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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르코 복음서 5장 해설-----송영진 모세 신부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유타한인성당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09 조회수1,772 추천수0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마르코 복음서 5장>


 


5장


 


<1절-20절 : 마귀들과 돼지 떼>


 


1절..<그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이 구절은 앞의 4장 35절의 내


    용과 연결하기 위한 구절입니다. 즉 4장 35절에서 예수님께서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고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호수 건너편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


    들입니다. '호수 건너편'은 앞의 4장 35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호수 저쪽'인데, 갈


    릴래아 호수 동쪽의 이방인 지역입니다. 도착한 시간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착


    한 곳이 어디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게라사인들의 지방'에 도착한 것으로 되어 있는


    데, '게라사'는 갈릴래아 호수 동남쪽으로 55Km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뒤의 13절에서 말


    하는 것처럼 돼지들이 호수로 달려가서 빠져 죽기에는 너무 먼 곳입니다. 마태오복음 8장


    28절에는 '가다라인들의 지방'으로 되어 있는데, '가다라'는 갈릴래아 호수 동남쪽으로


    10Km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곳도 돼지들이 호수로 달려가서 빠져 죽기에는 너


    무 먼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도착한 곳을 호수 동쪽 물가에 있는 '게르게


    사' 라는 마을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떻든 호수 옆에 있었던 어떤 동네일 것입니다.


 


2절..<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


    주 왔다.>--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마귀 들린 사람과 마주치게 됩니다. '더러


    운 영'은 악령(마귀)입니다(1,23).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이방인 지역도 불결한 곳이


    고, 무덤도 불결한 곳이고, 불결한 짐승인 돼지들을 기르는 곳도 불결한 곳입니다. 또 유


    대인들은 무덤을 악령의 거처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이야기에서 나오


    는 '게라사인들의 지방, 무덤, 돼지 떼' 라는 말들은 더러운 영(악령)의 불결함을 강조하는


    배경 묘사 같은 것입니다. 어떻든 악령 들린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는


    처지여서 사람이 살지 않는 산이나 광야나 무덤 같은 곳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구절에서는 '그분께 마주 왔다.' 라고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뒤의 6절을 보면 '멀


    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악령은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


    자마자 바로 예수님의 등장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3절-4절..(3)<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3절과 4절은 악령 들린 사람의 비참


    한 상태를 묘사한 구절입니다. 악령 들린 상태가 마치 미쳐 날뛰는 것 같은 모습이고, 다


    른 사람들을 해칠 위험도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쇠사슬과 족쇄로 묶어두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쇠사슬과 족쇄를 부수어 버려서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


    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악령을 통제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5절..<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악령 들


    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해로웠지만, 자기 자신의 몸도 해치려고 합니다. 그가 밤낮으


    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느끼게 했을 것입니다.


    돌로 자기 몸을 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몸을 해치는 모습입니다. 악령은 누구에게나 해를


    끼치는 해로운 존재라는 것이 이 구절에 극단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렇게 미쳐 날뛰


    는 모습이 아니라 부드럽게 다가와서 달콤하게 속삭인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를 해치기 위


    한 유혹입니다. 악령이 우리를 도와주는 일은 없습니다.)


 


6절..<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이 구절은 악령의 자


    기 방어의 행동을 나타낸 것입니다. 악령은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신 것을 알고, 멀리서부


    터 달려와서 먼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이것은 자기 방어이면서 동시에 굴복의


    표시입니다. 즉 쫓겨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미리 굴복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 악령을 쫓아내기도 전에 악령은 이미 예수님의 권능에 압도되어 있습니다.


