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황금률(마태 7,12)의 "그러므로"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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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3-01-25 | 조회수285 | 추천수0 | 신고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로마노 형제님께서 정확하게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5장 이하 산상설교로 유다인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삶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라는 말씀은 그 모든 말씀의 결론이 맞습니다. 당시 바라시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가하면, 마치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처럼 되려고 했던 그 모습을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의인이고 죄인인지는 하느님만이 판단하실 영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세분화시킨 613가지의 규정을 잘 지키면 의인이고 지키지 못하면 죄인이라고 심판을 해 버리고만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느님처럼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살라고 하느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계명을 잘 지키면 누가 행복합니까? 모두 행복합니다. 그런데 당시 현실은 어땠습니까? 바로 이 모습을 꼬집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말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마태 23,3-5) 하느님께서 율법을 주시고 예언자들을 보내신 이유는 율법과 예언서의 참 정신을 깨달아 모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왜곡하는 바람에 율법과 예언자들이 걸림돌이 되고 짐이 되고 그럼으로써 행복해야 할 인생이 그것으로 인해 비참하게 꼬여 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예언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러므로"라고 하시며 "너희 종교 지도자들아, 너희들 지금까지 살던 그 방식은 내가 너희에게 바라고 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란다. 너희들이 원하는 지금까지 살았던 그 방식이 아니라 이웃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단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하며 삽니다. 문제는 내가 원하고 내 방식대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진정한 사랑은 내가 원하고 내 방식대로의 사랑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야 진정한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도 하느님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흉내도 내지 못할 만큼 아주 열렬히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이 하느님을 사랑했던 것만큼은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자기 방식이었던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원하는 내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다음 텍스트에서 그 길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힘든 여정임을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내 방식대로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널찍한 문이고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은 많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좁다고 하십니다. 왜 좁을까요? 그것은 나를 죽여야 하는 길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시면서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들여다 보길 촉구하십니다.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 7,15) 라고 하시며 율법과 예언서에 담긴 참 정신을 살아내면 그 열매가 맺히는데 그 열매를 보면 그가 참 사랑을 살았는지 살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단다. 그러니 너희들은 어떻게 살래? 이렇게 제자들에게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어떤 한 구절을 똑 떼어 묵상할 수도 있지만 전체의 흐름으로 묵상하는 방법도 아주 훌륭한 묵상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좋은 묵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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