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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복음 이해하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4-26 조회수13,294 추천수2

요한복음 이해하기 (1)

 

 

우리 교구는 2016년 한 해를 “말씀과 성사 안에서 자비를 실천하는 해”라는 사목지표에 따라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삶에서 실천하는 내적 힘’(2016년도 교구장 사목교서)을 길러가는 데에 전 교구의 공동체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말씀

 

첫 신자들의 공동체는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사도 2,42)을 통해서 친교와 일치를 이루었다. 초기 교회의 빵 나눔은 그리스도께서 수난 전날 제정하신 성찬례를 의미한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공동체에 보내는 편지에서 말한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7)

 

수천 년이 지난 현재의 교회에서도 신자들은 성찬례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공동체의 형제·자매들과 친교와 일치를 이루고 있다.

 

성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공동체는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도 그리스도와 만나고, 구성원들 간의 친교와 일치를 이룬다. 왜냐하면 말씀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성체와 성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다른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동체가 함께 성경을 읽고, 쓰고, 공부하는 것은 개인적인 신앙성숙뿐 아니라 구성원들의 친교와 일치를 통한 공동체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신앙의 보호를 위한 성경의 올바른 이해

 

요즈음 교회 안에는 성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성당과 교육회관 등지에서 많은 신자들이 성경을 공부하는 모습이 이를 반영한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높은 관심을 이용하여, 잘못된 성경해석으로 신자들을 위협하는 이단들도 우리 주변에서 자주 발견된다. 이러한 위협은 신자들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일상의 삶, 한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기도 한다. 더 나아가 개인을 넘어 신앙공동체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이러한 위험들로부터 우리의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우리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때, 성경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으며 그릇된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교구 공동체가 2016년 요한복음의 해를 보내며 함께 요한복음을 읽고, 쓰고, 공부하면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며, 우리의 신앙을 보호하고 공동체의 성장을 이루길 기도한다. [2016년 4월 3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대전주보 3면, 대전교구 사목기획국]

 

 

요한복음 이해하기 (2)

 

 

성경은 성령의 감도를 받아쓴 책이라고 한다. 이 말은 성경의 원저자는 하느님이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원저자가 하느님일지라도 본문마다 쓰여진 시기, 장소, 환경, 목적, 저자 등에 따라 신학이나 표현양식 등이 특징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원저자인 하느님께서 진리를 쓰시지만 다양한 사람을 성경집필의 도구로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글씨를 쓰더라도 종이의 재질이나 볼펜의 색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요한복음의 해를 보내며 요한복음이 갖는 다양한 특징들을 알아보는 것은 더 올바르고 깊은 묵상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영적 복음서

 

모든 복음이 성령의 감도로 쓰여진 말씀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공관복음서들을 이야기할 때와는 달리 요한복음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영적인 복음서라고 강조하여 말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요한복음을 성령의 복음, 즉 정신적 · 영적 복음이라고 불렀다. 공관복음서들의 복음사가들이 사실에 관한 것, 즉 예수님의 행적이나 가르침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사실들 안에 담겨 있는 깊은 의미, 즉 영적인 부분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을 묵시록의 네 마리 동물들 가운데 ‘독수리’에 비유하는 이유도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서들에 비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저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이나 가르침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은 의미,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차원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무엇일까?

 

요한복음이 담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차원은 요한복음의 목적에 부합하는 특징이다. 요한복음의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0)라고 본문에 직접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한낱 허울에 불과할 뿐이라는 영지주의적 이단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 즉 말씀이 사람이 되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다. 요한복음이 저술되던 시기의 환경은 영지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이단설이 심각한 위험을 야기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 이단설에 대항하여 공관복음들이 다루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 가르침 등이 담고 있는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의미를 밝히기 위해 집필한 것으로 본다. [2016년 4월 10일 부활 제3주일 대전주보 3면, 대전교구 사목기획국]

 

 

요한복음 이해하기 (3)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복음의 저자에 관하여 복음서 안에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없다. 그런데 복음서에 따르면 저자는 목격증인이며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제자가 ‘요한복음’이라는 복음서의 이름대로 사도요한과 동일 인물인지는 복음서의 내용만으로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복음서가 사랑받는 제자의 목격증언에 바탕을 둔 기록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제자는 예수님의 사건과 말씀을 상기하고 믿으면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증언한 본래 전승자이며, 그(사랑받는 제자)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복음서(1장~20장)를 엮었을 것이고, 후대에 또 다른 제자가 부록(21장)을 덧붙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완성된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의 제자들 혹은 공동체에 의해 사도적 전승을 따른 정경으로 재확인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요한복음에 담긴 저자의 관심

 

요한복음의 저자는 왜 자신을 밝히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가 복음서를 저술한 목적대로 복음서를 읽는 이들의 관심이 저자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께 집중되어야 하고 또 그분이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믿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요한복음의 저술 목적이 예수님을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것인 만큼 저자가 말하는 ‘믿음’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메시아의 사명을 수행하시는 예수님과 관련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내주신 외아들, 즉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이미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의 삶은 마치고 미래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주어진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저자는 복음서 전체를 통해 그 믿음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요한 4,1~42)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부르는 칭호를 통해 믿음의 성장을 보여준다. 사마리아 여인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유다인’으로 칭하지만 점층적으로 ‘선생님’, ‘예언자’, ‘그리스도’ 그리고 마침내는 사마리아 여인뿐 아니라 그 여인의 증언을 통해 사마리아인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며 ‘세상의 구원자’라고 고백하고 있다. 믿음의 성장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그가 ‘믿음’이라는 명사를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는 반면 ‘믿다’라는 동사를 98차례나 사용하였다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고정된 명사와 대조적으로 동사는 움직임이 있는 역동성을 담고 있다. 저자가 역동성을 가진 ‘믿다’라는 동사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점차 성장하는 믿음의 역동성이었을 것이다. [2016년 4월 17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대전주보 3면, 대전교구 사목기획국]

