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論戰]아래 개신교 신자의 편지에 대한 답변입니다.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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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성훈 | 작성일1999-08-19 | 조회수3,067 | 추천수10 | 신고 | |
먼저 제 글을 읽고 메일을 주신 갈라진 형제 정승민 님의 글을 잘 읽어보았습니다.
인사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다소 제 글을 읽고 심적으로 당혹 감을 느끼셨는지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감정을 가지게 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개신교 신자들에게 어떤 나쁜 감정 을 가지고서 그러한 글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개신교의 교리상의 문제점과 그러한 오 류를 역사적 관점에서 논의한 것을 먼저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개신교 신자인 님을 비롯한 프로테스탄트 여러분의 생각과 신앙심과 신앙행위에 대해 존중하고 있다 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그러므로 제 글에서 어떠한 표현이 어떻게 해서 구 체적으로 틀리다는 것인지 명확하게 지적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단순히 님의 견해만으로 옳지 않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저를 비롯한 가톨릭 신자들에 겐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두셨으면 좋겠군요. 그 밑의 다른 많은 글 들도 있는데 유독 교황의 교도권에 대한 부분만 읽어보시고서 마치 가톨릭 교리를 다 아는 것마냥 말씀하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물론 제 임의로 글을 올리고 저의 개인적 견해를 마치 공식적인 가톨릭의 입장인 것 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님의 글대로 선인(?) 이나 격언을 적당히 쓴 것은 독자를 우롱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는 의견에는 전 분명히 동감할 수 없습니다. 제가 님의 생각이 맞다 틀렸다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말이 되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 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가톨릭은(님이 자꾸 말씀하시는 카톨릭은 사실 틀린 표현 입니다. 그냥 catholic을 우리말식대로 발음나는 대로 이야기하신 것 같은데 그렇게 표현하실려면 저희 교회의 정확한 명칭부터 아시고서 교회의 입장에 대해 비판을 하 시든 해야 순서가 아니겠습니까? 저희 교회의 정식 명칭은 라틴어로 Ecclesia Catho lica Romana 이며 우리 국어 표현으로는 로마 가톨릭, 가톨릭, 천주교가 맞는 표현입 니다.)
저의 글에서 지칭한 개신교단의 명칭 중 잘못 표현한 것은 없다는 것을 이미 제 글 을 보셨으니 아셨으리라 믿습니다. 자꾸만 교황의 교도권에 대해 불쾌감을 가지고 계 신 것 같아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교황의 교도권은 오로지 신앙과 도덕 윤리의 문제 에만 적용되는 것이며 그것이 중세시대 교황의 권위가 속권까지 미쳤을 때에도 예외 는 아니었다는 것은 역사적 문헌을 통해 그것도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측의 역사가들 이 증언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렇다고 교황들이 모두 다 성인이거나 도덕적으로 훌륭 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님께서 신봉하시는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나 대다수 경건한 프로테스탄트조차도 교황에 대해 그릇된 역사 인식을 하 고 있는데 대해서는 참으로 개탄스러울 뿐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교황의 교도권과 교황의 무류성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마냥 그 러고 보니 님은 제 글을 끝까지 읽어보실 시간이 없으셨는지 모르나 제 글에서 이미 분명히 밝혔거니와 가톨릭의 교리상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교황의 교 도권과 무류성은 오로지 로마 교회의 성좌에서 신앙과 도덕에 대해 전 신자를 대상으 로 해서 교회 전체를 대표함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을 때 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교 황 개인의 사적인 타락과 교황의 언행의 잘못과 연관 짓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은 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나 생각됩니다.
