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알레프
히브리어 첫 글자 ‘알레프’는 소의 두 뿔과 머리 표현 한국교회의 성경 공부 열기는 뜨겁지만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은 무척 초라한 듯하여 늘 안타까웠다. 필자는 구약성경 히브리어의 글자와 낱말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리하여 동료 신앙인들이 구약의 본래 말씀을 쉽고 친근하게 접하고, 우리 교회의 성경 공부가 더 심화되는 일에 보탬이 되고 싶다. 연재의 개요는 이렇다. 히브리어 글자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우선 문자를 하나씩 소개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글자로 시작하는 중요한 낱말 두어 개를 돌아보고 다음 글자로 넘어가겠다. 매주 충실히 읽은 독자라면, 연재가 끝날 즈음에 히브리어 주요 단어 100개 이상을 쉽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첫 글자는 ‘소대가리’ 히브리어의 맨 처음 글자는 알레프다. 우선 이 글자의 모양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림을 살펴보자. 고대 이집트 부근에서 출토된 금석문 등을 보면 본래 이 글자가 소의 대가리임이 분명하다. 이 소대가리 그림이 점차 발전하여, 소의 입과 눈을 떼고, 단지 3획만으로 두 뿔과 대가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3획의 소대가리’ 글자는 두 뿔의 각이 사라져서 마치 평행선처럼 표현되는 경우도 있고, 방향이 약간 틀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모양이든 두 뿔이 잘 표현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글자는 소의 뿔이 지닌 상징성, 곧 ‘힘’을 표현하는 글자인 것이다. 히브리어가 확립되기 이전의 언어를 ‘원(原) 셈어’(protosemitic)라고 하는데, 원셈어에서 소를 ‘알푸’(’alpu)라고 불렀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글자를 알푸라고 읽는다. 구약성경시대의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실제 이 글자를 사용했을 것이다. 발전의 길 고대 그리스 문명은 고대근동 문명의 큰 영향으로 탄생하였다. 그들은 원셈어의 ‘3획의 소대가리’ 문자를 창의적이고 획기적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곧, 두 뿔을 아예 아래로 꺾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글자를 ‘알파’(alpha)라고 불렀다. 원셈어의 주격어미(-u)를 떼었지만, 그 이름과 형태를 고스란히 계승하였다. 하지만 알파의 소문자 형태는 두 뿔과 머리가 선명한 모양을 계승한다. 한편 고대 아람인들은 원셈어의 알푸를 더 단순화시켜 아예 ‘3획의 선’만 남겼다. 그래서 소대가리를 의미하는 삼각형마저 사라져버렸다. 훗날 중세의 라삐들은 구약성경을 적는데 이 ‘아람어 글자’를 채택하였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배우는 히브리어 첫째 글자 ‘알레프’는 이 글자를 계승한다. 황소 소는 고대근동 문명에서 매우 중요한 동물이다. 청동기 시대의 일상 생활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힘센 동물’은 사자가 아니라 황소였다. 고대근동과 지중해 전 지역에 걸쳐 소는 가장 강한 동물로서 이렇게 모든 것의 첫 자리를 차지했다. 소를 숭배하는 문화는 널리 퍼져 있었고, 훗날 이스라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나이 산에서 아론은 백성과 함께 금송아지를 만들었고(탈출 32장), 훗날 예로보암도 북왕국을 세우고 금송아지를 숭배했다(1열왕 12,28-31). 히브리어의 알레프 히브리어로 이 첫 글자를 알레프라고 하는데 ‘소’는 ‘엘레프’라고 한다. 두 낱말의 뿌리는 같다. 그래서 엘레프는 ‘첫째’ 또는 ‘하나’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히브리어 엘레프는 다양한 의미로 파생된다. 무리를 지은 소, 곧 ‘소떼’라는 뜻도 있다. 이 뜻에서 ‘1000’이라는 숫자나 ‘큰 무리’를 의미하게도 되었다. 점차 짐승의 무리뿐 아니라 사람의 무리도 엘레프라고 했다. 구약성경 본문에서 이따금 “이스라엘의 엘레프”를 “이스라엘 부족”(민수 1,16; 10,4)이라고 옮긴다. 필자는 이런 표현에서, 광야를 떠돌던 작고 초라한 이스라엘 백성이 소떼처럼 크고 강한 무리를 이루고 싶은 소망을 품지 않았을까 혼자 추측해 볼 때가 있다.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인에게 가장 크고 소중한 존재의 이름이 이 글자로 시작한다. 그것은 엘로힘이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근동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7월 3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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