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노아의 아들들 홍수가 끝난 후에 노아의 가족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그들이 터전을 잡은 곳에 대해 성경의 저자는 침묵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우리는 노아의 가족들이 살았음직한 상상의 장소로 순례를 떠나겠습니다. 노아는 그곳에서 포도밭을 가꾸는 첫 사람이 되었습니다(창세 9,20). 포도로부터 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그는 발효된 포도를 먹고는 술에 취한 나머지 벌거벗은 채로 누워있었습니다. 알몸으로 누워있는 아버지를 처음으로 목격한 것은 둘째 아들인 함이었습니다. 그는 가나안의 조상으로 소개됩니다. 그는 이 사실을 형제들에게 알렸고, 셈과 야펫은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지 않기 위해 겉옷을 집어 둘이서 그것을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알몸을 덮어 드렸습니다. 노아는 술에서 깨어나 작은 아들이 한 일을 알고서 그에게는 저주를 내리고, 셈과 야펫은 축복을 하였습니다. 함에게 내린 저주는 이렇습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으리라. 그는 제 형제들의 가장 천한 종이 되리라.” 셈에게는 “셈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러나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어라.”라는 말로, 야펫에게는 “하느님께서는 야펫에게 자리를 넓게 마련해 주시고 셈의 천막들 안에서 살게 해 주소서. 그러나 가나안은 야펫의 종이 되어라.”라고 축복하였습니다. 결국 함은 셈과 야펫을 섬기는 종이 되라고 말한 것인데, 도대체 함이 행한 잘못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함이 잘못하였는데 왜 그의 후손인 가나안이 저주를 받는 것일까요? 먼저 성경에서 ‘알몸을 보다’는 말은 ‘성적 관계를 갖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레위 20,17-21 참조). 그렇다면 함이 아버지와 성적 관계를 맺었다는 뜻일까요? 혹은 함이 노아의 아내와 성적 관계를 맺었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그의 잘못은 성적인 것이 아니라 아들로서 아버지의 영예를 지켜주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현재의 문맥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함이 그런 저주의 말을 들을 만한 잘못을 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잘못은 함이 하였는데 왜 저주는 가나안이 받는 것일까요? 이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됩니다. 아버지 대신 아들을 벌함으로써 그 형벌을 더욱 혹독하게 여겨지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혹은 실제로는 가나안이 아니라 함이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해석하거나 실제 범인은 함이 아니라 가나안이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혹은 이 저주는 이스라엘의 원수인 가나안에 대한 반감을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고대 랍비들은 ‘함이 노아가 넷째를 낳지 못하도록 거세를 하였다. 그래서 그의 넷째 아들인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창세 10,6 참조). 이 이야기에는 가나안족에 대한 이스라엘의 적대감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족의 조상인 함을 근친상간 혹은 성적 문란의 죄를 범한 이로 고발함으로써 그 민족을 비하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 민족을 주의하라는 경고성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노아는 홍수가 끝난 후 350년을 더 살고 95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세 아들이 온 땅으로 퍼져 나갔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노아의 아들들은 언제나 셈, 함, 야펫의 순서로 소개되지만 창세기 10장에서는 야펫, 함, 셈의 순서로 그 후손들이 소개됩니다. 이는 그 뒤에 소개될 셈의 후손 아브라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의 후손들의 수는 70이며, 이 숫자는 당시에 고대 근동 전역으로 퍼져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노아의 자손들의 명단은 인류는 처음부터 서로 인척 관계를 가지며, 모두 하느님의 돌봄을 받는 가족이었다는 확신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이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극복하고 본래의 친인척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종종 구원의 상태를 묘사할 때 온 인류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느님을 예배하는 한 가족이 되는 모습으로 제시합니다(이사 2,1-3; 43,9; 60,1-3 참조). [2021년 2월 14일 연중 제6주일 가톨릭마산 8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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