교황 개인의 사적인 행동은 교황의 무류성과 교도권과는 아무 연관이 없으며 교황은 완벽한 인격의 소유자라든가 죄를 짓지 않는다거나 혹은 죄를 지어도 괜찮은 거라는 식의 사고를 하고 계신다면 그것은 님께서 교황의 무류성과 교도권에 대해 완전히 잘 못 알고 있다는 반증일 따름입니다. 편견없이 다시 한번 저의 글을 찬찬히 읽어보시고 나서 님의 생각과 다른 게 있다면 그것은 이제까지 님을 사로잡아왔던 가톨릭에 대한 중상 모략과 편견 그리고 선입견에 크게 영향받은 것을 인정하신다면 님은 조금은 더 자유롭게 사물을 보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십자군 전쟁, 마녀 사냥, 천동설, 지동설 종교 재판등의 문제에서 가 톨릭이 완전히 자유로운 입장에 있다고 글을 쓴 적은 없습니다. 여기서 잠깐 부연해 서 말씀드리면 십자군은 원래 가톨릭의 시대에 만들어진 성지 탈환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도 요즈음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집회나 우리나라의 프로테스탄트 대 학생 선교 단체 이름을 보면 이상하게도 십자군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더군요.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요? 우리 가톨릭은 십자군의 목적은 의로웠다고 보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난 불상사와 과오에 대해서는 이미 반성과 함께 아랍제국에게 끼친 십자군의 잔 악한 행위에 대해 사과를 했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님이 생각하시는 역사의 상당부분이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왜곡되고 잘못 알려져 온 것을 알고 있는 10억이 넘는 가톨릭 신자들은 프로테스탄트 형제들을 증오하거나 그 들을 가톨릭으로 반드시 개종시켜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종교 편협주의자가 아닙니다. 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셨으니 말씀드리자면 종교 재판 (특히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많이 행해졌던)의 경우 독일의 개신교 측의 역사가 랑케의 저서 ’오토만과 스페인 제 국(Ottoman and Spanish Empire)’에서 이 재판은 종교적이 아닌 왕과 제후들의 명령 으로 인해 성립된 것을 분명히 밝혀두고 있습니다. 세인들의 생각처럼 가톨릭 교회가 그리고 교황이 나서서 종교 재판을 하도록 한 적은 없다는 말입니다.
역사적 문헌을 한 번 도서관에 가셔서 진지하게 검토해보십시오. 교황청에서 스페인 과 프랑스 그리고 유럽 각지에 사절을 보내서 종교 재판을 하지 말도록 엄금한 사실은 있어도 종교 재판을 열도록 명령한 적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왜 그토록 마녀 사냥과 종교 재판이 횡행했나 하는 것은 어쩌면 교회의 무력함 이 더 큰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님이 좋아하시는 현 시대에 비추어 말씀드리면 현재 진행 중인 독일의 네오 나치즘과 신나치를 자처하는 이들이 벌이는 외국인에 대한 테러를 독일의 가톨릭 교회나 프로테 스탄트 각 교파들이 보고서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과거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것을 가톨릭 교회가 어떻게 막을 수 없었 다는 사실은 님의 견해처럼 가톨릭이 세속적인 권력을 가지고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종 교가 아님을 반증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톨릭은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종교이며 그 사실이 중세 시대 교황의 권위가 속 세의 황제의 권위를 능가한 적이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엔 진리 에 대해 무엇인지 연구해보기보다는 그냥 막연히 자기 생각에는 이러한 것이 진리일 것 이라고 생각하거나 대다수의 남들이 말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진리일 것이라는 우상 숭배하는 식의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님이 말씀하신 부분을 다시 한번 그대로 아래 인용해 보겠습니다. 상당부분 잘 못 이해하고 있으며 어느 부분은 완전히 역사적 진실과 반대로 알고 계시는 것을 알게 되어 심히 유감입니다.
님의 글 중에서 가장 상위계급(?) 교황의 교도권이 오류가 없다는 것을 잘못 이해했음 이 이미 나타나고 있음을 그 다음의 글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교황의 잘못이 다른 형제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제가 말한 적도 없으며 그 밑의 하위계층(?)에서 오류 를 차단했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말한 것인지 가톨릭 신자인 저로서는 도대체 알 수 없군요.
