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여야 할까요?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29 조회수417 추천수3 신고

 

+샬롬 (그리스도의 평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이 세상을 이해 하려면 먼저 이 세상의 주인에 대한 이해가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 세상은 누가 왜 만드셨을까?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은 어떤 분이실까?
그동안 성경을 읽고 묵상하셔서 아시겠지만 이 세상을 과학적인 사고로 분석한다면 아마도 알고자 하시는 깨달음을 얻기는 어려우실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통해 묵상적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을 성경은 이렇게 알려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1요한 4,7-8)
 
이 세상은, 이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지으신 세상입니다.
제가 감히 성경 저자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하느님께서 세상을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지으셨는지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가지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1베드3,8)
창세기의 천지창조의 장면을 보면 "하느님께서 ...(중략)... 하시니 첫날이 지났다. ...(중략)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 (중략)...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하십니다." (창세 1,1-1,31 참조)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손수 만드시는데 하루를 쓰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느님의 하루는 천 년과도 같다(1베드3,8 참조)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그 하루의 일을 위해 천 년의 마음과 정성을 쏟으셨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천 이라는 숫자는 이루 헤아리지 못하는 만큼의 어마어마 한 숫자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당신의 전부를 쏟아 부으시어 만드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만드신 세상을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 선물로 주십니다. 그것도 무상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에덴"이라고 하십니다.
에덴의 의미는 "기쁨과 즐거움, 환희"의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에게 무엇이 기쁨이고 즐거움이며 환희일가요?
 
"좋기도 하여라, 우리 하느님께 찬미 노래 부름이.
즐겁기도 하여라, 그분께 어울리는 찬양드림이."(시편147,1)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 안에서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자기네 임금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시편149,1-2)
 
이렇게 아담과 하와가 기쁨과 즐거움의 동산에서 살던 어느날 뱀의 유혹에 빠져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뱀의 꼬임에 따르게 되어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죄를 지은 상태로 영원히 살게 할 수가 없어서 에덴에서 추방을 하십니다. 이 때에 '땅'이 인간과 함께 저주를 받게 됩니다.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땅은 네 앞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3,17-19)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추방되던 당시의 상황을 묵상을 잘 하셔야 땅이 왜 인간 때문에 저주를 받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인간의 이해에 대한 깊은 묵상을 통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왜 고통속에 살고 있는지를 깨닫고 다시 하느님께서 처음에 창조하신 상태(에덴)로 되돌아 가기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인간이 이 세상에서 고통 속에 사는 원인에 대해서 묵상해 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먼저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다 먹었느냐?"하고 물으시자,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창세3,11-12)
한 가정에서 아담(사람)의 위치는 '가장'입니다. 그렇다면 가장은 집안의 모든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처신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아담은 그 책임을 하느님과 하와에게 돌립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관계가 깨지게 된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이 깨진 상태에서의 인간의 삶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믿음과 사랑 없이 과연 살 수 있을까요?
우리들의 삶을 진실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야 창세기에서 말하고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믿음과 사랑의 관계가 깨진 상태에서 남편이 일해서 돈벌어 오려고 일터로 나가지만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그 일을 한다면 그것이 고통입니다. 부인 역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아이를 출산 한다면 그것도 커다란 고통입니다. 이 고통의 근원적인 문제(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해결하지 않고 인간은 다른 방향에서 행복을 느끼려고 합니다.그 결과로 땅이 저주를 받게 되는 꼴입니다. 
보십시오! 인간이 무엇을 위해서 자연을 훼손하고 있는지를. 
인간이 죄의 상태에 놓이게 되면 오로지 자기 자신만 보입니다.
 
 에덴에서의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과 함께 사는 일과 하느님께서 살도록 주신 것으로 충분히 기쁨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행복의 조건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하느님의 영원함 안에서 이해하셔야 합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태22,30)
보십시오! 천사들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삶을 우리들에게 맛보도록 허락하신 그 사랑을. 그렇다면 이 세상의 삶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삶이겠습니까?
죽음 이후 부활하여 누릴 저 천국의 삶보다 결코 낮은 단계의 나라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항상 깨어 기도하여라"하시며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전부를 쏟아 부으셔서 만드신 곳이며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우리들에게 맛보고 누리라고 보내주신 하느님의 사랑이 보이는 곳입니다. 창세기는 그곳을 "에덴"이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곳은 에덴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부활하여 승천 하시면서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고 하시며 이 세상이 다시 "에덴"이 되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우리의 몫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에덴의 삶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뱀의 유혹의 손길에 나의 삶을 내 맡길 것인가?
 
아름다운 선택을 하시길 빕니다.
 
또한 이 세상은 이런 곳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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