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야기] 포도원지기
태양에 그을려 가뭇해진 포도원지기 소녀 - 이스라엘의 포도원 전경. 출처 위키미디어. 필자가 이스라엘에서 유다인과 아랍인을 벗 삼아 산 세월은 십수 년이다. 지금은 어떤 자리에서 중동인을 만나면 그 특유의 외모와 습성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이스라엘인들과 어울려 지내는 동안 그들에게 묻어 있을 2000년 전 예수님의 모습도 숱하게 상상해보았다. 까만 눈동자에 곱슬곱슬한 머리, 태양에 그을린 고동색 피부. 가무잡잡한 내 이웃들을 볼 때마다 아가서의 1장 5-6절이 떠올라 웃음이 나기도 했다. “예루살렘 아가씨들이여 나 비록 가뭇하지만 어여쁘답니다, 케다르의 천막처럼 솔로몬의 휘장처럼. 내가 가무잡잡하다고 빤히 보지 말아요. 햇볕에 그을렸을 뿐이니까요.” 검게 탔다고 덜 아름다운 건 아니라는 한 소녀의 항변이다. 중동의 태양은 정말 지독해서, 오래 노출되면 꼭 숯덩이가 묻은 듯 시커멓게 된다. 피부가 희다 못해 창백한 서양인들은 적갈색 피부가 멋지다고 생각하고 또 일부러 피부를 태우기도 하지만, 피부가 까만 사람은 흰 피부를 동경하는 법이다. 소녀가 가뭇가뭇해진 건 포도원에서 오래 일한 탓이다. 오라비들이 소녀에게 포도원지기 임무를 맡긴 바람에, 정작 자기 포도원은 돌보지 못했다(아가 1,6). 그렇다고 소녀에게 포도밭이 따로 있었다는 건 아니다. 오빠들이 강제 노동을 시킨 것도 아니었다. 가족의 생업을 돕느라 제 몸 가꿀 겨를이 없었다는 뜻이다. 성경은 여인의 몸을 종종 농장이나 밭에 빗댄다. 이 소녀도 아가에서 과일나무 정원에 빗대어진다(4,12-13). 이사야서 5장 7절은 이스라엘 백성을 주님의 포도밭에 비유했다. 자식 낳는 여인과 열매 맺는 농장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소녀는 자기가 봐도 까맸는지 제 피부를 케다르의 천막, 솔로몬의 휘장에 견주며 과장한다. 둘 다 검은 염소 털로 만든 거라 흑진주를 떠올리게 하는 색이다. 케다르는 어원도 ‘검다’라는 뜻을 지녔다. 케다르인들 피부색뿐 아니라, 그들이 사는 텐트(예레 49,29; 시편 120,5 등 참조)도 검었기 때문이다. 케다르는 아라비아 부족들 가운데 하나였는데(에제 27,21 참조), 성경에는 이스마엘의 후손(창세 25,13; 1역대 1,29)으로 나온다. 에돔 땅 동편에 있는 광야에 살았으므로 이스라엘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활 솜씨가 특히 뛰어난 민족이었던 듯하다(이사 21,16-17 참조). 아라비아 부족들은 예부터 방목에 종사해왔다. 양이나 염소를 많이 키웠기에 염소 털로 텐트를 짜곤 했다. 이집트 탈출 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주님께 성막을 지어 봉헌했을 때도, 성막 위에 씌울 천막을 검은 염소 털로 만들었다(탈출 26,7). - 무궁화 꽃 모습. 그렇다면, 아가가 소개하는 이 아름다운 포도원지기는 누굴까? 사실 아가는 노골적이고 색정적인 표현으로 연인 간의 애정을 묘사하고 있어, 정경에 들어가기까지 논란이 많았다. 두 남녀의 관계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사랑, 예수님과 교회의 사랑으로 풀이된 다음에야 경전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실제로도 아가에는 그 관계성을 암시해주는 구절이 나온다. “나의 연인은 나의 것, 나는 그이의 것”이라 고백하는 2장 16절이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레위기 26장 12절과 상당히 유사하다. ‘내가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말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 관계를 표현해주는 대표적 관용구다. 게다가 두 연인은 서로 ‘죽음만큼 강한 사랑’(아가 8,6)을 고백하는데, 이 사랑을 가장 잘 보여준 예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었다. 대신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셨으니, 그 사랑은 참으로 죽음만큼 강했다. 그러다 보니 이 소녀를 빗대는 ‘사론의 수선화’(아가 2,1)도 점차 예수님을 상징하게 되었다. 꽃잎이 다섯인 이 수선화는 지중해안의 모래를 뚫고 피어난다. 그래서 메마른 시온에서 끈질기게 피어난 예수님의 사랑(이사 53,2 참조)과 그 몸에 새겨진 다섯 상처가 수선화의 꽃잎 안에 새겨진 듯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우리 국화인 무궁화가 사론의 수선화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라꽃을 보는 눈이 더 깊어진다. 악조건에도 끈질기게 생존하는 무궁화는 ‘피고 또 피어 영원히 지지 않는 꽃’ 아닌가. 몸을 사리지 않고 이스라엘의 포도원을 가꾼 수선화 소녀, 죽음만큼 강한 사랑으로 피고 또 피는 예수님의 수선화, 그리고 오랫동안 이어진 우리 민족의 무궁화 사랑. 안타깝게도 요즘 무궁화가 천대받고 있지만, 이 사론의 수선화를 우리가 더 많이 심고 사랑해야 할 것 같다.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6월 19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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