님께서 근거자료로 삼는 가톨릭 비판서적은 저도 이미 다 섭렵했다고 여겨지는데도 님의 표현은 상당히 비약적인 부분이 눈에 띄는군요. 저는 상위계급의 교황이라는 말과 하위 계층(?)이라고 글을 쓰신 의도를 잘 모르겠으나 가톨릭에 대해 무언가 잘못된 이해로 일 관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남의 종교를 이러쿵 저러쿵 말한다는 것은 어쩌면 상당히 어불성설일 수도 있으나 제가 올린 글들은 님처럼 확고부동한 프로테스탄트 신자를 위한 글이라기보다는 교리에 둔감한 가톨릭 신자들과 예비자들 그리고 비종교인 중에서 특별히 가톨릭에 대해 좀더 알기 원하 는 사람들과 그리고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와의 차이에 대해 알려고 하는 이들을 위한 글 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이미 수사님과 신부님의 검증을 거쳐 문제될 내용들은 전혀 없 었으며 모두 필자의 개인적 감정은 들어가 있지 않는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Catechismus) 를 바탕으로 옮겨 적어놓은 것이니만큼 님의 그러한 생각이 저 개인의 입장에 반하는 것 이 아닌 전체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 반대된다는 것만큼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님께서 거론한 마녀 사냥은 역사적으로 볼 때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 측 다 저질렀던 과오이며 그 정도를 놓고 비교해 볼 때 님께는 안 된 이야기지만 가톨릭에서보 다 프로테스탄트에서 훨씬 더 가혹했으며 그것은 주홍글씨라는 소설로 그리고 얼마전 영 화로도 만들어졌을 정도로 유럽과 신대륙 미국에서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자행된 마녀 사 냥과 종교 재판이 얼마나 광란적이었나 하는 것은 조금만 자료를 찾아보면 종파에 관계 없이 모든 역사가들이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정당한 교부를 자꾸 운운하셨는데 도대체 그리스도교의 초대 교부들이 모두 가톨릭 교 회의 주교들이었음을 아시고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까? 2000년의 역사를 지닌 가톨릭 교회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이며 사도들에 의해 인도되어 왔고 하느님이 정해주신 교계 제도와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루터파라는 최초의 개신교가 출현 한 1517년 이전에 이미 15세기동안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라는 위대한 사명을 수행해 왔 음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님의 역사 인식은 전형적인 프로테스 탄트의 그것을 보여주고 있으나 서구 세계 즉 크리스트교 세계(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서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지는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당장 성당 에서 미사드리자고 할 테니까요. 이건 제 친구(개신교 신자)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경험담 입니다.
셋째로 천동설과 지동설에 대해 완전히 잘못 알고 계시는 데 대해서도 한 마디 말씀드려 야 겠군요. 교회에서 천동설과 지동설 양쪽을 놓고 어느 것을 인정할 것인가 하는 토론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며 물론 천동설을 지지한 것처럼 역사에 남아있는 부분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전말을 자세히 알게 되면 프로테스탄트인 님께서는 아마도 깜짝 놀랄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말씀드리기로 하고 가톨릭과 대치되는(?) 논리적 과학 운운하셨 는데 필자는 과학을 전공하는 과학도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과학에 대해 반대하는 종파 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도대체 님이 말씀하신 것 모두를 다 거론하자니 자꾸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님 이 잘못 알고 계시는 것에 대한 저의 지적이 님의 인격에 대한 비난은 아니라는 점을 다 시 한번 말씀드리며 프로테스탄트의 교리와 사상이 틀린 점을 지적한 것 또한 프로테스탄 트 각 신자의 인격과는 무관함을 거듭 강조하는 바입니다.
마치 수학 문제를 잘못 푼 학생을 나무랄 때 그 학생의 인격과는 무관한 오류에 대한 지적일 따름이라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백과 사전을 뒤져서 원리주의, 근본주의라는 단어를 찾아보십시오. 그 말의 어원을 찾다보면 근대과학에 반대하고 신의 섭리, 성경에 모든 것을 맡기는 주의 주장이라고 되 어 있을 것입니다. 물론 프로테스탄트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 이후로 이슬람에서 개신교 근본주의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이슬람 근본주의, 요즈음은 이슬람 원리주의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발전된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요즈음 개신교에서는 근본주의라는 표현의 어감이 안 좋게 들린다고 느꼈던지 복음주의라는 말로 대체해서 쓴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무튼 표현이야 그렇고 내용은 같은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만 말씀드립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개신교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나 감정도 없습니다. 사실 수많은 개신교의 교단에 질린 상태이고 어렸을 적부터 철저하게 반교황주의자로 자라온 저였기에 님의 그러 한 반가톨릭 감정을 필자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무엇인지 뜬구름 찾는 개신 교 형제들에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개신교의 오류는 개신교를 하느님의 종교 로 알고서 찾아간 신자 각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갈라진 형제들과 언젠가 같 은 우리 안에서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는 날이 올 거라 믿고 그리스도교의 재일치를 위해 오늘도 10억이 넘는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중에 그리고 일상 생활중에 기도하고 있으 며 저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님이 가톨릭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한 글을 올려주신다고 하셨는데 님께서 그런 수고를 괜히 하신다면 그건 저로서는 상당히 미안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대로 이제부터 통신상에서 공부하신다고 하기에 제가 듣기엔 무슨 성경 공부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어찌되었건 참고로 님께서 아마도 보셨거나 보실 가톨릭 비판 서적을 제가 참고 삼아 (예전에 흥미있게 본 기억이 있는 자료를) 모두 말씀드릴 테니 참고하시고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것은 제가 이 정도의 개신교측의 자료를 본 것 만 큼 님께서 공부하시는 기회에 가톨릭 측의 자료를 보시기를 당부드리는 바입니다.
