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 (14)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로마 8,1-2). 문맥 보기 바오로는 로마 5-8장에서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삶’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영적 여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것(5장 참조),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같은 운명으로 초대되었으며 그분처럼 실제로 살 수 있다는 것(6장 참조)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땅에 발을 딛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필요한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인생은 ‘투쟁’이라는 것을 체험한다(7장 참조). 살아 있는 한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투쟁과 갈등은 운명처럼 우리를 따라다니지만, 이것이 인생의 마지막 말은 아니다. 바오로는 7장에서 갈등하는 인간 ‘나’의 체험을 소개한 후, ‘성령 안의 삶’을 다룬 8장을 덧붙인다. 그러므로 7장은 8장과 같이 읽지 않으면 미완성 드라마가 된다. 8장은 7장을 배경에 두고 이해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8장에서 우리는 성령과 기도의 관계에 대해 깊이 성찰하도록 초대된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 바오로가 8장을 시작하면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8,1)다고 확신하는 것은 7장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신앙과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과 맺는 친교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을 가리킨다(6,11 참조). 이렇게 그리스도인을 정의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5-7장에서 말한 주제들을 함께 모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하느님의 분노, 죄, 율법, 죽음에서 자유롭게 된 사람이다. 바오로는 이 모든 것을 8장의 첫 두 구절에 놓는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8,2)은 8장의 문맥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8,2을 7,1-6과 연결하여 읽을 때 해석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8,2에 나오는 모든 중요한 요소는 이미 7,1-6에서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성령의 법은 성령의 선물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관계나 성령에 의해 규정된 법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법은 성령 자신, 하느님에게 순종하는 삶으로 인간을 이끄는 성령 자신이다(3,27 참조). 바오로는 일반적으로 하느님 또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하는데, 이 구절에서는 자유롭게 하는 주체가 성령으로 바뀐다. 믿는 이의 구원은 성령의 활동에 달렸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이가 자유롭게 되도록 이끄신다. 우리는 자유롭게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갈라 5,13 참조).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과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나와 어떤 관계인지 설명하고 체험을 말할 수 있지만, 성령에 대해서 자기 체험을 쉽게 표현하지 못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단순히 ‘날아다니는 비둘기’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소유할 수 없는 것인가? 우리는 성령 없이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관계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바오로도 과연 성령 체험을 했을까? 바오로의 성령 체험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프네우마, )’은 근본적으로 이론이 아니라 체험에 바탕을 둔 용어이다. 바오로는 거의 모든 서간에서 성령이 그리스도인 삶의 원천이라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표현한다. 그러나 바오로 자신이 어떤 성령 체험을 했는지는 서간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사실 두 가지 동기 때문에 바오로는 자신의 성령 체험에 대해 명시적으로 말하기를 주저했을 것이다. 첫째, 바오로는 깊은 종교 체험을 했으면서도 자신의 환시나 계시 체험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이런 신비 체험을 사사롭다고 여겼고, 매일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특별한 체험보다 더욱 중요하고 근본적이라고 여겼다. 둘째, 바오로는 ‘영적 고백록’이 아니라 서간을 썼다. 그의 서간은 여러 공동체에서 일어난 구체적 문제들을 사목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공동체에 보낸 것이다. 따라서 바오로는 공동체의 삶에 관련되는 요소들을 더 우선하기 때문에 서간에서 그의 개인 체험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런 까닭에 바오로의 성령 체험이라는 주제에 대해 그의 서간을 토대로 연구할 수 있는 자료가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성령 체험의 핵심이 다마스쿠스에서 그리스도와 만난 체험에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안에 있는 성령의 현존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오로의 성령 체험의 본질은 그의 삶을 이끌었던 모토라고 할 수 있는 갈라 2,20에 잘 요약되어 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바오로가 하느님께 부름 받은 초기에 한 이 성령 체험도, 다른 진정한 종교 체험처럼 수많은 선교 활동과 성찰을 통하여 생애 내내 성숙해 갔다. 로마서와 성령 57년경 바오로가 코린토에서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다른 어느 서간보다 더욱 자주 성령이 하는 역할을 묘사한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된다(1,4 참조), 성령은 영적 선물을 주며(1,11; 12,6-8 참조), 율법과 대조된다(2,29; 7,6.14; 8,2.4 참조). 성령은 하느님 사랑의 통로이기도 하다(5,5; 15,30 참조). 특히 ‘성령의 장’이라 불리는 8장에는 ‘프네우마’라는 용어가 자주 나오는데 대부분 성령을 가리킨다. 성령은 육과 반대되며,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믿는 이들에게 힘을 준다(8,5-13 참조). 성령은 믿는 이들이 하느님 자녀로서 정체성을 깨닫도록 도와준다(8,14-17 참조). 그러나 세례 때 우리가 받은 성령은 “첫 선물”(8,23)이다. 하느님께서 믿는 이들에게 내려주실 완전한 선물에 대한 담보와 보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11,16; 1코린 15,20 참조). 성령은 믿는 이들의 기도를 도와주며(8,26-27 참조), 평화와 기쁨을 불어넣어 준다(14,17; 15,13 참조). 성령에 대해 바오로가 신학적으로 성찰한 바의 근본 요소는 특히 8,3-4.9-11에 나타난다. 이 여러 구절에서 바오로는 “우리”(4절), “여러분”(9-11절), “누구든지”(9절)라는 다양한 대명사를 사용하면서, 성령 체험을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체험으로 간주한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한다. 그분의 삶, 죽음과 부활, 그분의 기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분의 존재 자체를 닮아가게 한다”(로마노 펜나). 바오로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 바오로는 로마 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깊이 관계를 맺도록 자주 권고한다. 진정한 유다인의 삶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느님을 기억하게 하는’ 기도로 이어졌다. 그러나 바오로가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 체험을 하면서 그의 기도도 변화되었다. 그에게 기도는 인간의 의무나 영적 훈련이 아니라 온전히 ‘성령의 선물’이었다. 8장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새로운 삶의 특징을 ‘성령 안의 삶’으로 소개하면서 이를 배경으로 기도와 성령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설명한다. 바오로는 그 관계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글로 남겨, 기도를 배우고 싶어 하는 모든 세기의 사람들에게 확실한 성서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 임숙희 님은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로마서의 바오로 기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회의 신앙과 영성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며 글쓰기와 강의를 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2월호(통권 443호), 임숙희 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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