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데 데레사 수녀 ''영적 고뇌''의 진실에 대해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다..>
하느님의 부재(不在)를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느님의 현존을 말해야 한다.
하느님의 현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하느님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현존을 나와 함께 있음을 어떤 모양으로든지 인식하고 감지하는 것이라 한다면,
하느님 부재는 사랑스럽고 친밀한 그런 현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내 앞에 현존한다는 것은 그와 나와의 관계가 있고 교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두 생명이 끈끈하게 결합된 상호간 내적 흐름으로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끊임없이 흐르는 심령의 흐름이다.
따라서 하느님 현존을 밀도 있게 체험해 보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부재를 알아 듣거나 말할 수 없다.
하느님의 부재감은 예전에 느꼈던 사랑스럽고 친밀한 교류가 느껴지지 않아서 오는 허전함,
그로 인한 지독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 하느님 체험 없이 부재 느끼지 못해
가톨릭에서 말하는 하느님 부재는 가톨릭 밖에서 비종교인이 말하는 하느님 부재(무신론)와는 다르다.
가톨릭 밖에서 말하는 그것은 하느님이 안 계시기에(무신론) 그분과 교류가 없다.
무신론적이기에 하느님께 관한 관심이 없을 뿐더러, 하느님이 계시지 않음을 느껴도 그것이 고통이 되거나
자신에게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죽기 약 8개월 전에 이 하느님 부재를 체험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하나(연대)가 되어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죄인들의 식탁에서 빵을 먹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앙 안에서 이 부재를 겪을 때 드러나는 양상은 무신론자와 비슷한데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더 깊은 정화를 위해 겪는다는 것이다.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깊이 탄식하며 하느님을 갈망하고 찾는 것이다.
반면 무신론자들이 체험하는 하느님 부재는 하느님을 찾지도 않고 하느님 없이 평온히 잘 지낼 수 있다.
데레사 성녀가 이 부재의 고통으로 심히 괴로워할 때 예수님께 이렇게 푸념한 적이 있다.
"당신은 나를 보고 계시는데 나는 당신을 볼 수 없습니다. 어떻게 자비하신 예수님이 이런 불공평한 일을
허락하실 수 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만일 저는 당신을 볼 수 있고 당신은 나를 볼 수 없다면
주님은 이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이같은 불평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이 존재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계시는데도 그분의 감미로운 현존이 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하느님의 부재를 신비신학에서는 ''어둔밤(정화)''이라고 부른다.
#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흥미로운 것은 하느님 현존을 강하게 체험한 정도에 따라서 부재에 대한 고통도 깊고 크다는 것이다.
하느님 현존 체험이 없는 사람은 하느님 부재에 대해 불평하거나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 현존 수련에 몰두했던 복녀 성삼의 엘리사벳도 이 부재의 고통을 체험하고선
"아! 그윽한 하느님의 현존을 맛본 뒤에 느끼는 이 부재의 고통은 얼마나 쓰라린지요? 그러나 신앙은
제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하느님은 여기, 내 안에 계신다 하고요."
이 부재를 통해 신앙이 더욱 순수해지고 강해지고 뿌리내리게 된다.
이 어둔 밤 - 하느님 부재 - 속에서 하느님을 애타게 찾는다는 것은 영웅적 신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실 하느님께서 이 어둔 밤을 허락하심은 영혼을 이처럼 순수한 사랑으로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이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저버럼 받는 고통을 느낀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초심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하고
부르짖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란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셨는데
어떻게 이토록 사랑하는 아들에게 가장 고통스런 순간에 ''아버지의 부재''를 허락하셨을까?
이는 ''신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예수님의 이 저버림 받은 고통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저버림으로써 당신은 평생에 이루신 그 많은 기적과 일들보다 훨씬 더 큰 일, 그리고 하늘에도 땅에도 일어나지 않은
크나큰 일을 하셨으니, 은총으로써 전 인류를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결합시키신 바로 그 일인 것이다.
즉 이 일이 이룩된 때가 바로 주께서 당신을 온전히 멸각 (滅却, 조금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림) 하신 그 때요
그 순간 이었다." (가르멜 산길 2권 7,11)
# ''어둔 밤''은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
하느님 편에서 보면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에 든 사람에게,
또 인간편에서 보면 하느님을 더 깊이 온전히 사랑하려고 열망하는 영혼들에게
이런 신비스런 고통 (하느님 부재)을 허락하신다.
그래서 하느님 부재는 그 고통을 통해서 영혼의 순수한 사랑을 더욱 커지게 하고 드러내게 하며
예수님 인류 구원의 공동 구속자가 되게 한다.
따라서 하느님 부재는 예수님이 하느님으로부터 저버림받은 이 구원의 신비와 연관시키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하느님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들,
하느님 현존을 충만히 누린 사람들이 하느님 부재를 경험한다.
하느님 부재를 경험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총애받고 축복받은 사람이다.
또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진실로 하느님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평화신문 9월 9일자 특별 기고 / 강유수 마리요한 신부 (가르멜 남자수도회 광주수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