그래야 필자는 가톨릭에 치우친 관점으로 글을 올려서 님을 비롯한 프로테스탄트 형제 들에게 누를 끼쳤을지 모르나 님께서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사물을 비판할 수 있지 않겠 습니까?
아래는 제가 이제껏 보아온 개신교 측의 국내외의 가톨릭 비판 서적입니다.
「크루세이더 만화시리즈 18권(생명의 서신 출판사 간)」,「알베르토 이야기 가 사실인가(시드니 헌터, 서달석 역, 1990)」,「베일 벗은 바티칸의 비밀 큰 바벨론(알베르토 리베라)」,「바티칸 검은 교황 제수이트의 비밀(에드몽 파리, 서달석 역, 1990)」,「공산주의 또 다른 배후(프랭크 L. 프리톤, 송용구 역, 1991)」,「유럽의 독거미 바티칸- 바티카누스 악령의 처소(에드몽 파리, 서치 원 역, 1991)」,「유럽 통합과 세계총통(J. R. 처치)」,「유라시아(구영재)」, 「로마 가톨릭에서 그리스도인으로(클락 버터필드)」,「누룩에 취한 교회(윌슨 어윈)」,「바티칸 대학살(아브로 맨해튼)」,「로마 가톨릭주의의 정체(랄프 우 드로우, 안금영 역, 서울, 도서출판 태화, 1984)」,「중동의 음모」,「하늘의 아버지들」,「악령의 처소」, 천주교를 배격하는 7가지 이유(유선호, 할렐루야 서원, 1985(초판) 1991(8판)」,「천주교도 기독교인가? (유선호, 할렐루야 서원, 1984(초판), 1991(5판)」,「666의 세계 지배전략(오니쓰까 이소이찌, 이광원 역, 오메가, 1989」
이상이 제가 보아온 개신교 측의 가톨릭 비방 서적이니만큼 님께서 괜시리 수고를 안하셔도 님이 조목조목 따지실 내용을 모르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겠지요?
책 이야기는 여기서 접고 천동설과 지동설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프로테스탄트들의 공 식적인 입장은 무엇인지 저로서는 잘 파악이 되지 않는군요. 그 이유는 해가 바뀔 적 마다 말을 달리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갈릴레이 시대부터 살아왔다면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소상히 직접 증언해드리겠지만 설사 제가 그 시대부터 살아 오지 않았다고 해도 역사 자료의 한결같은 증언을 들어봅시다.
