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54. 한 백성이 되는 영적 기쁨
▲ 참다운 복음 선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사랑과 용서의 뜨거운 시선으로 군중을 바라보고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자비의 눈길을 건네야 한다.
교황은 선교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두 번째 동기로 ‘한 백성이 되는 영적 기쁨’을 설명했다. ‘한 백성’의 의미는 ‘한 하느님 백성’이라는 말이다. 선교사는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 태어날 때마다 영적 기쁨에 충만케 된다. 이 기쁨은 지칠 줄 모르는 추진력을 제공해 준다. 선교사 자신을 선택된 사람으로 느끼게 하여 또 다른 백성을 찾아 나서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다운 복음 선포자는 세상 만민을 모두 하느님 백성으로 여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세상 끝까지 나아가 하느님 말씀을 전하여 그들을 하느님 백성으로 만든다. 베드로 사도가 하신 말씀을 들어 보자. “여러분은 한때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분의 백성입니다”(1베드 2,10).
백성 한가운데서 맛보는 영적 기쁨
교황은 ‘한 백성이 되는 영적 기쁨’을 맛본 자는 선교 열정의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이것이 새로운 동인이 되어 복음 선포자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다. 한 백성이 되는 영적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백성 한가운데 존재해야 한다. 그곳에서 백성의 애환을 들어주고, 상처를 치유하여 주며, 그들에게 영원한 삶의 가치를 선포해야 한다. 마음으로 믿고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난 백성이 생길 때, 그 기쁨은 그 공동체를 더욱 풍요롭고 힘 있게 만든다. 복음 선포자는 그들 한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한다.
교황은 참다운 복음 선포자가 되려면, 사람들의 삶에 가까이 머무는 영적인 맛을 들이고, 이것이 더 큰 기쁨의 원천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하여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우리가 눈을 떠 다른 이를 알아볼 때, 우리 신앙의 빛이 더욱 밝아져 하느님을 알아 뵙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영성 생활에서 성장하기를 바라면, 끊임없이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화 활동은 정신과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고, 마음의 지평을 열어 주며, 성령의 활동을 더욱 민감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우리의 제한된 영적 도식을 뛰어넘게 해 줍니다. … 다른 이들에게서 도망치고, 숨고, 나누는 것도, 주는 것도 거부하고, 자신의 안위에 갇혀 있다면, 그 누구도 더 잘 살지 못합니다. 그러한 삶은 서서히 이루어지는 자살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272항).
참다운 복음 선포자 예수 그리스도
교황이 설명하는 참다운 복음 선포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의 삶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예수님의 삶은 백성 한가운데 존재하는 삶이었다. 은수자(隱修者, eremita)나 독수자(獨修者, anachorita)로 지내며 수도 생활을 하신 것이 아니다. 사랑과 용서의 뜨거운 시선으로 군중을 바라보시고, 당신께 다가오는 사람들, 당신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자비의 눈길을 주신 분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셨다”(마르 10,21). “예수님께서 눈먼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실 때(마르 10,46) 그리고 사람들이 당신을 먹보요 술꾼이라고 생각할까 걱정하지 않으시고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마르 2,16 참조), 우리는 그분께서 얼마나 다가가기 쉬운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인 여자가 당신 발에 향유를 바르도록 놓아두실 때(루카 7,36-50 참조), 밤에 찾아온 니코데모를 맞이하실 때(요한 3,1-15 참조), 우리는 예수님께서 늘 열려 계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236항).
관리자와 복음 선포자의 차이
일선 본당의 사제들은 최전방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과 밀도 있는 만남을 하도록 주문받는다. 예수님 자비의 시선으로 하느님 백성을 보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성 한가운데 존재하기 위해서 가정 방문은 기본이다. 사목자가 가정 방문을 하지 않는다면, 관리자로 머물 뿐이다.
“신자들에게서 도망치고 숨고 나누는 것도 주는 것도 거부하고 자신의 안위에 갇혀 있다면 그 누구도 더 잘 살지 못합니다. 그러한 삶은 서서히 이루어지는 자살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272). 사목자들은 “빛을 비추고, 복을 빌어 주고, 활기를 불어넣고, 일으켜 세우고, 치유하고, 해방시키는 사명으로 날인된 이들, 심지어 낙인찍힌 이들로 자신을 여겨야 합니다”(273항).
홍기선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평화신문, 2016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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