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6)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세례와 믿음으로 의화 은총을 받아라 -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모든 이가 그분을 통해 의화된다면서 교회 공동체 구성원 간의 화해와 일치를 촉구합니다. 로마 교회 신자들을 대표하는 성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 이콘. 신약 성경에서 바오로 사도의 서간(바오로 친서와 차명 서간들)은 히브리서와 가톨릭 서간(야고보 서간, 베드로의 첫째·둘째 서간, 요한의 첫째·둘째 서간)을 제외한 13권을 가리킵니다. 이 중 로마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과 함께 바오로 사도 서간 가운데 가장 긴 편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를 ‘나의 복음’(2,16; 16,25. 「200주년 신약 성서」)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만큼 로마서는 바오로 사도가 쓴 서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서간입니다. 이 서간은 무엇보다 로마 교회 초기 상황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으며 바오로 사도가 선포하는 복음의 핵심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로마서를 바오로 사도의 서간 가운데 첫째 서간으로 신약 성경 정경 목록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Ρωμαιοψs’(프로스 로마이우스-로마인들에게),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Romano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로마서는 제목 그대로 바오로 사도가 로마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간입니다. 사도행전은 로마에 거주하는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베드로 사도의 오순절 설교를 듣고 세례받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다고 증언합니다.(사도 2,10-11.41) 이들이 삶의 자리인 로마로 다시 돌아가서 그리스도인 공동체, 곧 교회를 세운 것이죠. 그래서 로마 교회를 베드로 사도가 세웠다고 하지요.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을 방문하고 싶어 했지만 여러 번 좌절됐습니다.(1,13; 15,22-23)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할 말을 편지로 대신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을 위한 자신의 사도직을 알리면서(1,5-6; 15,15-16) 직접 로마로 가서 성령의 은사를 나누고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1,10-15)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가이오스의 집에 머물면서 테르티우스에게 로마서를 받아쓰게 했습니다.(16,22-23; 1코린 1,14-15 참조)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복음 선포에 있어 전환점을 이룬 시기에 로마서를 썼습니다. 그는 제3차 선교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3개월간 코린토에서 지냈습니다.(사도 20,3) 코린토에 머물면서 바오로 사도는 자기가 동방에서 수행해야 할 선교 사명을 마쳤다고 판단했습니다.(15,19-20) 그래서 이제는 서방에 복음을 선포할 선교 여행 계획을 세웁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로마와 에스파냐를 향해 있었습니다.(15,24) 그러면서도 그는 예루살렘을 가는 마지막 여행을 어떻게 잘 마무리할지 염려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까닭은 그곳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방에서 자신이 모금한 헌금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동방에서 그의 마지막 사명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루살렘에서 겪게 될 어려움을 예감했습니다.(15,30-31) 이러한 두려움은 사도행전에서도 확인됩니다.(사도 20,22-23) 바로 이 시기에 로마서가 쓰였습니다.(15,25-33) 성경학자들은 로마서가 쓰인 이때를 네로 황제가 통치하던 55/56년 봄이나 늦으면 57/58년 봄으로 봅니다. 로마서는 16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교리(1-11장)와 권고(12-16장) 편으로 구분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1-8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가 그분을 통해 ‘의화’된다고 합니다.(3,21-4,25) 첫 아담에 의해 인류 공통의 곤궁(5,1-14)과 예수 그리스도와 이루는 연대를 통한 인류 구원(5,15-6,23)도 설명합니다. 또 율법의 종이 된 인류는(7,1-25) 성령에 의해 해방됩니다.(8,1-39) 9-11장은 독립된 단락입니다.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써 야기된 이스라엘의 곤궁(9-10장)과 유다인들과 다른 민족들로 구성된 새 이스라엘에 궁극적으로 구원이 열렸다고 합니다.(11장) 12-16장에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일상 속에 살아가도록 당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욕심을 포기하고 다른 이들의 이익을 추구하며 연대성을 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피하는 데 전념하라고 권고합니다. 당시 로마 교회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과 로마에서 추방됐다가 다시 돌아온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간의 갈등으로 분열돼 있었습니다.(11,17-25; 14,3.10; 15,25-27)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화해할 것을 촉구합니다. 아울러 둘은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사실을 자각하도록 그들을 인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15,7)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의화’(justificatio·義化)와 ''구원’,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교 신앙’ 문제를 다룹니다.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뒤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총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고 세례를 통하여”(6,3-4)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3,22)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 의화 은총으로 우리는 죄로부터 회복됩니다. 계명 준수가 영성 생활에 ‘필수적’(essential)이라면 의화 은총은 ‘근본적’(fundamental)인 것입니다. 따라서 의화 은총은 사랑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6월 9일, 리길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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