님을 비롯한 프로테스탄트 형제들은 걸핏하면 갈릴레이 사건을 예로 들어 과학과 종 교(특별히 가톨릭을 지칭하는 말이지만)는 반대된다는 것을 전가의 보도마냥 들먹입니 다. 갈라진 형제들은 가톨릭에서는 천문학 연구를 방해하고 갈릴레이와 같은 천문학자 를 잔인하게 박해하였는데, 종교 개혁 이후 자유로운 연구는 개방되어 지동설은 드디어 확립되었다고 말합니다. 또 세간에 많은 일반인들도 그 말을 믿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갈릴레이를 중심으로 한 지동설의 진상을 말하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 는 것마냥 지동설하면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말고는 달리 다른 이들은 지동설을 주장 한 사람은 중세에 없었다고 일반인들은 알고 있으나 사실은 이와는 정반대로 이미 가톨 릭의 많은 교회 학자들이 갈릴레이보다 훨씬 이전에 지동설에 대해 연구를 했고 논문을 발표했었습니다. 그 역사적 자료를 공개합니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1564년에 태어나고 1642년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13세기 에 영국의 프란치스코회의 수도자 로저 베이컨은(Roger Bacon, 1214-1294) 은 벌써 천동 설은 천체의 여러 현상을 설명함에 있어 부족한 것을 지적하였고, 1377년에 프랑스 리지 외의 주교가 된 니콜 오렘(Nicole Oresme)은 그의 저서 ’하늘과 세계’에서 지구의 일주 운동을 논파하여 지동설을 말했고, 독일에서는 니콜라우스 쿠사누스(Nicolaus Cusanus, 1401-1464) 추기경이 고전을 연구하던 중 아리스타르코스의 지동설에 공감하여 이를 주 장하였는데, 그 당시 교황 에우제니오 4세는 개인적으로 이를 찬성하였고, 그 후 폴란드 의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1473-1543) 신부는 지동설을 주장하는 소책자를 내어 이름 을 떨치다가 뒤에 ’천체 운동에 대하여(De revolutione orbium coelestium)’를 저술하여 자기 소신을 피력하였습니다. 이 책은 비록 그가 죽은 다음 1543년에야 발표되었지만 그 저서의 간행은 쇤베르크(Schonberg) 추기경과 티드만 기제(Tiedmann Giese) 주교의 요청 에 의해서 되었고, 또 교황 바오로 3세에게 헌정 가납(嘉納)되기도 할 정도로 교회 내에 서 인정을 받았음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 지동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교회 내 도처에서 일어났으니 독일에서는 예수회 수도자 크리스토퍼 클라비우스(Christopher Clavius), 스페인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자 디에고 데 주니가(Diego de Zuniga), 이탈리아에서는 가르멜회 수도자 포스카리 나(Foscarina)등이 있으며 바르베리니(Barberini) 추기경(후에 교황 우르바노 8세가 됨) 은 그를 로마에 불러 지동설 연구를 시켰던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위에 말한 저서가 간행되기 10년 전에 교황 클레멘스 7세는 태양 중심 설에 찬의를 표하여 1533년에 바티칸 궁내에서 요한 비트만슈타트에게 태양 중심설 강의 를 시켰습니다. 그 다음 역대 교황들도 지동설에 대해 아무런 적의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측의 태도는 어떠했는 줄 아십니까?
영국에서는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반대했고, 덴마크에서는 케 플러의 스승이었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Tycho Brahe)가 반대했고, 독일에서는 이른바 종교 개혁자 루터(Luther)가 "어리석은 사람이 천체를 역전하려 생각하고 있다." 했고, 루터의 동지였던 멜란히톤(Melanchton)은 "과학의 전복, 원숭이 놀음"이라고 반대하여, 독일 프로테스탄트 세력권 내에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아예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입니다. (얀센 著, ’독일과 종교 개혁’ 제 7권, p309).
그뿐인줄 아십니까? 갈릴레이와 동시대 사람이었던 독일의 유명한 프로테스탄트 천문학자 케플러(Kepler)는 지동설을 주장한다 해서 그 당시 프로테스탄트 정부로부터 추방을 당하 여 가톨릭 왕국이었던 보헤미아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해서 이 위대한 천문학 자는 죽기까지 유럽 각지를 떠돌아 다니는 방랑생활 속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 한 것은 나 중에 이야기할 갈릴레이의 행복한 말년과 너무나 대조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1659년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감독 가로비우스는 자기 교회 학자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지동설을 배척한다 해서 희열을 금치 못했던 것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1582년 옛 율리우스 역법을 개량하고, 새로 정확하고 편리한 그레고리오력(오늘날 모든 국가에서 쓰고 있는 태양력)을 반포한 다음 모든 나라가 이에 순응하였지만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에서는 여전히 옛 율리우스력을 고 집하다가 영국은 1752년에서야, 독일은 1778년에야 통일적으로 그레고리오력을 채용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제는 지동설에 대한 가톨릭의 태도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갈릴레 이에 와서 지동설이 그토록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요?