 


7절..<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


    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지극히 높으신'이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이 잘 썼던 말입니


    다(창세 14,19). 또 당시에 제우스신을 가리키기 위해 이교도 종교에서 사용했던 표현입


    니다. 지금 이곳은 이방인 지역이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든 악령들은 앞의 3장 11절에서처럼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자기들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표시하려고 큰 소리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악령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방어인데, '나는 너를 알고 있으니 너보다 힘이 세다.' 라는 뜻으로 하는 행


    동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기들이 예수님에 의해 쫓겨나게 될 것을 알고 미리 방어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는 말은 예수님의 활동 영역과 자기들의 활동


    영역이 다르니까 간섭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라는


    말은 당시에 마귀 쫓는 일을 하던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을 흉내 낸 것입니다. 즉 마


    귀를 쫓아낼 때 보통 '하느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명한다.' 라는 말을 했는데, 지금 악령은


    그 말을 흉내 내면서 예수님께 간청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서에는 이 말이 없는데,


    잘못된 번역입니다.) 악령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에게 반항하면서도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 앞에서는 완전히 무능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8절..<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


    이다.>--이 구절은 악령들이 예수님께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게 된 이유를 설명


    하는 구절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라고 명


    령하셨기 때문에 악령들이 예수님께 간청했다는 것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예수께서 악


    령을 보시기만 하면'이라고 번역했는데, 원문과는 거리가 먼 번역입니다. 이렇게 번역하면


    마치 예수님이 명령하시기도 전에 그 악령들이 선수를 친 것처럼 되는데, 원문에서는 예


    수님께서 그 악령들에게 직접 명령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악령들을 쫓


    아내면, 그들이 갈 곳은 광야나 사막이나 지옥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악령들도


    지옥으로 가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옥이란


    악령들마저 가기를 싫어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9절..<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


    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악령들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물으십니다. 이것은 그 악령의 진짜 정체와 본성을 스스로 밝히도록 하기 위


    해서인데, 악령의 정체가 드러난다는 것은 그 악령을 무력화시키는 한 방법입니다. 즉 예


    수님께서는 그 악령들을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서 이름을 물어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


    문에 악령은 저항하지 않고 온순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힙니다. '군대(그리스어 = 레기온,


    라틴어= 레지오)' 라는 이름은 많은 수의 악령이 하나로 뭉쳐서 붙어 있음을 나타냅니다.


    '레지오'는 보통 6천에서 만 명 정도의 대부대입니다. 악령들은 자기들의 수가 많기 때문


    에 군대라고 부른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군대라는 이름은 수가 많다는 뜻 외에도 악


    령들의 폭력성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군대라는 이름은 악령들의


    단결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악령 들린 사람의 상태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10절..<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


    였다.>--악령들은 자기들이 쫓겨나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시도로 다


    시 한 번 예수님께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


    지역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서는 쫓겨나더라도 그 지역에서는


    떠나기 싫었던 것입니다.


 


11절..<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유대인들은 돼지를 기


    르지 않았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율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레


    위 11,7). 그러나 지금 이곳은 이방인 지역이고 그 당시 이 지역에서는 양돈업이 크게


    번성했었습니다. 그들은 돼지들을 산에 풀어놓고 길렀던 것 같습니다.


 


12절..<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악령들은 예수님께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사람의 몸에서


    쫓겨나는 대신에 차선책으로 돼지들의 몸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즉 자기들도


    예수님께 양보할 테니까 예수님도 조금은 양보해 달라고 타협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들


    은 이 지상에서 완전히 쫓겨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돼지였을까? 라는 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보입니다. 악령들과 돼지가


    모두 더러운 존재들이고 잘 어울린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쫓겨날 처


    지에 있는 악령들이 다급한 마음에 바로 옆에 보이는 돼지 떼를 선택한 것일 뿐이고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13절..<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악


    령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악령들이 쫓겨났


    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악령들의 청을 들어주신 것은 불쌍한 사람에게서 악령들을


    쫓아낸 결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권능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악령들 자신들도 예상하지 못했을 일이 일어납니다.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달려가서 빠져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악령들은 이 지상에서 완전히 제거되


    었습니다. 돼지들이 왜 집단 자살을 했는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돼지들도 악령


    들이 자기들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 거부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예수님 앞에서 잔꾀를 부리려던 악령들이 자기들 꾀에 빠져 모두 제거되고 말았


    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악령들이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셨


    는지, 또 예수님께서 돼지들의 집단 자살을 미리 아셨는지, 그런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또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도 아닙니다.) 돼지 떼의 주인은 선의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


    니다. 예수님께서 악령들을 제거하려고 속임수를 쓴 것도 아니고, 일부러 돼지들을 죽이


    신 것도 아니지만, 더 큰 선을 이루는 과정에서 작은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


    습니다. (물론 돼지 떼 주인은 악령들이 쫓겨난 일보다도 자기의 재산 피해를 더 심각하


    게 생각하겠지만...)


