단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잠언의 저자라고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제비는 옷 폭에 던져지지만 결정은 온전히 주님에게서만 온다”(잠언 16,33). 그러나 그가 역설하려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질서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그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기 때문에 세상은 혼돈과 무질서일 수 없고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이 끝까지 잘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잠언의 저자를 보고 너무 순진하고 현실을 모른다고 말할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제멋대로 굴러가게 내맡겨두지 않으시고 자연 질서와 이 세상의 정의를 지켜가시는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삶이 가능할까요.

잠언의 신앙은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과도 같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라도, 발밑에 땅이 있다는 믿음이 우리의 발걸음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바른 삶을 가르치려 할 때에 그러하듯이 잠언의 저자는 지혜의 스승으로서 아직 미숙한 그의 제자들에게 이러한 원칙에 대한 믿음을 가르칩니다. 때로는 열심히 노력한 끝에 실망을 겪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선과 악에 대한 갚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라고 권고합니다. 속임수와 편법으로 성공하려 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며 올바르게 행동하여 후회 없는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1-9장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지혜’라는 여인의 초대와 ‘우둔함’이라는 여자의 초대를 제시하면서 선택을 촉구합니다. 지혜는 번잡한 길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부르며 초대하며, 사람들에게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잠언 9,5)라고 초대합니다. 10장부터 이어지는 지혜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지혜는, 임금들이 세상을 잘 통치하는 것도, 하느님께서 세상을 질서 있게 창조하고 섭리하시는 것도 바로 그 지혜를 통해서라고 말합니다. 지혜는 하느님께 속하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로서 이 세상을 만드셨으니, 그 지혜의 길을 따라야 생명에 이르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이런 전제들이 앞에 붙어 있음으로써, 단순한 인생 성공 비결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마저도 신앙생활의 가르침으로 변모됩니다. 축적된 인생의 경험만을 바탕으로 처세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잠언의 첫 부분에 나오는 지혜의 초대는 잠언의 다양한 가르침들이 인간이 생명과 행복에 이르기 위하여 하느님의 뜻을 따라 걷도록 인도해 주는 지침임을 제시해 줍니다.

[평화신문, 2016년 1월 31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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