이제 이상의 사실로 충분히 가톨릭 교회가 지동설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일찍이 반가톨릭 진영에서는 이 갈릴레이 사건을 계기로 가톨릭에서는 과학의 발달을 방해했다거나, 갈릴레이가 법정에서 나올 때에 땅을 구르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 고 소리를 쳤다거나, 그래서 극형을 받아 아깝게도 희생되었다는 등등 별별 희안한 유언 비어를 퍼뜨려 일반 ’학생’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였습니다.
그 전후 사정에 대한 자세한 판결문과 재판과정에 대한 자세한 서류는 갈릴레이에 대하여 해박한 이탈리아의 역사가 파바로(A. Favaro)가 교황의 허락을 얻어 1907년에 Galileo e l’inquisizione 라는 제명으로 묶어서 발표한 다음 일체의 잡음은 해소되었습니다. 따라서 유럽 내에서는 갈릴레이의 지동설에 대한 일반인들의 그릇된 인식이 바로잡혔으나 그러한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에서는 아직도 갈릴레이가 교황청으로부터 엄청난 고문과 박해를 받고서 지동설을 포기하라는 결정을 받아들였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과학적으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처음에는 하나의 가설로서 주장되다가 그것을 정확하게 증명해 줄 즉 뒷받침해 줄 근거가 제시되 면 가설이 아닌 학설로 그리고 더욱 확고한 증거가 연이어 실험적으로 성립되면 그때부 터는 정설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갈릴레이가 자신의 논문을 전개해 가면서 무리하게 성서 해석을 했고 그 결과 교회 의 해석과 배치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 인해 교회의 지적을 받았으나 그 주장을 굽히지 않음으로 교회에서는 지동설의 주장을 과학적 논증으로 국한할 것과 성서 해석을 임의로 갖다 붙이지 말 것을 리카르디(Ricardi) 주교를 통해서 전달했었습니다. 그 결과 종교 재판에 갈릴레이는 회부되어 정확히 말하자면 교황청의 성무성성에서 열리는 심리에 출두하여 지동설의 근거를 과학적 논증으로 제출하도록 명령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갈릴레이는 지동설의 근거로 3가지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첫째는 행성의 유(留) 와 역행(逆行), 둘째는 태양의 흑점 이동, 셋째는 조수 간만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천동설로도 설명이 가능하며 두 번째 흑점 이동은 사실 천동설, 지동설 그 어느 것과도 관련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출한 조 수 간만의 현상에 대한 계산 결과도 지동설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었으며 그 당시 갈릴레이는 미분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정확한 계산치를 낼 수 없었으므로 교회 학자 들로부터 거센 반발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학계에 발표한 이론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대지도 못하면서 인정만 해 달라는 것은 현재의 시점에서 보아도 분명 억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갈릴레이는 그의 지동설을 담은 저작 ’Saggiatore(시험관)’을 출간하도록 교 황청에서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계에 남긴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서 교황을 직 접 알현할 수 있도록 했으며 그의 저작 ’Saggiatore(시험관)’은 교황 우르바노 8세에 게 헌정되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교황청에서 직접 주는 특별연금을 그 아들까지 받게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을 역사는 기록합니다.
갈릴레이가 종교 재판의 박해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선전하는 것은 크나큰 오류입니 다. 갈릴레이는 매년 연구비를 보조받음과 동시에 그 아들에게까지 연금이 주어졌으며 주교관에서 지낼 수 있도록 교황의 특별 배려도 있었으며 단지 그가 죽은 후에 성당 내 에 그의 비석을 세우는 것만이 금지되었을 뿐입니다. 그 이유는 성무성성의 벌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성당 내에 비석을 세울 수 없었을 뿐 그것도 그가 죽은지 300여년이 흐른 지금에는 교황청의 사면복권(이것은 그에 대한 법적 제재 조치의 완전한 해제)으 로 말미암아 성당 내에 그의 정식 묘비를 세울 수 있게 됨으로서 완전히 해결된 사건입 니다.
이로써 님의 오해가 플렸으리라 믿으며 갈라진 형제들에게 존 오브라이언 주교의 짤막한 글로 필자의 두서 없는 긴 글을 마칠까 합니다.