 


14절-15절..(14)<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


    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은 이 모든 일의 목격자이고 증인입니다. 그들에게는 악령들이 쫓


    겨난 것보다는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물에 빠져 죽은 일이 더 놀랍고, 더 중요한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돼지 떼의 주인에게 그 일을 보고해야만 했을 것이고,


    그 일이 자기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이 일의 소문은 빠르


    게, 널리 퍼졌을 것이고,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오게 됩니다. 구경나온 사


    람들은 돼지 떼가 죽은 것 외에도 놀라운 광경을 하나 더 보게 됩니다. 즉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멀쩡하게 치유된 것을 본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 모든 일에 대해서


    뭔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예수님의 권능에 대해 공포를 느낍니다. 여기서


    '옷을 입고' 라는 말은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마귀 들린 상태에 있는 동안에는 옷을 입고


    있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루카 8,27). 그가 벌거벗은 상태로 지냈다는 것은 그의 처지가


    몹시 비참했다는 것과 그의 모습이 미친 사람과 같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옷을 입고 제


    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치유가 완전한 것이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만 겁이 났다.' 라는 말은 사람들이 악령들마저도 제압하는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


    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는 뜻입니다.


 


16절-17절..(16)<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그 일을 본 사람들'은 14절의 '돼지를 치던 이들'입니다. 소문만


    듣고 왔다가 현장 목격자들의 증언을 직접 듣게 되자 사람들은 더 큰 공포를 느끼게 되


    고, 돼지 떼가 죽음으로써 생긴 재산 피해와 예수님에 대한 공포심이 합쳐져서, 그들은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요구합니다. (새번역 성경은 '청하였다.' 라고 번역했고, 공동번역


    성서는 '간청하였다.' 라고 번역했는데, 내용을 보면 '요구했다.' 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


    할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이곳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악령을 쫓아내신 기적의


    결과를 보면서도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처럼 하느님을 찬양하거나 기적


    에 대해서 경탄하는 등의 반응도 없습니다. 아마도 원래부터 하느님을 안 믿은 사람들이


    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18절..<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


    사고 청하였다.>--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요구대로 그 지역을 떠나기 위해 배에 오르십


    니다. 그러자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가려고 합니다. 그는 당연히 예수님의


    권능을 믿었을 것이고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신 자비를 고마워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까지 인간 사회에서 추방되어서 혼자 살다가 다시 인간 사회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달라고, 즉 제자가 되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19절..<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


    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예수님께


    서 그의 청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그에게 다른 임무를 주시기 위


    한 것입니다. 즉 그는 그 자신이 바라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치유는 인간 사회로, 또는 가족과 원래의 공동체로 완전히 복


    귀하는 것까지를 포함한 것입니다. 단순히 마귀를 쫓아낸 것으로는 치유가 완결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가족에게로 돌려보내십니다. 그리


    고 그에게 하나의 임무를 주십니다. 가족들에게 '하느님께서 하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


    신 일', 즉 그를 마귀에서 해방시켜 주신 일을 알리는 임무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하느님


    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신 일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


    니다. ('가족들에게' 라는 말은 '가족들에게만'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


    님이 그에게 '널리, 많은 사람에게' 알리라고 분부하신 것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 지역에서 기적을 행하신 뒤에는 대개 침묵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는데


    이곳에서는 침묵 명령이 아니라 알리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아무래도 이곳 이방인 지역에


    서는 메시아로서의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오해받을 위험이 적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절..<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


    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즉 마귀에게서 해방시켜 주신 일을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온 지방에 널


    리 알리고 다닙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가 되고 싶은 소망은 이루지 못했지


    만 스스로 복음을 선포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선포' 라는 말은 복음 선포를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선


    포했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그는 복음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을 것


    입니다.


