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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예언자 예레미야는?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14 조회수5,774 추천수1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예언자 예레미야는?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뽑히던 때는?

 

기원전 650년경에 태어난 예레미야는 23세 때(기원전 627년) 주님 부르심을 체험합니다. 요시야 임금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예레미야는 젊은 나이에 예언자로 소명을 받습니다. 때는 요시야 임금이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올라 유다왕국을 통치한지 13년 되던 해입니다. “유다 임금 아몬의 아들 요시야 시대, 그의 통치 십삼 년에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렸다.”(예레 1,2)

 

 

예레미야를 부르시는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는 주님 말씀 곧 자신의 소명 장면을 그대로 전합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예레 1,5)

 

 

예레미야의 응답은?

 

예레미야는 주저하면서 사양합니다.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1,6) 여기서 예레미야는 예언자로 투신할 만큼 성숙하지 않아 적합한 인물이 못 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응답 안에는 그의 성품이나 본성으로 볼 때 예언직을 맡기에 사뭇 부당하다는 의식이 들어있습니다. 한마디로 받은 소명을 거부하거나 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받은 소명을 거듭 거절하는 모세와 견주어 볼 수 있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발 주님께서 보내실 만한 이를 보내십시오.”(탈출 4,10-13)

 

 

다른 예언자는?

 

한 예로 이미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이사야의 경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이사 6,8ㄴ) 이사야는 주님 부르심에 지체 없이 ‘예’로 응답합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6,8ㄷ)

 

 

예언자는 누구입니까?

 

예언자는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그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그분 말씀을 전하거나 옮기는 녹음테이프가 아니라 자신의 전 실존을 통하여 그분 말씀을 선포하는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그분 말씀을 선포하는 그분의 사람이기에 예언자는 때때로 반감을 사게 되고 고난을 받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주님 부르심에 “아! 저는…… 말할 줄 모릅니다.”라고 일단 거절했지만 그분 말씀에서 아주 떨어질 수는 없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본디 영원하신 분으로부터 선택되었음을 의식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나 자신의 궁극적 주인은 내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궁극적 주인이 주님이심을, 그래서 그 자신이 근원적으로 주님의 사람임을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를 알았다’는 말씀은?

 

주님 말씀입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1,5ㄱ) 성서에서 ‘알다’는 단순히 무엇을 인지하거나 인식하게 됨을 뜻하지 않습니다. ‘알다’는 아시는 분과 알게 되는 사람이 하나 됨을 뜻합니다. 아시는 분께서 알게 되는 사람을 선택하심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1,5ㄴ) ‘너를 성별하였다’는 말은 주님께서 예레미야를 당신 자신의 것으로 아예 정해놓으셨음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그를 선택하신 이유는?

 

성서에서 선택과 성별이 단지 선택받은 이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당신 도구로 삼으시기 위하여 뽑으십니다. 그분의 선택은 당신 일꾼으로, 주님의 예언자로 삼으시어 세상 한 가운데로 파견하시기 위함일 뿐입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제 유다 민족의 예언자요 이스라엘 백성의 예언자로 우뚝 서게 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유다 민족이 주변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자신의 길을 원하는 대로 가지 못하는 불행한 시대에 예언활동을 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왕국이 고대 근동의 패자로 군림하던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멸망하는 사건을 지켜보게 됩니다. 따라서 예레미야 예언서 안에는 그러한 국제 정세가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미래는?

 

인류역사의 주관자이신 주님께서 판가름 해주십니다. 예언직을 수락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물론 예레미야 자신의 일입니다. 그가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언자로 적합한지 아닌지 또는 그가 언제 예언자로 나서야 할지를 판가름하는 일을 그 자신이 아니라 주님께서 해주십니다. 예레미야의 현재와 미래는 주님께서 이끌어주십니다. 그분께서 그를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만나야 할 사람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이들입니다. 그는 예언자로 소명 받았으니,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의 길이 아니라 주님의 길을 가야합니다. 그러니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이들에게 파견됩니다. 그들에게 가서도 서로 말하기 좋고 듣기 좋은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명령하시는 바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레미야는 자신을 괴롭히거나 심지어 죽이려는 이들에게까지 가서 서슴지 말고 그들이 아주 듣기 싫어하는 내용까지도 전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예레미야는 이제부터 주님의 입이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두려움은?

 

예레미야 역시 우리와 별다름 없이 두려움을 지니고 태어난 나약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그는 소명 첫 순간부터 ‘저는 어립니다.’라고 에둘러 말하면서 주님 부르심을 거절하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의 두려움은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주리라.”(1,8)

 

 

따라서 예언자는?

 

예레미야를 비롯하여 주 하느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모든 예언자는 그분으로부터 전권을 받은 이들로서, 모든 이와 온갖 세력에 맞서 하느님 말씀을, 때로는 재앙까지 선포합니다.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준다. 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1,9ㄴ-10)

 

 

끓는 냄비가 북쪽에서부터?

 

예레미야는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시는 주님 말씀에 응답합니다. “끓는 냄비가 보이는데, 그것은 북쪽에서부터 쏟아질 듯 기울어져 있습니다.”(1,13ㄴ) 북쪽에서부터 쏟아질 냄비는 머지않아 유다민족을 휩쓸어버릴 북쪽의 적들을 상징합니다.

 

 

유다인들에게 재앙은 왜? 유다인들이 왜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그들이 자신들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을 버리고 다른 잡신 공경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잡신들에게 제사를 바치며 나아가 그들 손으로 만든 것들을 섬기므로 계약의 핵심인 십계명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을 어기는 죄악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 백성 유다인들은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자기 스스로 재앙을 불러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9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용현5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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