 

 

요한복음 이해하기 (4)

 

 

공관복음서들과의 관계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서에는 직접적으로 복음서를 작성한 목적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 세 복음서도 근본적으로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분을 믿음으로서 생명을 얻게 하려는 목적으로 집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관복음들과 달리 요한복음은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인상과 분위기, 짜임새를 갖고 있다. 초대교회에서도 요한복음을 영적복음이라 하여 공관복음들과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일치점과 차이점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예수님의 공생활 과정과 기간

 

공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먼저 갈릴래아에서 머무르시다가 유다 지방으로 가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잠깐 머무르시다가 수난과 죽음, 부활하시는 것으로 끝난다. 이와 달리 요한복음에서는 여러 지방으로 자주 옮겨 다니시고, 유다 지방 특히 예루살렘에 오래 머무르신다. 그리고 공관 복음에서는 공생활 중에 파스카 축일을 한 번 지내는 것으로 나오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이 축일을 여러 차례, 즉 여러 해 지내신 것으로 언급된다.(요한 2,13; 5,1; 7,10; 12,12 참조) 이는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이 적어도 2-3년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주 활동 지방이 갈릴래아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주 활동무대가 예루살렘인 것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이다.

 

② 문체와 구성방식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여러 가지 짧은 이야기를 한데 모아 놓거나 간단한 말씀이 곁들여진 기적이야기로 된 작은 단락들이 주를 이룬다. 반면에 요한복음은 예수님과 관련된 사건들과 그분이 일으키시는 표징들을 선별해서 대담이나 설교의 방식으로 길게 다루고 있다.

 

③ 기적에 대한 보도

 

요한복음은 공관복음들이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자료를 독자적으로 선택할 뿐만 아니라 공관복음들 안에는 없는 기적들을 전해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공관복음들과 구분된다.

 

세례자요한의 활동과 예수님의 세례, 첫 제자들의 소명, 성전정화, 고관 아들의 치유, 중풍병자와 눈먼 이를 고쳐주신 기적, 호숫가에서 빵을 많게 하시고 물 위를 걸으신 기적,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논쟁, 베타니아에서 한 여자가 예수님께 향유를 발라드린 일화, 수난과 부활을 둘러싼 전개 등은 공관복음들과 공통으로 다루고 있는 일화이다.

 

그러나 공관복음에는 등장하지만 요한복음에는 등장하지 않는 사화들도 있다. 광야의 유혹, 거룩한 변모, 성찬례 제정, 겟세마니에서의 고통 등 공관복음들이 다루고 있는 여러 가지 기적이야기들을 요한복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에 공관복음에 없는 새로운 행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가나 혼인 잔치, 니코데모와의 대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 라자로의 부활과 뒷이야기,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일 등은 요한복음이 독자적으로 다루고 있는 예수님의 일화이다. [2016년 4월 24일 부활 제5주일 대전주보 3면, 대전교구 사목기획국]

 

 

요한복음 이해하기 (5)

 

 

요한복음과 공관복음들의 관계에 관하여 여러 가지 연구 이론들이 있는데 오늘날 설득력을 얻고 있는 연구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공관복음서의 자료들을 참조했지만 그 자료들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자신만의 방식을 취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독자적인 전승 자료들과 묵상들을 첨가하면서 새롭게 편집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그러한 자료들을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보다 더 큰 자신감을 갖고 자유롭게 서술한다. 이 자신감과 자유로움이란 예수님에게 이루어지는 구원 사건들을 일어난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그것의 영적의미까지도 깊이 있게 표현해 내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신학

요한복음의 저자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조건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과 통교를 이루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구원을 가져다주는 사건들의 깊은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저자의 관심은 오직 그리스도께만 집중된다. 그럼에도 요한복음의 독자들은 복음 안에서 다양한 신학적 주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① 그리스도론

구약시대부터 예고된 메시아로서의 ‘그리스도’는 요한복음에서 신앙 고백의 형식으로 여러 번 언급된다. 또한 바오로 서간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의 고유한 호칭으로 언급되기도 하는가 하면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메시아라는 의미의 호칭 ‘하느님의 아들’, ‘아드님’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로써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이야말로 오시기로 약속된 구세주시라는 것을 선포하면서 그분 안에서 구약의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② 구원론

요한복음 집필의 최대 관심인 ‘그리스도론’은 ‘구원론’과 직결된다. 요한복음에서 ‘세상’은 죽음, 어둠, 육(肉) 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며, 구원되어야 할 상태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파견되어 오심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비구원의 상태인 세상으로부터 구원된다. 인간은 이 세상에 속하지만, 그분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③ 종말론

“지금이 바로 그때다.”(요한4,23; 5, 25ㄷ)라는 말은 종말의 현재성이 강조된 말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종말론을 두고 ‘현재적 종말론’ 또는 ‘실현된 종말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동시에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러한 요한복음 특유의 종말론은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르타에게 하신 말씀 안에 요약되어 나타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 25-26) 안에서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것은 ‘믿음’이다.

그분을 믿고 그분과 함께 살아간다면 현재의 삶에서도 부활과 생명을 살 수 있다. 그러나 그 삶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향한 미래지향적인 것이기 때문에 미완성의 지평 위에 놓여 있다. [2016년 5월 15일 성령 강림 대축일 대전주보 3면, 대전교구 사목기획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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