    '데카폴리스 지방'은 갈릴래아 호수 남쪽, 요르단 강 주변의 열 개의 도시를 가리키는 말


    입니다. 그 지방의 주민의 대부분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라는 말은 그의 선포 활동의 결과를 나타냅니다. 이 말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기적을 통해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감동'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이제 이방인들도 그의 선포 활동의 결과로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21절-43절 :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다>


 


21절..<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건너편으로 가셨다는 것


    은 앞뒤 문맥과 연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어떻든 이 구절의 내용은 앞의 17절에서 게라


    사인들이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게라사인들의 지역에서 활동을 못하고


    다시 되돌아 왔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건너편'은 마태오복음 9장 1절에 의하면


    카파르나움입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 것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원문에서는 호


    숫가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불확실합니다. (문장의 주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군


    중이 그분께 모여들어서 호숫가에 있었다.' 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갈릴래


    아 지역 사람들이 호숫가에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됩니다. 어떻게 번역하든지


    간에 갈릴래아 지역의 사람들은 게라사인들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거나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22절..<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그때 '야이로


    라는 한 회당장'이 예수님을 뵙기 위해 찾아옵니다. '회당장'은 유대교 회당의 예배를 주


    도하고 회당 건물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야이로'는 카파르나움에서 명망 있고, 신


    분이 높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자신을 낮추어서 마치 왕 앞에 신하가


    엎드리듯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립니다. 이것은 그가 지금 절박한 상태에 있으며 뭔가


    를 청하려고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23절..<"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


    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야이로가 자기의 어린 딸이 죽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의 딸이 무슨 병에 걸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이에게 손을 얹어


    달라고 청하는 것은 '안수'를 해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안수'는 축복하는 동작


    이기도 했고(10,13), 병을 고치는 동작이기도 했습니다(6,5). 야이로는 딸을 살리기 위해


    서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치료법으로도 효과를 보지


    못했고, 절망적인 심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쳐주었다는 소


    문을 들었거나, 아니면 직접 목격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에게는 예수님이 마지막 희망입


    니다. 그는 예수님께 딸에게 안수를 해서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청하


    고 있습니다.


 


24절..<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야이로를 따라나섭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군


    중은 새로운 기적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뒤따라갔다는


    뜻이지만, 다음에 나오는 하혈증 여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예비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


    습니다.


    (공동번역 성서에는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라는 구절이 23절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잘못한 일입니다. 원문에는 새번역 성경처럼 24절로 되어 있습니다.


    절 구분은 번역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25절..<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다른 기적 이야기가 겹


    쳐지고 있습니다. '하혈'은 병의 증세를 말하는 것이고, 이 여인의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습니다. 이 여인과 같은 하혈의 경우는 레위기 15장 25절에 부정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다른 사람과 접촉할 수 없었습니다. 이 여인이 열두 해


    동안이나 병을 앓았다는 것은 그만큼 심각한 중병이었다는 뜻입니다. 뒤의 42절에 야이로


    의 딸의 나이가 열두 살로 되어 있는 것과 여인이 병을 앓은 기간이 열두 해라는 것은 우


    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둘 다 상징적인 숫자로서 병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습


    니다. (12는 성경에서 주로 완전한 것을 상징하는데, 가득 찬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26절..<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당시에는 약값이 너무 비쌌고, 진료비도 비쌌기 때


    문에 부유한 사람들만이 의사를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원래 부자였다


    고 하더라도 의사들의 진찰과 진료를 받느라고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학이 발달


    하지 않았던 이천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의사들은 비싼 약값과 진료비를 받으면서


    도 병을 제대로 고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숱한 고생'을 했고, '많은 의사의 손


    에 가진 것을(재산을) 모두' 쏟아 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가 더 나빠지기만 했습


