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답변 742] 창조설화 (보충 732)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임용학 쪽지 캡슐 작성일2000-03-14 조회수452 추천수0 신고

† 찬미 예수님

 

제 답변이 충실치 못했나요?

아마 질문하신 분께서는 허영엽 신부님께서 연재하신 글을 처음부터 다 읽지 않으셨나 봅니다.

주보에 난 신부님의 글을 저도 읽었습니다만 저와는 정반대로 알아 듣고 계시는군요

 

신부님의 글을 골자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책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성서는 하느님과 만남이 이루이지는 장(場)이 된다.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이기도 하면서 온전히 인간의 말로 기록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는 전기라기보다는 체험사나 의미사로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성서는 신앙 공동체와 하느님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 사랑의 체험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책이다.

성서는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생명의 책이다. 그것도 영원한 생명의 책이다.

 

구약성서는 아브라함에서 모세, 다윗, 그리고 예언자들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과의 계약을 기록한 책이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인 나자렛 예수를 통해 하느님의 백성과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는 의미에서 구약과 구별해서 신약이라 부른다. 그래서 성서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것은 언약, 계약이란 단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역사 안에서 체험한 하느님과 그분의 업적을 후손들에게 구전으로 전하다가 정확한 내용으로 정리 보존하기 위해 다윗 시대(BC 1000년경)부터 기록하기 시작했으며, 마카베오 시대까지 정리되었다. 이것이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 받아들여졌고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의 규범이 되었다. 이 책들의 주된 내용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다. 예수님께서도 이 책들을 읽기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도 하셨으며, 후에 그리스도교에서 이 저서를 받아들여 [구약성서]라고 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 만물과 인간의 역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고 활동하심으로써 당신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시고 알게 하신다. 이러한 하느님의 계시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과 역사를 통해서, 특히 예배의 전통으로써 후손들에게 전수되었다. 이 전통, 즉 구전으로 전수되던 계시 내용들이 시간의 흐름과 문화의 발전을 따라 기록으로 남게 된다. 따라서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 첨가되고 다듬어지고 심화되어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성서가 표현이나 내용면에서 완벽해지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영감 때문이다. 영감이란 하느님께서 성서를 올바르고 정확하게 기록하도록 성서의 저자에게 작용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의미한다.

 

성서 저자들은 이 영감으로 그들 특유의 표현 방식과 특수한 활동조건으로 이스라엘 신앙을 여러 측면에서 해설하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따라서 여러 저술가들이 기록했지만, 저자는 하느님 한 분이시다. 또 구약성서 전편에 흐르는 한결같은 주제는 만민을 구원하시는 하느님 구원 계획의 준비이며, 아울러 신약성서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기원(起源)의 뜻을 지닌 창세기는 설화 형식의 세상창조에 관한 태고사(1-11장)와 이스라엘 성조들의 역사(12-50장)로 구분된다.

세기의 본문들은 하루아침에 쓰인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전승되고 편집되었다. 창조이야기 하나만 보더라도 제관계 전승사료(1,1-2,4a)와 야휘스트 전승사료(2,4b-3,24)가 혼합되어 있다.

  따라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또는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사료가 각기 다른 시대에 쓰였고, 다른 문학형식과 신학사상을 내포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성서는 전승 문학작품 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나중에 더 깊이 공부하기 바란다.

 

1. 태고사(창세기 1-11장)        

어린 시절 주일학교 교리시간에 배운 것 중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 이 창조설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태고사(太古史)는 세상의 창조, 아담과 하와의 창조, 카인과 아벨, 노아의 홍수, 바벨탑 등 설화(說話)형식으로 재미있게 전개된다. 어떤 이는 인류 중에서 배꼽이 없는 사람은 아담과 하와뿐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했으니까 그렇다는 것이다. 설화를 글자 그대로 믿는다면 맞는 말일 것이다. 태고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설화가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 보통 옛날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옛날이야기 중에는 허무맹랑한 것도 많지만,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속한 가정과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게 마련이다. 형식은 이야기이지만 그 의미는 고스란히 보존되어 전승된다. 따라서 설화는 그 의미에 관심을 집중시켜야 한다.

창세기 1∼11장의 태고사는 설화형식이지만 인류 전체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원역사(原歷史)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강조하고자 했던 점은 하느님이 이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을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우주만물의 주인이 하느님이시고 그분이 직접 만드셨다는 것이 태고사의 주제이다.

인간은 마치 자신이 세상과 사회의 주인인 양 착각하지만 인간은 한낱 피조물이다. 내 몸은 물론 내 삶의 주인도 나 자신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 민족도 어린 시절에 환웅이 하늘에서 인간세상에 내려와 곰이 변한 웅녀를 아내로 맞아 겨레의 시조인 단군을 낳았다는 단군신화를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것이다.

 

창세기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이스라엘 민족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쪽 유다왕국이 몰락한 후 바빌론 유배를 당하게 된다. 그러자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절망만이 남게 된다. 이런 참담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하느님은 정말 계신가? 왜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가 이런 고통과 수난을 겪어야 하나? 이것은 구체적인 삶과 실존의 문제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에 대한 신학적 해답을 시도하게 된다. 강대국의 압제에서 자신의 고유성과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관한 확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가장 현명한 방법 중 하나는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천지창조의 설화 등을 다음 세대에 계속해서 들려주는 것이었다. 이 내용들을 나중에 창세기로 자연스럽게 기록하게 되었을 것이다.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진리로 받아들이는 현대인들에게 창조설화는 허무맹랑한 옛날이야기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 창조설화는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창조설화가 왜 성서에 기록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성서의 저자들은 창조를 세상과 인류역사의 시작이며 하느님의 첫번째 구원의 행위로 보았다. 이런 깨달음은 그들의 역사적 체험에 바탕을 둔 것이다. 성서 저자는, 하느님은 한 분뿐이고 세상과 인류를 창조하셨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의 존재 의미와 고통과 불행의 원인, 하느님께서 어떻게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어주시는지를 표현하려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섭리 안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여 모든 인류의 구원을 준비시키신다고 굳게 믿었다. 창세기는 이런 대전제하에 믿음의 눈으로 태고적 기원을 설명한 것이다.

따라서 창조설화를 읽을 때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내포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또한 이야기의 목적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르치기 위한 것임을 잊어선 안된다. 따라서 창조설화가 과학적 진리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창세기는 자연과학적, 역사적 의미의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설화에는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적인 신앙체험, 즉 하느님께 대한 체험이 농축되어 있다.

이 체험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내려오다가 당시의 여러 문학형태의 글로 기록된 것이다.

태고사(창세1-11장)의 내용은 유일하고 완전하시며 선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이 우주만물과 인간세상의 창조주시며 주관자라는 것이 주제다.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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