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제가 생각하고 있는 순명은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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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은정 | 작성일2013-12-06 | 조회수1,321 | 추천수1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이글은 먼저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혀둡니다. 순명의 뜻을 검색해보면,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사랑으로 기쁘게 순종하는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순종의 뜻인 순순히 따르는것에다가 기쁘게 참여하는 것이 더해진것이라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순명을 이야기할때에, 성소를 빼놓을수가 없습니다. 순명은 각자의 성소안에서 힘과 의미를 가지기때문입니다. 그런데 각자가 처해있는 성소가 다릅니다. 수도 성소와 평신도의 성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주님의 나라는 같지만, 그러나 그 주님의 나라를 위한 각자의 순명을 조금씩 다르다고 할수 있습니다. 먼저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은 무엇에 순명해야하는지는 그분들이 속한 교도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가르침을 일치시켜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 교회가 부여하는 의무입니다. 그안에서의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의 순명은 교회에 대한 의무가 평신도와는 다르게 절대적일수 있기에 여기에 따르는 순명은 평신도가 교회에 가지는 순명과는 더 무게가 있습니다. 평신도가 가지는 순명을 위의 성소를 가진 분들과는 다르게 해석해볼수 있습니다. 평신도도 물론 교회의 가르침에 (교도권)에 순명해야하는것은 당연한일이나, 그 가르침을 세상안에서 받아들여서 접목시켜야하므로, 수도성소에서 가지는 순명과는 다른 방식이 있을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평신도의 삶은 훨씬 더 많이 세상에 놓여져 있어서 그야말로 세상과 더불어 살아야 하므로, 교회안의 질서안에만 삶이 매여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교회안에 가르치는 질서대로 순명하고 살아야하는것이 평신도의 의무입니다. 지금은 많은 정보들이 우리앞에 있어서 자칫 다른 목소리를 들을수 있으므로 우리가 순명해야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종종 고뇌해야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선택할수 있는 순명의 시대라고도 할수 있는것이, 지역을 넘어서는 활동을 할수가 있게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자신의 지역을 넘어서지 못했던 중세시대와는 다르다는것입니다. 이것은 몸은 미국에 있으면서 영적지도는 한국신부님에게 받고 있는 경우도 있으니 과연 순명의 대상이, 지금 자기 성당의 신부님인지, 한국의 지도신부님인지 헷갈려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큰틀에서 순명이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순명이어야지, 사람의 뜻에 따르는 순명이 아니어야 합니다. 교회의 역사속에서 순명이 꼭 좋은 의미만은 아니었을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순명이라는 이름하에서 행해지는 많은 일들로 인해서 개인의 인격이 침해받는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간들이 있었고, 지금도 우리가 교회에 대한 순명으로 고민하기도 합니다. 특히 나와는 생각이 다른 교회의 결정들, 또 우리가 따르는 사제들의 결정들이 다를때에도 주님의 뜻을 고민합니다. 사실 순명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에서 가장 잘 보여주신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당신을 내어주실만큼 순명하신것입니다. 그러니 순명을 생각하시면, 주님께 먼저 의탁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노력할때에, 우리가 순명해야할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해주실것입니다. 좋으신 주님께서 지혜도 주실줄 믿습니다. 혹시나요, 아직 초신자이시면 본당의 신부님을 통해서, 교회에서 가르치는것에 귀기울이시면 될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해 있는 성당내에서, 함께하시는 분들과, 충실히 자신의 생활속에서 신앙을 키우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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