    니다. 이 여인도 야이로처럼 예수님만이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27절..<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


    었다.>--여인이 들었다는 '예수님의 소문'은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셨다는


    소문(1,34 ; 3,10)과 예수님께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소문(6,56)을 모두 가리킬


    것입니다.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라는 말은 예수님 몰래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


    려고 했음을 나타냅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몰래 만진 것은 자기의 병을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꺼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28절..<'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뒤의 6장 56절에 나오는 병자들처럼 이 여인도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을 받겠지.' 라는 말은 '병이 낫겠지.' 라


    는 뜻입니다. 이 여인에게는 병이 낫는 것이 곧 구원이었습니다.


 


29절..<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여인의 믿음은


    즉시 응답을 받았습니다. 여인은 출혈이 멈추고 병이 갑자기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낍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여인이 치유되었다는 것은 그 자신만이 입증할 수 있습니다. (병에 걸린


    부분을 공개할 수 없으니 그 병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도 여인 자신뿐이고, 그 병이


    나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여인 자신뿐입니다.)


 


30절..<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예수님의 질문은 몰라서 한 질문이 아닙니다. 여


    인과 군중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여인의 치유가 예수님의 능력을 몰래 훔쳤기 때문도


    아니고, 또 무슨 마술 같은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것임을 깨우쳐주기


    위해서입니다. 만일에 여인이 병이 나은 후에 남몰래 자취를 감추었다면 자칫 미신에 빠


    질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빠져나간 기적의 힘은 마치 자석에 쇳가루가 붙듯이


    예수님도 모르는 사이에 자동으로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신적인 권능을 행하


    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예수님께서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셨다.' 라는


    말은, 예수님도 모르는 사이에 힘이 빠져 나갔고, 힘이 나간 다음에야 예수님께서 아셨다


    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힘을 행사하셔서 치료해 주신 다음에' 라는 뜻


    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옷에 손을 대었느냐? 라고 물으신


    것은 여인이 스스로 나서게 하기 위해서 모르는 척 하고 물으신 것이 됩니다. (나중에 따


    로 여인만 부르시지 않고 군중 가운데에서 여인을 공개적으로 찾으신 것은 군중도 함께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해석됩니다.) 여기서 '힘'이라고 번역한 말을 공동번역 성서는 '기적


    의 힘'이라고 의역했는데, 원문에는 그냥 '힘(능력)'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31절..<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제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치고


    싶어서 예수님을 만지려고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군중이 예수님을 밀쳐


    대고 있습니다. 그러니 특별히 누구를 지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손을 댄 어떤 한 사람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뜻으로 반문하고 있습니다. (여기


    서 '스승님'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말은 원문에는 '당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 여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의 옷을 만지려고 했거나 만졌을 것입


    니다. 그렇다면 왜 여인만 치유를 받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 의문에 대한 대


    답이 34절입니다. 예수님의 옷을 만진다고 자동적으로, 또는 마술적으로 그냥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셔야 하고, 또 병자 자신에게 믿음이 있어야 한


    다는 것입니다.)


 


32절-33절..(32)<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예수님은 아마도 전후 사정을 다 아셨을 것이고, 손을


    댄 여인도 알아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


    셨다.'는 것은 여인이 스스로 나타날 기회를 주기 위해서 기다리신 것으로 해석됩니다. 예


    수님의 시선이 여인으로 하여금 고백하게 만듭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시선에 사로잡히듯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라는 말은 '자기의 병이


    나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라는 뜻입니다. 여인이 두려워 떠는 것은 자기가 몰래 한


    일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능을 체험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이제 여인은 예수님의 권능에 압도되어서 부끄러움도 잊어버리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모


    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33절에서 '그 부인'이라고 번역한 것은 적절하


    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계속 '그 여자' 라고 번역했으면서 여기서 갑자기 '그 부인'이라고


    한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원문의 같은 단어를 갑자기 '부인'으로 바꿔서 번역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34절..<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


    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여기서 예수님이 여인을 '딸아' 라고 부


    르신 것은 예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여인을 찾으신 것


    은 꾸짖기 위해서가 아니고 '구원'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도 나타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여인아' 라고 번역했는데, 잘못된 번역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말은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게 되었음을 확인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인의 믿음이 기적


    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여인의 믿음에 응답한 예수님의 자비와 신적인 능력이 기적을 일


    으켰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단순히 몸의 건강만 되찾은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구원을 얻


    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앞의 28절에서 여인이 생각한 '구원'은 병의 치유만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은 전인적인 구원입니다.)