"… 목표는 파괴에 있지 않고 건설에 있다. 가끔 타교파가 지니고 있는 모 순을 지적할 필요가 없지는 않겠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는 오직 가톨릭의 종교관이 얼마나 조리에 맞고 지성(知性)에 적합한 것인가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기 위함일 뿐이다. 두 가지 견해의 갈림길에 있어서 서로 비 교하는 대목은 언제나 객관적으로 공정한 태도를 지니고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견해의 차이점(差異點)을 개인적인 감정과는 관계없이, 또 반대 의견을 주 장하는 사람들에게 티끌만한 악의(惡意)도 품지않고 토론할 수 있음은 확실 하다. 사실 나는 우리 국민들에게 대해서 신앙을 가진 사람이든 아니든 선 의(善意)와 애정(愛情)만을 가지고 있다. 이 애정(愛情)을 가장 성실하게 드 러내겠다는 욕망이 결국, 내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준 이 신앙을 내 동포 들과 함께 누리고, 그리하여 모든 이에게 평화와 행복을 알려주겠다는 뜻에 서 글로 쓰게 된 것이다.
이제 친애하는 독자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마음을 탁 터놓고 가톨릭 신앙을 연구하기 시작해 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여러분의 연구는 한없이 유 익할 것이다. 만일 마음의 문을 꼭 닫고 "흥, 이것들이 틀린 것인 줄은 뻔히 알고 있지. 단지 들어 주기는 하지. 그저 결론으로 끌려 들어 가지 않도록 빠져 나갈 구멍을 그 동안에 찾기만 하면 되거든" 등의 독백(獨白)을 하면 서 연구를 시작한다면 확실히 이것은 여러분 자신에게 공평하지 않은 태도 이다. 만일 가톨릭의 교리와 그 바탕이 되는 것들을 이해하려 애쓴다면 여 러분은 더욱 큰 이익을 얻을 것이다.
이를 마음속에 지니고 믿을 만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자유롭게 여러 분의 지성(知性)을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해야 충분히 비판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내가 개최하였던 교리 강좌 때에도 교회의 관점(觀點)이 바탕을 두고 있는 이유를 연구하려 하기보다, 교회의 관점과 반대가 되는 논증을 찾기 에 정력을 소모하여 스스로 자기 기만에 떨어지고 만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어쨋든 어떤 문제에 대해서 공정(公正)을 기하려면, 이것이 과학이든 문학이 든 철학이든 종교든 우선 이것과 또 이를 뒷받침하는 이유들을 온전히 이해하 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톨릭 교회가 요청하는 것은 더도 덜도 아니고 바로 이것이다. 교회는 정 확히 이해하기만 하면 교리가 갖고 있는 객관적 무게와 아울러 믿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어떤 위대한 힘이 있음을 굳게 믿는 까닭이다. 교회는 감정 에 호소하는 따위의 귀찮은 일은 하지 않는다. 교회는 이 교리의 내적 가치 (內的價値)에 관해서는 서 있거나 쓰러지거나, 또는 믿거나 배척하거나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교회는 선입견(先入見)으로 흐려지지 않은 맑은 지성으로 교리를 보기만 한다면, 그처럼 터놓은 마음은 이를 믿지 않을 수 없음을 잘 아는 까닭이다. 자석은 반드시 철을 끌어당기듯, 진리는 중간에 장애물(障碍 物)만 없다면 곧장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게 마련이다. 선입견, 편견, 독설, 반감, 이런 것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진리를 확신하는 능력을 빼앗아 가는 장애물들이다.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여태까지 여러분이 사귀어 온 사람들은, 전부라고는 말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알게 모르게 그들로부터 무의식적으로도 어떤 편견을 받아들여 왔다 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가톨릭이 가르치는 바에 대해서 정확히, 또 될 수 있으면 동감적 통찰(通察)을 해 보겠다는 노력조차 방해하고 있는 이 편견(偏見)을 단지 얼마 동안만이라도 벗어나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긴요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가톨릭 교회에 대한 악독 한 욕설을 잊고, 교회의 반대자들이 떠드는 비방과 중상을 잊기를 바란다. 유치장에 갖혀있는 미결수(未決囚)조차 유죄(有罪)판결을 받기 전에는 무죄 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실만, 사건의 증거만 보고, 그리고 마음을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
그리스도교의 재일치를 기도하며
갈현동에서
catholic knight 안젤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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