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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인물 이야기: 엘리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10-24 조회수2,653 추천수0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엘리야 (1)

 

 

이제부터 구약 전체를 대표하여 거룩하게 변모하신 예수님을 만날 자격을 갖춘 사람, 모든 예언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엘리야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엘리야는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는 히브리어로 ‘나비’인데, 이 단어는 말하는 자. 영감을 받은 자를 뜻합니다. 둘을 합치면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말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언자는 미래의 일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아맞히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미래를 피하고 행복한 미래를 선택하게 인도하는 것이 이스라엘 예언자의 목적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언자가 보는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미래입니다. 이것이 예언 문학과 고정된 미래를 보여주는 묵시 문학과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맞이할 수도 있는 불행한 미래를 피하게 하려고 하느님께 대한 불충, 부정, 불의, 부패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한 것입니다.

 

엘리야 이름은 ‘야훼는 하느님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좀 더 의미를 살린다면 ‘오직 야훼만이 나의 하느님’이 되겠습니다. 유일한 하느님을 향한 열정이 잘 드러나는 이름입니다.

 

그는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이 분열을 겪은 뒤 사마리아를 수도로 하여 세워진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기원전 9세기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이 시기에 북이스라엘은 큰 번영을 누렸습니다. 국경을 위협할 만한 주변 강대국의 부재,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잇는 국제교역로의 독점, 갈릴래아 호수의 풍요로운 수자원과 ‘하느님께서 씨를 뿌리신다’라는 이름을 가질 정도로 비옥한 이즈르엘 평야 덕분에 군사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를 누린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적 타락은 그 정도가 점점 더 극심해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합왕이 왕비로 맞아들인 페니키아 여인 이제벨로 인하여 온 나라가 바알 우상숭배의 광풍에 휩싸였습니다.

 

비를 내리는 신인 바알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농경 중심이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명 매력적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꼭 하느님을 완전히 버리고 대신 바알을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두 신을 함께 섬기는 종교혼합주의도 우상숭배의 한 형태입니다. [2022년 10월 23일(다해) 연중 제30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 전교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엘리야 (2)

 

 

유례없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된 이답게 엘리야는 여느 예언자들과 비교조차 어려운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중 먼저 엘리야의 활동 초기에 있었던 일련의 놀라운 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열왕 17장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에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기근이 들었을 때, 처음에는 까마귀가 빵과 고기를 엘리야에게 날라주었습니다.

 

그러다 사렙타 과부의 집으로 옮긴 뒤에는 엘리야가 떠날 때까지 그 가난한 집의 기름과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일어난 일은 진정 이전에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일입니다. 엘리야가 사렙타 과부의 아들을 소생시킨 것입니다. 참고로 소생(蘇生)은 부활(復活)과 다릅니다. 소생은 단순히 현재 삶으로 일시적으로 회귀하는 것인데, 부활은 전혀 다른 존재 양식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생 기적은 엘리야가 죽은 아들의 몸에 자기 몸을 세 번 겹치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 특이한 행위는 수메르의 쐐기문자 점토판에 기록된 한 주술적인 행위와 유사합니다. 이는 주술사가 신체의 각 부위를 맞댐으로써 주술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억압하고 있는 악한 기운을 자기 몸에 받아들여 풀어내는 고대의 공감 주술입니다.

 

우리 성경에 이런 일이 나온다는 것이,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예언자 엘리야가 그 일을 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이 보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구약성경에는 운세 풀이만 보아도 고백성사를 청하는 많은 순박한 그리스도인들이 기막혀할 만한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행위가 이방 주술과 비슷한 것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어떤 형태의 기적이든 그 일을 가능케 하는 힘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주술적 행위는 사렙타 과부에게서 하느님 신앙 고백을 끌어내게 됩니다: “이제야 저는 어르신께서 하느님의 사람이시며, 어르신 입으로 전하신 주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1열왕 17,24) [2022년 10월 30일(다해) 연중 제31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엘리야 (3)

 

 

1열왕 18장도 경이로운 사건 하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근이 끝나자 엘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과 페니키아의 경계, 즉 야훼 하느님과 바알 사이의 중립 지역에 있는 해발 400m 높이의 카르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예언자 850명과 대결을 벌입니다.

 

각자 하느님과 바알에게 기도해서 제물에 불을 붙이는 내기를 통해 누가 참된 신인지를 가리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은 공정한 대결처럼 보이지만, 페니키아인들은 비가 자주 내리는 카르멜산(수량이 풍부해서 지중해 해안의 도시 카이사리아까지 도수교를 연결해 물을 끌어다 썼을 정도입니다)이 천둥과 번개의 신인 바알의 성소라 믿고 있었기에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바알은 자기 예언자들의 기도에 침묵하기만 합니다. 심지어 절뚝거리며 제단을 돌고(이것은 광란의 춤을 뜻합니다) 창과 칼로 제 몸까지 찔러대며 난리를 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실패한 뒤, 엘리야는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고는 이상한 일을 합니다. 불을 붙여야 할 장작과 제물에 철철 넘치도록 물을 부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하느님께는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권능을 드러내는 탁월한 방법이 됩니다.