    '평안히 가거라.' 라는 말은 유대인들의 인사말인 '샬롬'인데, 여기서는 병의 치유가 완전


    한 것임을 보증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라는 말은 여인의 병


    이 나았고 이제 건강하게 되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다시 확인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수건으로 예수님의 피와 땀


    을 닦아준 '베로니카' 라고 합니다.


 


35절..<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


    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하혈증을 앓는 여인 때문에 지체된 시간이 야이로에게는 참기 힘든 괴로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 사이에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말


    씀하고 계실 때에'는 '예수님과 그 여인의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입니다. 회당장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들은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음은 믿었겠지만, 예수님에게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권능이 있다고는 생


    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스승님'이라는 말은 '선생님'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친구 라자로가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시간을 끌다가 라자로가 죽은 다음에야 가셨습니다. 병을 고치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을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야이로의 딸의 병을 고치는


    것보다 더 놀라운 선물을 주시기 위해서 일부러 지체하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예수


    님께서 소녀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굳이 야이로의 집으로 가실 것까지도 없었습니다. 예


    수님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말씀 한 마디로 병을 고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 8장 5절-13절의 백인대장의 종을 고치는 이야기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집에 가지도 않으시고 그 하인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야이로의 딸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직접 집으로 가시려고 했을까? 또 비록 하혈증 앓는 여인 때문이긴 했지만, 왜


    서둘러 가시지 않고 중간에서 걸음을 멈추신 것일까? 이런 것들이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이야기 중간에 하혈증 앓는 여인의 이야기가 삽입된 이유를 짐작하게 합니다.)


 


36절..<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회당장의 집에서 온 사람들은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회당


    장에게만 전했는데, 예수님도 곁에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공동번역 성서


    는 '이 말은 들은 체도 아니하시고' 라고 번역했는데, '곁에서 듣다.' 라는 뜻의 그리스어


    단어에는 '들은 체도 아니하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딸이 죽었다


    는 소식에 완전히 절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


    기만 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걱정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라고


    번역했는데, 원문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딸이 죽


    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절망하거나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워 할


    것입니다. 그래서 '걱정하지 말고' 라는 번역은 원문과도 맞지 않고, 상황에도 맞지 않는


    잘못된 번역입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두 가지를 명령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믿어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은 절망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믿으라는 명령은


    절망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믿으라는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절망에서 인간


    을 해방시키러 오신 분이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37절..<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


    게 하셨다.>--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증인으로 선택된 제자들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 제자를 부르신 것은 이제부터 중요한 일을 하시겠다는 뜻입


    니다. 군중은 딸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실망해서 흩어졌거나, 아니면 예수님이 단순히 문


    상하러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따라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그런 군


    중은 물리치고 증인으로서 세 제자만 데리고 가십니다.


 


38절..<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당시 그곳에서는 초상이 나면 최소한 피리 부는 사람 두


    명, 곡하는 부인 한 명을 구해야 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회당장의 집에


    도 문상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외에도 곡하는 여자들과 피리 부는 사람들이 와 있었습


    니다(마태 9,23). '소란한 광경'은 당시 유대인들의 초상집 광경이 그런 이유로 해서 소란


    스러웠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은 가족들과 친지들이 슬퍼서 우는 모습 외에도


    직업적으로 곡하는 여자들이 우는 것도 가리키는 말입니다.


