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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마케도니아로 가는 길 - 사모트라케와 네아폴리스를 거쳐 필리피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6-07 조회수4,366 추천수0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마케도니아로 가는 길


사모트라케와 네아폴리스를 거쳐 필리피로

 

 

- 사모트라케 섬(BiblePlace.com)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달라는 환시를 본 바오로는 일행과 함께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필리피로 갑니다(사도 16,11-12ㄱ).

 

사모트라케는 소아시아 땅인 트로아스와 마케도니아 곧 유럽 땅인 네아폴리스의 중간쯤 되는 곳에 있는 섬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승리의 여신인 ‘니케’의 대리석 조각상이 발굴된 곳이어서 목과 양팔이 잘린 날개 달린 이 니케 여신상을 ‘사모트라케의 니케’라고 부릅니다. 스포츠용품으로 유명한 상표 ‘나이키’란 이름도 여기에서 땄다고 하지요.

 

사모트라케는 크진 않지만, 뱃사람들에게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는 섬이었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에게해를 통해 소아시아로 오가는 배들, 또 에게해 남쪽 그리스에서 북쪽 흑해 쪽으로 오가는 배들이 이 섬에서 쉬어 갔습니다. 헤르메스, 하데스, 데메테르, 페르세포네, 키벨레 같은 그리스 신화의 ‘위대한 신들’을 모신 신전이 있어서 사모트라케는 주변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 네아폴리스(카발라) 항구 (BiblePlace.com)

 

 

육로보다 뱃길을 택한 까닭

 

바오로 일행이 마케도니아로 가는 방도를 궁리했을 때 배편으로 가기로 한 것은 사모트라케를 중간 기착지로 이용하면 뱃길이 육로보다 훨씬 빠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가 본 환시가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확신했기에, 서둘러 가고자 이 길을 택한 것입니다.

 

물론 바람이나 파도 등 날씨의 영향을 받으면 뱃길이 오히려 육로보다 훨씬 위험하고 더딜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은 바오로가 3차 선교 여행 때 필리피에서 배를 타고 트로아스까지 오는 데 닷새가 걸렸다고 전합니다(사도 20,6). 필리피에서 배를 탔다는 것은 필리피의 외항(外港)인 네아폴리스에서 배를 탄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트로아스에서 네아폴리스로 건너갈 때는 이틀 걸렸지만, 네아폴리스에서 트로아스로 올 때는 두 배가 넘는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이 사실은 뱃길이라고 해서 반드시 더 빠르지는 않음을 확인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바오로 일행은 소아시아에서 서쪽 아시아로 가려고 하자 성령께서 막으셔서 가지 못했고, 미시아에 이르러 북쪽 비티니아로 가려고 하자 이번에는 예수님의 영께서 막으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트로아스까지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도와달라는 환시를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확신한 이상 그들은 서둘러 마케도니아로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배편으로 트로아스를 출발해 쉬지 않고 사모트라케까지 직행하고 이튿날에는 네아폴리스에 도착하게 됩니다. 트로아스에서 이틀 만에 네아폴리스에 도착했다는 것은 여정이 그만큼 순조로웠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또한 소아시아에서 길을 막은 성령께서 마케도니아로 향하는 여정은 도와주셨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일행이 유럽 땅에 첫발을 들인 네아폴리스는 오늘날 카발라라고 불리는 그리스 북쪽의 항구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기원전 7세기쯤에 건설됐는데 바오로 시대에는 마케도니아와 소아시아를 동서로 잇는 간선도로 ‘비아 에냐티아’(Via Egnatia)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위치한 요충지였을 뿐 아니라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인 필리피에 포함돼 그 외항 역할도 했습니다.

 

- 필리피 리디아 경당 옆의 세례터.

 

 

네아폴리스에서 필리피로

 

네아폴리스에 도착한 바오로 일행은 내륙으로 20km가량 들어간 필리피로 가서 며칠을 보냅니다(사도 16,12). 필리피는 오늘날 유적만 가득한 폐허가 됐지만, 당시에는 마케도니아 북동부에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기원전 360년쯤에 자신의 마케도니아 왕국에 합병한 후에 자기 이름을 따 필리피라고 지었습니다. 그 후 로마 제국의 옥타비아누스(기원전 63~기원후 14)가 두어 차례에 걸쳐 퇴역 군인들을 이주시켜 로마의 식민지 도시로 만들면서 더욱 번창했고 주민들은 로마 시민들과 똑같은 특권을 누렸습니다.

 

필리피에서 머물면서 바오로는 일행과 함께 유다인 회당이 있는지를 살펴봤을 것입니다. 바오로는 이미 첫 번째 선교 여행 때부터 새로운 도시에 가면 먼저 유다인 회당을 찾아 말씀을 전하는 것을 우선적 과제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의 기록으로 볼 때 성안에서는 회당을 찾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마케도니아의 첫 신자 리디아

 

그래서 바오로 일행은 안식일이 되자 혹시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나 싶어 성문 밖 강가로 나갑니다(사도 16,13). 강가에는 정결례 등에 필요한 물을 쉽게 구할 수 있어 사적으로 모이는 기도처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입니다. 강가에는 기도처가 있었고 바오로는 그곳에 모여 있던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그 가운데는 소아시아의 티아티라 출신으로 자색 옷감 장수인 리디아라는 여자도 있었습니다. 유다인이 아니면서도 하느님을 섬기던 리디아는 바오로가 전하는 말씀을 귀담아듣고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습니다(사도 10,13-15). 이렇게 해서 바오로는 유럽 땅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하게 되고, 티아티라 여자 리디아는 유럽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첫 제자가 됩니다.

 

리디아 이야기는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코르넬리우스 이야기와 여러모로 비슷합니다. 두 사람 모두 이방인이었습니다. 코르넬리우스는 백인대장이고 리디아는 부유한 옷감 장수로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하느님을 섬기는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코르넬리우스에게는 환시를 통해, 리디아에게는 마음을 열어 주시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셨고, 두 사람은 자기들만이 아니라 집안 식구가 모두 함께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됩니다. 코르넬리우스가 세례를 받고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러 달라고 간청했듯이, 리디아는 바오로 일행에게 자기 집에 머물러 달라고 강권합니다.

 

- 성문밖 강가에서 리디아와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바오로(리디아 경당의 그림)(좌), 카발라 니콜리오 성당 옆에 있는 바오로의 환시 모자이크화(BiblePlace.com)

 

 

하지만 바오로 일행의 필리피 활동은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필리피에 머물던 그들에게는 또 다른 일이 벌어집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호에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바오로가 유럽 땅에 첫발을 디딘 네아폴리스, 곧 카발라에서는 바오로 시대의 유적들은 대부분 땅속에 파묻혀 있어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로마 시대의 수도교(水道橋)와 성채(城砦) 등이 있으나 훨씬 후대의 것들입니다. 다만 시내에 있는 성 니콜라오 정교회 성당 옆에는 바오로가 트로아스에서 환시를 보는 장면과 네아폴리스에 도착하는 장면을 그린 모자이크화가 설치돼 있어 이곳이 성경의 도시 네아폴리스임을 일깨워 줍니다.

 

또 유적 도시 필리피 외곽의 천변에는 리디아가 바오로의 말을 듣고 세례를 받은 것을 기념하는 리디아 경당과 세례터가 있어 필리피를 찾는 순례객들을 맞고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6월호,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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