 

성경은 하느님께 바쳐진 제물을 태운 불이 자연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제단을 쌓았던 돌까지 녹여버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불임에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무사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앞에서 이 엄청난 기적을 본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모두 죽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스라엘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불행히도, 그러기에는 이제벨 왕비의 우상에 대한 맹목적 믿음과 그런 이제벨을 향한 아합왕의 집착이 너무나 강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엘리야 예언자가 살해 위협을 받고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피하고 피하다가 결국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의 남쪽 끝 시나이산의 다른 이름인 호렙산으로 도피합니다. 거기서 엘리야는 하느님께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제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1열왕 19,4) [2022년 11월 6일(다해)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엘리야 (4)

 

 

시나이산까지 도망쳐 온 엘리야는 단지 지치고 두려운 것뿐 아니라,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결코 부술 수 없는 바위 앞에 선 것만 같은 좌절감을 느꼈기에 하느님께 차라리 죽음을 청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엘리야를 하느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이전 모세 시대에 시나이산에서처럼 강한 바람, 지진, 불 속에 현존하시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유다 전승 미드라시는 하느님께서 불안해하는 엘리야의 영혼을 위로하시기 위해 성경의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이 특별한 만남의 방법을 선택하셨다고 합니다. 이 방법은 확실한 효력을 냅니다! 하느님을 만난 엘리야 예언자가 다시 용기를 내어 일어서 이스라엘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온 엘리야 앞에 펼쳐진 이스라엘의 상황은 이전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1열왕 21장이 전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우상숭배가 다시 극성일 뿐 아니라 기본적인 사회적 정의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성을 올바로 이끌어야 할 왕부터 먼저 정의를 저버렸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이 탐난 아합왕이 그에게 땅을 바꾸자고 제안하지만, 나봇은 거절합니다. 거절의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든 땅은 하느님의 것이기에 인간은 경작할 수 있을 뿐 사고파는 거래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레위 25,23). 왕이 율법의 근본적인 규정까지 망각해버린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외에도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이유가 하나 더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고대의 법에 따르면, 왕에게 땅을 하사받으면 그의 신하가 되어 공납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니 나봇은 그의 것과 똑같은 혹은 더 크고 양질의 땅을 받는다고 해도 세금이 면제된 자유인에서 공납을 바쳐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 싫었으리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나봇의 땅이 꼭 갖고 싶었던 아합왕은 결국 아내 이제벨의 계략을 따라 그를 모함해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습니다. 이 비극을 본 엘리야는 목숨을 걸고 이 폭군의 비참한 최후를 예언합니다. 그리고 아합왕은 결국 예언된 대로 죽습니다. 물론 모든 악의 근원과도 같았던 이제벨은 더 비참하게 죽어서 들개 밥이 됩니다. [2022년 11월 13일(다해)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엘리야 (5)

 

 

지상에서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끝나갈 때, 엘리야 예언자는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웁니다: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 주십시오.”(2열왕 2,9) 이 말씀은 유산을 아들 숫자+1로 나누어 다른 아들들에게는 한 몫씩을 주고 장자에게만 두 몫을 주는 이스라엘의 상속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후 엘리야는 불마차를 타고 하늘에 올라갑니다. 유다 신비주의 전통은 이때 엘리야의 육신은 타서 사라지고 영만 남아 천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엘리야가 죽지 않고 승천했기에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리라는 전승이 생겨납니다.

 

엘리야 예언자의 일생은 한결같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절망을 경험하기는 했어도 결코 불의와 타협하거나 악에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초지일관 하느님의 의로움을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엘리야의 모습은 우리처럼 내면에 음영을 간직한 다른 성경 인물들과 비교할 때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입니다. 그러니 그가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신비롭게 하늘에 올라갔다는 성경의 놀라운 기록조차 그리 어색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엘리야 예언자의 특별함은 시대적 배경 안에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엘리야 시대는 이스라엘에서 하느님 신앙이 뿌리째 뽑혀 나갈 수도 있었던 때였습니다. 즉, 엘리야는 하느님께서 큰 위기를 맞이한 이스라엘에 내려주신 특별한 선물이었다는 말입니다.

 

유다인들은 매년 파스카 만찬 때 식탁 위에 포도주 한잔을 따라놓고는 문을 열어놓고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마지막 예언서인 말라키서의 끝부분이 기록한 대로 승천한 엘리야가 어서 이 땅에 돌아와서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알려주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말라 3,23) 민족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원된 사건을 기념하는 파스카에 궁극적인 구원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아직 그를 만나지 못했기에, 매주 안식일을 마칠 때마다 엘리야를 향해 “저희의 때에 속히 오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그가 이미 왔다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라는 말이죠: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마태 11,14) [2022년 11월 20일(다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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