 


39절..<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


    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이 구절의 예수님 말씀은 장례 절차를


    중단하라는 뜻입니다.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었


    을 때 하는 것처럼 피리를 불면서 소란을 피우거나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죽음


    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래서 딸의 죽음이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예수님


    께는 죽음이란 짧은 잠과도 같은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는 죽음이란 곧 휴식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도 사랑하는 가족, 친지, 친구의 죽음을 겪을 때 슬프게 울게 됩니다.


    그건 인간의 본성상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슬픔은 이별에 대한 슬픔이고, 우리


    가 우는 것은 죽은 사람을 위해서 우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


    워하고 슬퍼해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별이 슬프기는 하지만 그 이별은 영원한 이별


    이 아닙니다.)


 


40절..<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믿음 없는 자들은


    기적에 끼어들 자격이 없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하시려고 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


    은 참된 신앙인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은 다 내보내시고, '아이의 부


    모와 세 제자'만 데리고 방에 들어가십니다. 이 다섯 명만으로도 기적을 증명할 증인으로


    는 충분했습니다.


 


41절..<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라는 말은 우리를 보호하


    고 도와주시는 야훼 하느님의 권능의 손을 연상하게 합니다. '탈리타 쿰!'은 아람어인데,


    마르코는 아람어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서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라


    고 그리스어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공동번역 성서에는 '내가 너에게 말한다.' 라는 말이


    없는데, 이것은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성경 원문대로 번역하면, '내가 너에게 말한다. 소


    녀야, 일어나라!' 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소녀야, 일어나라.' 라는 말은 원래 당시에 부모가 잠든 아이를 깨울 때 하던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말한다.' 라는 말을 덧붙이심으


    로써 이 말은 하느님의 장엄한 능력의 말씀이 되었고,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명령이 되었


    습니다. 엘리야나 엘리사나 베드로가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을 행할 때에는 열심히


    기도하면서 하느님께 청했지만, 예수님은 주님으로서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계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42절..<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


    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죽은 아이는 즉시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곧바로 일


    어서서 걸어 다녔다.' 라는 말은 소녀가 죽음에서 되살아났다는 것과 침대에서 일어났다


    는 것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소녀의 나이가 열두 살이었다고 적은 것은 실제 현장에


    서 목격한 사람의 증언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부모와 세 명의 제자가 현


    장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이가 그저 의식을 잃은 것이 아니라 확실히 죽었다는 것, 장


    례식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죽은 아이가 예수님의 명


    령 한 마디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바로 곁에서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


    뻐하는 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느님의 권능에 완전히 압도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몹시 놀라서 넋을 잃을 정도가 됩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아이의 부모와 세 제자를 가리킬 것입니다.)


 


43절..<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예수님께서는 하혈증을 앓던 여인에게는 침묵을


    지키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보고 듣는 데서 그 여자의 병


    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들은 이미 널리 소문이 퍼져 있었


    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죽은 소녀를 다시 살린 일은 비밀을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일


    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나 설명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


    입니다. 아이의 부모는 넋을 잃을 정도로 너무 놀라서 딸이 오래 전부터 음식을 먹지 못


    한 것을 잊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든 여기서 예수님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


    시는 것은 소녀의 영혼과 육체가 완전히, 실제로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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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희망과 믿음, 그리고 사랑"


 


희망이란 희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절망뿐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과 믿음과 사랑은 위대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할 때,


우리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포기한 일에 대해서


만일에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포기한다면 우리는 신앙인이 아닙니다.


이것은 쓸데없는 집착이나 고집과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믿음이고 희망입니다.


 


내가 정말 하느님 쪽에 서 있고,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임이 분명하다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데, 왜 우리가 스스로 포기합니까?


 


우리는 죽을 곳에서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아무에게도 버림받은 적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믿음이 있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이 정말 희망과 사랑이 가득 찬, 한 번 살아볼만한 곳입니다.


예수님이 곁에 계시기 때문에...


 


생활성가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가 밤길을 홀로 걸을 때 누군가 등불 밝혀주는 이 있음을...


내가 외로움에 떨고 있을 때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는 이 있음을..."


그 '누군가'는 예수님입니다.


 


2006. 5. 27.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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